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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Mar 20. 2024

목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디모데 전서를 읽으며 1화)


디모데 전서 1장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에게 편지하노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이 글은 바울이 디모데 에게 쓴 편지로서 목회 서신이라 불린다. 

그러니 목회자 바울이 목회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인 것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목사가 목사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르침은 무엇 이었을까? 

그런 질문과 함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이글을 읽어 가고자 한다. 


신학교를 다니고 목회자 코스를 밟으면서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목사 아버지를 둔 목사 후보생들 나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그들은 내가 알지못하는 비밀을 아는듯 했고 내가 더듬 더듬 가는 이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디모데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서 거장인 스승을 만나고 정해진 수순처럼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일상 같은 목회가 교회가 그를 힘들게 그리고 아프게 했다. 

바울은 그런 상처입은 목사 아들에게 역경속에서 그리고 은혜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천기누설과 같은 비밀스러운 레시피를 들려줄 때 나는 그 발아래 앉아서 아들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고 세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이 험난하고 복잡한 사역의 현장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흔들림 없이 끝까지 잡아야 할 신앙의 외줄이 무엇인지 나는 나의 사랑하는 목사님 바울에게 듣고 싶은 것이다..


바울의 목회 그 기력의 원천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이었다.


사도행전 9장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은 극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는 기록된 바와 같이 크리스천을 향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잡아 가두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계획에 없던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주님은 그가 이런 방법이 아니면 결코 자기를 내려놓을 사람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아셨을 것이다.

구약의 출애굽 당시 바로와 같이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바울이  단번에 땅에 엎드러진 이유는 맞춤형 부르심 때문이다. 바울은 이날의 부르심을 일생에 흔적(씨티그마)으로 가슴에 안고 살아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에게 딴생각이 들라치면 이 말이 귓전에 들리지 않았을까?

너는 내 이름을 이방에 전하기 위한 나의 그릇이라!!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부르심의 뜻을 따라 예수의 이름을 이방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쉼없이 전하였다. 말에도 글에도 그리고 행동에도 복음이 먼저였다. 

그러니 바울의 삶은 온통 복음의 문제로 가득하고 목회적 갈등으로 넘치지 않았을까!

어느 시인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한것 처럼 그렇게 목회자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서 바울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사는 부르심과 보내심의 뜻을 위해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육체의 고생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몰인정과 누명 속에서 마음의 고생은 도를 넘었다.

문제 투성이 어리고 어린 교회를 보다 보면,  

교인들의 얄궂은 모습을 보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당장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배운 것이 많아서 스펙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선택도 많았겠지 그렇다면 누구보다 더 고민이 많아겠지!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부르심에 대해 또 사도로 보내심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영성으로 삶을 끌어올리며 믿음을 지키고 살았다. 그런 이유로 바울이 세째 하늘을 경험했다면 충분한 이유와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울은 긴시간 그리스도를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는 삶을 기어이 살아 내셨다.


목사는 가장 배신을 많이 당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아파서 "떼굴 떼굴" 구르며 사는 직업군의 하나이다.

배신의 상처 없는 목사는 사실 목사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모든 편지의 핵심 주제는 부르심과 보내심의 은혜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주목하지 않고 부르심에 주목했다.

목회의 승패를 일에 두지 않고 보내심에 두었던 것이다. 

바울에게 그런 소명을 잊으면 그것이야 말로 배신인 것이다!!


목사는 목사를 해보니

부르심과 보내심의 주체인 예수님을 가장 위에 그리고 가장 앞에 그리고 가장 깊이 두지 않으면 한 걸음도 걷기 어려운 것이 목회임을 알게 되었다.

멀쩡하다 픽 쓰러지면

멀쩡하다 콱 막히면

멀쩡하다 짝 쪼개지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빠져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나의 목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 없이 목회는 맨몸으로 전쟁에 나가는 꼴이다. 그렇게는 이순신이라도 못 이길 싸움이 교회다.

금세 피투성이로 전사하게 된다. 누구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부르심에 힘입어 그는 싸우는 삶을 살았다. 목사는 워리어(Warrior) 싸움꾼이다.

에베소서 5장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 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리고 그는 그 부르심에 힘입어 씨름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복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씨름선수가 아닌 장수의 복장이다. 아버지 바울은, 목사 바울은 피 흘릴 준비가 된 전사의 모습으로 살아간 것이다. 은혜의 부르심과 눈물겨운 중생의 체험은 피 흘리는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그는 기꺼이 그렇게 전신갑주를 입고 대적들과 싸운 사람이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끝나니


초등학교 때 운율이 좋아서 외운 이 시는 이제 살면서 지치고 지칠 때마다 깊은 공감으로 마음에 다가온다.

풍전등화와 같은 국운을 짊어진 이순신의 마음은

오늘날 가장의 무게 일수 있겠다.

목사의 무게일수 있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 모두의 무게일수 있겠다.

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백성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장수가 잠 못 드는 밤 그리고 피 흘리기를 결심하는 밤과 같이 목사도 늘 수루에 앉아 시름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거기에 혼자 있지 않은 우리 자신을 발견해야만 흔들림은 사라지고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 나와 나의 친구들의 교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은혜와 평강을 팔아서 자리와 편리를 얻으려는 갖가지 노력으로 병들고 아프고 상처 난 이야기뿐이다.


언제 우리가 교인 숫자보고 목회를 시작했는지?

언제 우리가 사례금 생각하고 부르심에 응답했는지 생각하면 그런것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득권, 결정권, 자리, 돈, 자존심 등등 별것도 아닌 많은 것들이 목사의 목사 됨을 방해한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 바울과 같이 그의 바람과 같이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목사

그것을 세상에 전하는 그런 목사로 충분하지 않은가?

모두가 찡그린 세상에서 평강의 얼굴을 하고 다니면 그가 목사가 아닌가?

마음이 한없이 시들어 버린 세상에서 마음만은 자유로운 그런 목사 어떠신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바울의 아들이다. 나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다.

위키 백과사전에 목사를 검색하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담임 목사, 부담임 목사 등의 직함이 있다. 신학대학원의 전문적 신학교육을 이수한 후에 훈련을 거쳐 목사직의 안수를 받는다. 목회자(牧會者)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개신교목사들은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지원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거인 기미 독립선언문 작성자 민족대표 33인(개신교 인사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 중에서 13명이 목사로 감리교 9명, 장로교 4명이다. 목사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민족의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교회를 통하여 근대화 추진에 끼친 공헌은 지대하였다.


이 모든 일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지극히 필요한 일이다.

목사가 되어보니 목사에게 정해진 일은 없다.

목사는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설거지도 밭일도 집수리나 운전이나 행정이나 모든 허드레 막일도

가르침과 경영조차도 설교요 전도요 부르심이요 보내심이다.


그러니 백과사전이 말하는 목사를 넘어서자

그런 선량한 지도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말씀에 기록되었음을 기억하자.

그렇게 오늘 하루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흔들리지 말고 실천하자 그런 목사가 되어보자 !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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