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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왜 기자가 되고 싶으세요?

기자가 되는 법

원전 관련 프랑스 출장 당시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09년 군대를 마쳤다. 고민이 생겼다. 무엇으로 빌어먹고 살 것인가.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생계가 가능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사람들 틈에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직업. 기자밖에 없었다. 많은 이가 택하지 않는 희귀함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쓴 기사로 부조리가 사라지고, 악법이 바뀌어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면 단순히 월급 받아 먹고 사는 ‘직업’ 이상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문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언론사들은 한해에 다 합쳐야 100여명 남짓한 수습기자를 뽑는다. 한 회사당 4~5명 꼴이다. 시험 자체가 귀했다. 4학년 1학기부터 공고가 나는 모든 언론사의 시험을 쳤다. 수십번의 낙방 후 4차의 전형 끝에 ‘국민일보’에 합격했다. 순수히 글로서 승부를 보는 신문이 방송보다 더 끌렸다. 중앙 일간지로서 체계적인 배움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입사 7년차가 됐다.

     

정보가 문제였다. 일반 대기업과 달리 준비하는 선배가 적었다.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다. 언론인 준비생들이 모이는 다음까페 ‘아랑’을 자주 참고 했다. 수소문 끝에 동아일보에서 인턴기자로 3개월간 일했다. 조금씩 ‘감’이 왔다. 이후 대학교 3학년때 MBC 100분토론 시민논객과 중앙일보 주말판 칼럼니스트 활동을 했다. 같은 길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정보가 자연스레 모였다. 무작정 유명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기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 해야할 지 물었다. 그들 대부분은 기특해하면서 만나줬고, 밥도 샀다. 신문사 독자투고란에 매주 칼럼도 보냈다. 실리지 않아도 계속 했다. 그들 중 몇몇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지금도 선배로서 만난다. 몸으로 부딪치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본다.


3학년 때 학교 언론고시반에 들어갔다. 무료로 제공되는 신문과 서적들을 독파하고, 현직 선배의 특강을 통해 논술과 작문시험을 준비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과 토론동아리도 주기적으로 했다. 나중엔 면접 준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캠프나 한국언론진흥재단 논술대회 등도 틈틈이 참여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거의 모든 활동을 2~3학년 때 대부분 했다. 재미있었기에 지치지 않았다. 여전히 입사 관련 정보가 부족한 언론 현실을 고려하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본다. 발로 뛰면 답이 보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자기소개서 준비

모든 회사가 그렇겠지만 언론사 입사의 경우 자기소개서는 시작과 끝이다. 학점과 토익 등 스펙이 부족해도 자소서만 잘 써도 언론사 서류 통과는 어렵지 않다. 잘 쓴 자소서는 한번에 읽기 좋은, 모양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다.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어떤 기자가 되어서 어떤 기사를 쓸 건지 ‘진실’되게 적어야 한다. 어차피 선배 기자들은 수습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극적인 계기가 없더라도 대학을 다니며 어떤 기자관을 정립했는지 일화 위주로 정리하면 된다. 단점으로 ‘완벽주의’를 꼽거나 의견이 갈리는 수업 조원을 적절히 중재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식의 뻔한 자소서는 보지도 않고 버린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다. 기자들은 긴 말을 싫어한다. 무조건 두괄식으로, 주제를 먼저 배치하고 일화를 잘 버무리면 된다.

 

무엇보다 자소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 책으로 듣고 미디어에서 본 기자상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안 된다. 선배들은 후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다 아는 이야기로 자신을 포장하는 ‘헛똑똑’을 뽑으려 하지 않는다. 자소서는 항상 재미있게 써야 한다. 평범하게 살아왔더라도 그 안에서 평범하지 않는 나만의 일화를 찾아 기자와 연관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후 현직에 있는 기자 등에게 꼭 피드백을 부탁하는 게 좋다. 10명 이상의 기자가 고쳐준 자소서는 떨어지기도 어렵다. 나는 정확히 23명의 기자에게 자소서를 ‘고침’ 당했고, 한번도 서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기자가 되고 싶은 ‘절실함’과 함께 기레기라 욕먹도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 여기에 ‘진실성’을 뻔하지 않게 녹여내는게 핵심이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고민정 대변인에게 질문하는중


쉽게 예를 들고자 내 동아일보 자소서 일부를 남겨본다.


