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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7. 2019

태국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태국 방콕 여행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행 둘째날, 전승기념탑에 가는 길이었다. 택시비를 아끼려고 호텔부터 30분 거리에 있는 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지만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이국적인 풍경이 좋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흥겹게 걸었다. 전승기념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사고가 났다. 분명히 신호등은 파란 불이었다. 오토바이가 무섭게 다니는 태국이라 5~6초간 주위를 살폈다. 횡단보도 바로 옆으로 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한 오토바이가 돌진했다. 앗, 하는 사이에 오토바이와 충돌했고 나는 인도쪽으로 고꾸라졌다. 극심한 오른쪽 엉덩이뼈 통증에 고개를 들었는데 해당 오토바이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낑낑대며 인도쪽으로 움직여 길가에 앉았다. 휴대전화는 날아갔고, 지갑이 든 에코백도 한켠으로 튕겨져 나갔다. 주변에 있던 현지 사람들이 알유오케이 하며 다가왔다. 


다리를 내려다보니 시뻘건 상처 투성이였다. 황당하고 황망해서 아무 생각이 안났다. 행인들이 가방과 휴대전화를 가져다줬다. 어떻게 하지 고민이 들었는데 갑자기 한 행인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타라고 했다. 병원에 데려다 준다는 거였다. 정신없이 그의 뒤에 탑승했다. 


해당 오토바이는 근처 병원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바이크를 타고 호위무사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달리는데 고맙기도해서 나도모르게 아픈 와중에도 웃음이 났다. 15분여를 달려서 방콕 HUACHEW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나는 휠체어에 타고 리셉션으로 갔다. 생애 처음으로 외국에서 병원을 방문하는 거였다.



영어 공부좀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병원 직원도 딱히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으나 insurance 등의 몇마디 빼고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행자보험을 들고 와서 다행이었지만 어떤 절차로 진료가 진행되는지 제대로 소통이 안됐다. 현지 한국 영사관에 전화하니 점심시간이라고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일단 내돈으로 3000바트(우리돈 10만원)를 보증금으로 냈다. 휠체어에 앉아서 1시간쯤 기다리니 의사가 진료를 봤다. 서서 걸어보라고 했는데 아프지만 걸을 순 있었다. 뼈가 부러진거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너무 걱정이 됐다. 의사가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재서 또 하염없이 휠체어에 앉아 기다렸다. 엑스레이를 찍고, 기다려서 진료를 보는데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영사관과 여차저차 통화가됐고 스피커폰을 통해 동시통역 진료가 이뤄졌다. 뼈는 무사했지만 타박상이 상당했다. 약을 받고 치료비로 1400 바트를 더 지불한뒤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섰다. 병원에서 외국인은 아마 나 하나였던 것 같다. 간호사나 의사나 환자나 다 나를 쳐다봤다.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영사관측에서 뺑소니 운전자를 신고할 거냐고 물어봤다. 그 사람이 경찰에 잡힐 때까지 태국에 체류하거나 대리인을 두고 귀국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무보험 오토바이 운전자가 많아서 잡아도 4000바트나 되는 큰 돈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단다. 괘씸했지만 또 안타까웠다. 태국은 파란불이 켜져도 오토바이가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도 아마 외국인을 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도망치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그래서 그냥 신고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그 사람도 신호를 좀더 잘 지켜줬으면 한다.


태국의 병원 시스템은 한국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선진화 된 것 같았다. 진료->검사->다시 진료->처방의 순서로 진행됐다.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다. 별거 아닌 검사였는데 5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아마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 이리라. 의사부터 간호사, 호텔 직원과 택시 기사, 행인들까지 모두가 걱정하며 친절히 대해주었다. 관광대국은 역시 좀 다르다 싶었다.


처음으로 외국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느낀 것이 꽤 많았다. 해외로 떠날때는 무조건 여행자 보험을 들 것. 해당 국가 한국 영사관 번호를 숙지하고 출국할 것. 보험 청구 절차와 어느정도까지 보장되는지 확인해 둘 것. 그리고 혼자 여행을 가지 말 것.. ㅠㅠ


SNS의 힘을 또 한번 느꼈다. 영사관이 12시부터 1시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 계속 전화가 되지 않았다. 영어로만 병원 진료가 어려워서 태국 통역이 절실했는데 마음이 급했다. 페이스북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는 분들이 태국 영사관에 연락해줘서 도움을 받았다. 보험 청구 절차나 연락처등을 알려주는 페친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줄기 위로가 됐다. 불의의 사고로 다쳤지만 그래도 내 동태를 지켜보고, 도와주고,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좋은 분들에게 나도 잘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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