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팀 생활 3개월이 지났다. 국민의힘은 격변을 겪고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집권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관련 증거인멸교사 의혹을 둘러싸고 지난달 당 윤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권성동 원내대표 원톱 체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 공개 파동으로 한달도 못가 어그러졌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에 반발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세 달만에 당과 대통령 지지율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당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비윤핵관으로 구분됐다. 다만 윤핵관은 권핵관(권성동 핵심관계자)과 장핵관(장제원 핵심관계자)으로 분화되는 듯하더니 이제 차기 당권을 두고 김기현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이 맞붙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 민생을 챙기기에도 바쁠 시간에 참 혼돈의 카오스가 이어지고 있다. 정신없는 나날이다.
입사 10년만에 정당팀에 와서 부반장을 맡고 있다. 5명의 팀원 중에 두번째다. 기존에 정당팀을 해 오던 후배들은 아는 국회의원이나 당직자가 많다. 문재인정부 청와대만 3년 넘게 했지만 국민의힘은 처음이라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인맥이 체력인 정치부, 특히 정당팀 기자로서 다시 바닥부터 밟고 있다.
통상 국회 출입 기자의 경우 반장과 말진(막내)이 갑이라고들 한다. 의원들이 그래도 반장은 대우해주고, 전화도 잘 받는다. 말진은 최고위원회의나 원내대책회의 등 현장을 챙기기에 의원들과 안면트기가 쉽다. 또 현장에서 워딩을 받아치니 기사를 안 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올려준 워딩은 소위 잡진(반장과 말진을 뺀 중간 기자들)이 기사로 처리한다. 취재원들과 접점은 떨어지고 국회 부스(소통관 내 기자실)를 비울 시간은 부족하니 그냥 기사만 하루하루 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와도 친해지지 못하고 그냥 의미없는 기사를 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 하루는 보통 이렇다. 오전 7시쯤 일어나서 7시30분에서 8시 사이에 부스에 도착한다. 가는 동안 스크랩마스터로 조간을 보고, 통신을 체크한다. 8시부터는 전화 지옥이 시작된다. 당 내부 기류를 파악해야 아침 기사 발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팀원끼리 주제를 나눠 전화를 9시30분 정도까지 의원들과 보좌관에게 전화를 돌리고, 발제를 만들고 보고한다.
이후 정치인들의 라디오 인터뷰 워딩이나 페이스북 워딩을 위주로 온라인 기사를 송고한다. 아침 발제가 미비하면 추가로 전화를 돌린다. 시간이 후딱 가는데 이제 오찬 시간이다. 꾸미(다른 회사 기자들끼리의 모임)에서 잡은 국회의원 약속에 간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115명이다. 이들을 다 보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약속을 잡고, 만나서 당 내부 얘기를 듣는다.
오찬에서 복귀하면 1시30분쯤 되고 오후상황을 또 챙긴다. 논평과 브리핑이 쏟아진다. 정치인들은 페이스북도 참 많이 올리니 주기적으로 확인한다. 기사가 잡히면 쓰고, 오후 6시를 넘기면 이제 만찬 자리에 간다. 또 이어지는 술술술.. 10년간 그렇게 많은 술을 먹었지만 정당팀만큼 술을 많이 먹는 부서는 또 처음이다. 그렇게 취해서 집으로 가면 12시가 된다. 씻고 하면 새벽 1시고 잔다. 또 7시에 일어난다. 이런 생활의 무한 반복이다.
국회 출입은 적응 기간이 오래걸린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일단 너무 사람이 많다. 의원도 많고 기자도 많고 보좌진도 많다. 스피커가 너무 다양하기에 산발적인 정보가 여기저기서 톡톡 튀어나온다. 국회 처음 왔을때는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내가 모르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좀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1000여명의 기자들이 국회로 오는데 나 혼자서 999명을 어떻게 이기겠나. 그래서 난 국회발 단독 기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단독이라기엔 남들이 그냥 알고 안쓰는 경우가 많다.
대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흐름을 잡고, 어떤 워딩을 기사에 녹여 현재 당이 겪고 있는 상황의 핵심을 잡는 기사를 쓸 것인가가 중요한 듯 하다. 정치는 생물이라 그 생명력을 온전히 글로 담으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걸러서(뻥카도 많더라) 당의 현실을 정리하고 숙지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내가 과연 맞는 흐름을 쓰고 있는지. 내일 내 기사를 보고 당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한 선배는 정당을 취재하려면 보학에 능해야 한다고 했다. A라는 정치인이 어디 학교(대학교보다 고등학교가 중요)를 나왔고 어느 정치인과 친하며 어느 계파에 속해있고 정치를 어떻게 시작했으며, 끌어주거나 도와준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별로 남에게 관심없는 나는 이 작업이 힘들다.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나쁜지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 관계 속에서 그룹이 형성되고 그 그룹이 당내 의견을 모으며 그 의견이 당론이 되고 당론이 나아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 같다. 그 누구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각되는 곳이 이곳 국회 같다.
매일 싸우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국회의원들은 실제로도 많이 싸웠다. 그러나 죽을것 같이 충돌하던 여야는 카메라가 꺼지면 '서로 형님 살살해' '아우님 고생해' 하면서 웃고 떠들고 악수를 했다.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방금전까지 내게 피부 가지고 수다를 떨던 한 아저씨가 기자회견을 하며 엄숙한 목소리로 당의 입장을 전하는 것을 보면 또 신기했다. 거대한 연기의 향연 같으면서도 역동적인 생명체가 뛰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개별로 만나보면 의원들은 참 똑똑하다. 청와대 출입 당시 참모들을 만날때와는 또 약간 다른 느낌이다. 행정과 정무가 결합된 청와대와 달리 이곳은 정무가 주를 이룬다. 정책과 법안이 중요해 보이면서도 사실 누가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더 이슈가 된다. 그러니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는 기자들과 이를 잘 활용하고 때로는 연막을 치는 정치인들의 숨바꼭질이 시시각각 벌어진다. 소통관 복도를 나와보면 수십명의 기자가 각자 통화중이다. 수화기 너머의 의원 혹은 보좌관, 비서관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통화 한번으로 오늘의 밥줄이 정해지고, 저쪽은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가 나가도록 혈안이 돼 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서운 여의도 바닥에서 그렇게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 돕기도 하고, 감시도 하고, 또 때로는 재보기도 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