1. 자신의 삶에 한 줄 제목을 달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1000자 이내)     


<신문은 내 인생>


'미디어 삼형제 : 생존의 필요충분조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신문논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제 작품의 제목입니다. ‘신문 읽기’가 정보화 사회의 생존법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제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독해 온 신문의 힘이 컸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제 주위의 일들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점차 직접 세상에 뛰어들어 발 빠른 정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독자의 알 권리를 펜으로서 대변하는 신문기자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제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대학 입학 후 저는 신문과 함께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1면부터 칼럼까지, 2시간에 걸쳐 꼼꼼히 읽었습니다. 신문 토론 스터디를 만들어 보도된 기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신문을 가까이 하다 보니 독자로서 직접 지면을 채우고 싶어졌습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중앙 언론사에 제 칼럼을 보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투고란에는 무려 22번의 도전 끝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독자서비스팀의 직원은 숫제 제 이름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중앙SUNDAY 옴부즈맨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젊은 시각으로 보도된 기사의 장점과 아쉬운 점, 다뤄야 할 주제 등을 지적했습니다. 모두가 신문과 같이 호흡하며 신문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제 노력이었습니다.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신문은 대중이 영상으로서 접할 수 없는 심층적인 정보를 전하는, 없어서는 안 될 매체입니다. 그렇다면, 신문으로 대중을 다시 이끄는 것은 신문기자의 사명이라 할 것입니다. 신문을 보며 기자를 꿈꾼 청년은 꾸준한 신문 읽기와 독자 투고,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한 토론을 통해 꿈을 준비해왔습니다. 92년간 바른 여론을 이끌어온 민족지 동아일보에서 제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며 살아있는 신문을 만들고 싶은 제 꿈을 동아일보가 받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프레스센터에서


2. '내 인생 최고의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1000자 이내)     


<다문화 대학생 찾아 삼만리>

다문화 가정 출신 대학생들이 안 보인다? 동아일보 교육복지부에서 인턴으로 활동할 당시 제가 발제한 첫 아이템입니다. 이후 저는 3주간 다문화 대학생을 찾아다녔습니다. 서울시내 24개 대학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전국에 마련된 다문화 센터 30곳과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각종 시민단체와 교회도 수소문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원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에 관심없다”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한 학교 관계자에겐 “다른 기사거리나 찾아보라”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각 대학의 2012년도 모집요강을 분석했습니다. 다문화 전형이 있긴 했지만 실제 입학자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한국은 아직 다문화 사회로 진입할 준비가 안됐다”고 포인트를 잡았습니다.


설득이 문제였습니다. 해가 될까 꺼려하는 대학과 학생들에게 삼고초려를 반복했습니다. 기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습니다. “포용과 배려가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심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최저학력기준에 걸려 서울소재 대학진학을 포기한 일본 출신 여학생부터 언론공개를 꺼려하던 한 장학재단까지. 그들은 인턴인 제게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다문화 대학생’ 기사는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비록 아쉽게도 편집 마지막 단계에서 '킬'됐지만 선배들은 제 기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흘린 땀이 녹아있다는 평이었습니다. 10만원이 넘게 나온 전화비에도 행복했던 건 '나도 바람직한 사회로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구나'하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다문화 대학생 취재를 통해 저는 끈기와 진심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문전박대에도 웃을 수 있는 배짱도 키웠습니다. 어리바리했던 제가 한 단계 성숙해진 2012년 초겨울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과 부딪치며 동분서주했던 경험은 제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이제, 사회를 바꿀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 인턴 중 배운 끈기와 배짱을 일발 장전해 놓겠습니다.


국정감사 취재


면접 준비

보통 언론사의 면접은 1차 서류, 2차 필기(논술/작문/상식)를 마친 뒤 본다. 일반 회사와 다른 건 시사 관련 질문과 기자관을 묻는 질문이 다수라는 거다. 나는 면접 스터디를 조직해 예상질문 200개를 뽑았다. 존경하는 기자, 선호하는 기사 방향, 왜 해당 언론사를 지원했나 하는 식의 기본질문과 함께 자소서를 기반으로 질문을 직접 내봤다. 답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되묻는 질문도 고민했다.


토론 면접을 보는 언론사도 많다. 중요한 건 절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거다. 이기려고 하지말고 핵심만 짚어서 두괄식으로 짧게 짧게 대답하면 된다. 반대하는 주장을 앞에 물고 들어가면서 ‘~한 이야기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게 생각합니다’라고 마무리 한다. 직접 현장에 나가 기사를 작성하는 실무평가도 대부분 언론사가 본다. 주제를 하나 주고 이에 대해 기사를 작성하라는 식이다. 내가 입사할 땐 ‘여의도 IFC몰’에 대한 르포기사를 쓰라고 했다. 정신이 멍했다. 이건 정말 정해진 답이 없다. 평소 신문과 방송을 지속적으로 봐두고, 일반적인 기사 포맷을 숙지해둔 뒤에 현장에 나가서 재빨리 야마(주제)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 하는 뻔한 내용을 고르면 100% 떨어진다. 현장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주제로 선정하면 된다.

