혹시 로고도 디자인 가능한가요?
1. 클래스 101에서 로고디자인 강의를 들은지 고작 3주, 여전히 툴 사용방법이 서툰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의 첫 로고디자인 의뢰입니다. 그저 <간단한 로고디자인 작업이 가능합니다> 라는 조심스레 올려둔 홍보글에 손내밀어주신 것에 감격받았습니다.
2. 벅찬 감격을 뒤로하고, 저는 차분히 질문지를 건넸습니다. 업종, 상호명, 그리고 사장님이 그리는 가게의 밑그림들에 대한 내용말이죠. 돌아온 대답은 흥미로웠습니다.
식당명 : 끄테 (한식주점)
음식 : 아구찜 토핑세트 (메인 토핑 - 통닭한미리)
가게 이미지 : 블랙
로고 디자인 : 심플함 추구
메뉴판 : 블랙톤의 메뉴판에 음식사진 첨부 희망
상호명은 <끄테>. 동네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끝에'라는 말을 들리는 그대로 옮겨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담백하고도 감성적인 네이밍에 마음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메뉴는 아구찜 위에 통닭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가는 파격적인 조합의 한식 주점. 가게의 중심을 잡아줄 색상은 '블랙'이었습니다.
사장님은 고민 끝에 가게의 얼굴인 간판을 그대로 로고화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나아가 언젠가 '망원 끄테', '성수 끄테'처럼 동네의 이름을 품은 프랜차이즈로 확장될 미래까지 꿈꾸고 계셨습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꿈이 담긴 'xx끄테' 시리즈의 첫 단추를 제가 끼우게 되었습니다.
비록 손은 느리고 고민의 시간은 길겠지만, '끄테'라는 이름이 가진 그 따뜻한 공간의 서사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첫 작업이 누군가의 끝자락을 빛내줄 수 있기를 바라며.
3.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서자, 하얀 캔버스보다 어려운 것은 사장님과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었습니다. 글자형, 도장형, 이미지형까지 수많은 레퍼런스를 펼쳐놓고 가닥을 잡아 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습니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는 객관식 문제 같습니다. 사장님이 느끼시는 '1%의 아쉬움'이 무엇인지 포착하기 위해 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위치'라는 키워드에 집중했습니다. 동네 끝자락이라는 의미를 담아 느낌표(!) 모양을 활용한 시안을 제안드렸죠. "여기가 바로 그곳입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음식점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이 희미해진다는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글자만 있는 건 깔끔해서 좋은데,
뭔가 하나가 부족한 느낌이에요.
그 모호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심플한 글자형의 세련미를 유지하되, 한식 주점의 신뢰감을 한 방울 더해줄 '도장형' 심볼을 결합하기로 했습니다. 수차례의 수정과 협의 끝에 드디어 사장님께서 만족하셨습니다.
메뉴판도 부탁드릴게요!
4. 다음 과제는 메뉴판이었습니다. 사장님은 텍스트로만 가득했던 기존의 메뉴판에 사진을 더해 생기를 불어넣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습니다. 메뉴판 하나를 위해 모든 메뉴를 한꺼번에 요리하고 촬영할 순 없었기에, 사장님은 음식이 나갈 때마다 틈틈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전문 사진작가가 공들여 찍은 컷이 아니다 보니 사진마다 조명도, 구도도, 화질의 편차가 컸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작업을 하면서 난감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이 사진들로 세련된 블랙톤의 메뉴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가게 앞 가판대에 진심이 담긴 음식을 당당히 내걸고 싶어 하셨습니다. 투박한 사진들은 어쩌면 사장님이 매 순간 주방에서 치열하게 보낸 시간의 증거이지 않을까요. 그 진심을 알기에 저 또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화질이 떨어지는 사진은 보정으로 최대한 살려내고, 구도가 어긋난 컷은 레이아웃으로 보완하며 긴 시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사진 한 장이 도착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느리지만, 사장님의 땀방울과 저의 고민이 섞인 메뉴판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5. 약 2주 간의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끄테> 사장님의 메뉴판과 로고디자인 작업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돌이켜보니, 사업 입문자가 경험을 쌓아가며 실력향상을 하기엔 당근 플랫폼이 꽤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플 이용자의 허들이 낮아 남녀노소 모두 이용하는 플랫폼일 뿐만 아니라, 작업물의 기대수준도 높은 편이 아니기에 조금만 신경써서 작업하면 적은 리스크로 실전 비즈니스 매너와 고객 응대 기술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죠. 즉, 돈을 벌면서 유료 강의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감각을 익힐 수 있습니다.
부디 제가 만든 로고가 사장님의 가게 이름처럼, 동네의 끝자락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는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끄테> 사장님의 새로운 시작과 앞날에 만선의 기쁨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