 

자기소개는 꼭 준비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비유 말고(예를 들면 ‘한다면 하는 남자’ 등등) 질문을 유도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는 식으로 전략을 짜라. ‘기자 준비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서 별명이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별명을 먼저 던지는 식으로 소개를 하면 된다. 이미 예행연습을 다 해놓고 짐짓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게 좋다. 면접관이 이에 속아 호기심을 갖게 되면 일단은 성공한 거다. 면접날 해당 언론사 1면이나 전날 방송뉴스 내용은 꼭 숙지하고 가야 한다. 실제로도 여러번 질문이 나왔었다.      


내가 최종에서 떨어졌던 모 일간지는 면접을 3번이나 봤다. 한사람씩 들어가서 면접관 7명과 40분간 토론을 하는 식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면접관이 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사 준비생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여기서 나온다. 진보‧보수 등 해당 언론사의 성향에 맞는 대답을 할 것인가, 아니면 소신을 밝힐 것인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답변이 아니라 그 답변이 나오기까지의 ‘논리’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면 상관없다. 입사 후 기사도 그렇게 스스로 재단해서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 후회없이 생각을 밝히는 편이 더 낫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내 주관을 또렷이 말했고, 당시 면접에선 합격했었다.

 

모 방송사 면접에선 소위 압박질문이 다수였다. 필기 점수가 낮고 토익 점수도 높지 않다는 식의 힐난이 이어졌다. 첫 공채 면접이라 흥분했던 것 같다. 어차피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 면접관에게 되묻고 싸우는 ‘참사’가 벌어졌다. ‘박세환씨는 면접보러 온 사람이에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물론 떨어졌지만, 이후 담대함을 배웠다. 실전 면접에 들어가면 이것저것 많이 활용해 보는게 좋다. 대화 중에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몸으로 배울 수 있다. 정말 가고 싶은 언론사보다 2, 3 순위 언론사 면접때 이것저것 적용해 보고, 정말 원하는 시험이 떴을 때 참고하면 좋다.


언론사 대부분은 인적성을 보지 않거나, 봐도 인성검사만 본다. 중앙일보의 경우 TOCT라는 시험도 보긴 하지만 대부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비중이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인적성 준비할 시간에 글을 한글자 더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그 밖의 전략들

학점과 토익, KBS 한국어능력시험 등 기본적으로 준비할 것들은 4학년 1학기 전에 다 마련해 놓아야 한다. 몇몇 언론사는 토익 제한이 820점이다. 이후 스터디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글을 써보는게 중요하다. 언론사 입사의 8할은 필기다. ‘논술’과 ‘작문’으로 나눠지는데, 매주 글감을 정리하는게 필수적이다. 어떤 주제가 나와도 써먹을 수 있는 나만의 서론 100개만 준비하면 필기 통과도 높은 벽만은 아닐 것이다.


언론계는 매우 좁다. 입사 후에는 타 언론사라도 모두가 선배고, 또 후배다. 대학‧스터디‧인턴기자‧한겨레문화센터 기수 등 다양한 인연이 묶여있는 게 언론계다. 이러한 풀을 활용해야 한다. 신문사 독자 칼럼 중앙일보 ‘나도칼럼니스트’, 논술대회 시상식 등 현직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많다. 무작정 덤벼서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해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선배들은 ‘사양산업’이라고도 폄하되는 이 직업을 하고 싶다는 지망생들을 돕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십분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알아둔 현직 기자들은 실무평가를 볼때도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 순방 따라가서 앙코르와트 유적에서 찍힌 사진. 대통령 오른쪽 4번째가 필자.


후배들이 꼭 고려했으면 하는 것 - 기자를 향한 절실함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자’라는 직업의 화려함만 쫓아 한번 해볼까 하고 준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고(직접 체험해보니 군대보다 더 심하다), 심한 꾸지람과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나날이 이어지는 게 기자생활이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사건을 전하는 방송기자의 이면에는 새벽부터 나와 영상을 챙기고 전날 놓친 기사에 대해 데스크에게 깨지는 고단함이 녹아있다. 오보와 고소 남발로 인한 마음고생, 때로는 지인까지 취재원으로 삼아야 하는 책임감이 기자의 일생이다. 7년여간의 내 짧은 기자생활 중에도 능력보다 곱절은 더 나가는 언론의 힘과 책임에 힘들어하고 좌절한 적이 많았다.

 

결국 언론사 입사는 ‘하다보면 된다’. 시간이 문제다. 보통 언론사 입사를 언론고시, 혹은 지하철 2호선이라고 부르지만, 필기를 통과하기 시작하면 금방 합격하는 게 이 바닥이다. 하지만 입사 후 포기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그래서 왠만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기자란 같은 나이대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무수히 어렵고 힘든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사람 죽은 시체와 함께 사회의 더러운 면도 매일 봐야 한다. 입사 준비를 하면서 계속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해두면 면접 대비도 보다 쉬워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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