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환경인가, 개인의 의지인가

비싼 동네에 살면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걸까?

by 임희걸

한 부동산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특이한 닉네임을 쓴다고 합니다. 오프 모임을 할 때면 5억 형님, 7억 누님 이렇게 서로를 부르는데 이 금액은 집값이 아닙니다. 집값이 오른 금액, 그러니까 상승분입니다. 집값은 참 신기합니다. 도대체 저렇게 가격이 오르면 누가 살까 싶은데 계속 다음 매수자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제 대치동이나 목동같이 학군이 좋고 아파트가 비싼 동네는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치동, 목동의 아파트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요? 결국 이 물음은 '좋은 동네에 살면 과연 공부를 잘하게 될까' 하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우선은 좋은 대학에 갈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가정하고 글을 씁니다. 꼭 좋은 대학을 간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닐 겁니다. 게다가 공부의 목적이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만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일단은 논의가 너무 넓어지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독자 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최근 대세는 환경의 영향

사실 경영학에서는 환경론이 더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개인의 업무 능력 향상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모기업 알파벳)으로 대표되는 첨단 IT 기업의 경영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환경에 대한 논의가 거세졌습니다. 창의성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개인보다는 집단적 창의와 협업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창의와 협업은 특정한 환경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습니다. 픽사(Pixar)와 구글 같은 회사들은 사무공간 내 동선 설계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구성원들이 더 자주 마주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식사나 간식을 무료로 주는 것은 단순히 직원 복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식사 시간, 휴식 시간에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밖에서 사 먹지 않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

90년대 중반 미국 정부는 빈곤 탈출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빈곤을 대물림하는 현상을 끊어 보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추첨을 통해 가난한 동네의 4,600가구를 뽑았습니다. 이 가족을 중산층이 많은 동네로 이사시켜 주었습니다. 과연 이 가정은 뭔가가 좀 달라졌을까요?


하버드 대학의 라즈 체티와 나타니엘 헨드렌 교수는 이 4,600가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성공 여부를 분석했습니다. 이사를 간 가정의 아이가 대학에 훨씬 더 많이 갔고, 평균 소득이 31% 높았습니다. 연구팀은 이 결과에 자신감을 얻고 분석 대상을 확대하였습니다. 17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좋은 동네로 이사한 500만 명의 아이들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주지역과 사회적 성공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물론 비슷한 프로젝트 결과를 가지고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좋은 동네로 옮겨주면 더 공부를 잘하느냐가 그렇게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단 뜻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는 적이 있다 정도로 마무리 해 두죠.


bethany-laird-vGReyBvIX-o-unsplash.jpg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론

개인의 자유 의지를 중요시하는 이론은 환경론보다 훨씬 많습니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 사회구조와 환경의 영향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 공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고 여겨져 왔으니까요. 다만 과거에는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선천적 재능의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노력해봤자 타고 난 신분 질서를 뛰어넘을 수 없는 시대에는 당연히 개인 능력에 대한 관심이 적었죠.


개인의 의지와 관련된 주류 이론이 따로 없으니 최근 떠오르고 있는 학습 유연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학습 유연성은 미국의 창조 리더십 센터에서 제안한 개념입니다. 해당 기관의 연구 과제는 성공한 리더와 실패한 리더의 차이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결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사고방식을 배워서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리더는 조직에서 인정받고 더 빨리 중요 직책으로 승진했습니다. 반면 변화가 중요한 상황에서도 경직된 생각을 고집한 리더는 조직에서 도태되었습니다.


학습 유연성을 보면 결국 학습이란 개인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 시절 어른들이 공부 태도를 강조하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인데요. 결국 배우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공부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게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바꿀 수 있는 환경과 바꿀 수 없는 환경

우리나라에서는 학군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면 환경론자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집값에도 불구하고 대치동에서 살고 싶은 건 거기 가면 아이가 더 훌륭한(?) 대치동 아이들의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환경'에도 어려가지 요소가 있을 텐데 단순히 사는 동네 한 가지만 가지고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가정환경의 영향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죠. 같은 대치동이라고 하더라도 교육을 중시하는 가정이 있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가정이 있을 겁니다. 그 모든 대치동 아이들이 똑같이 자랄까요? 확률이 더 높을 뿐이지 동네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환경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유태인이 있습니다. 유태인은 2,000년 이상 전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살았으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화는 가정을 중심으로 계승됩니다. 식사 시간 중 대화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태도와 가치관을 전달합니다. 유태인을 보면 환경 중에서도 가정의 중요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는 어떤 동네에 살지를 결정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환경이 좋은 동네에 살기 위해서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돈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오래 고민해봐야 득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문화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환경론의 나쁜 점은 일단 환경을 탓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신봉하면 안 됩니다. 다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 보다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어울리면서 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꼭 비싼 동네가 아니더라도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나서 배우려고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책 읽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체부가 조사한 대한민국 독서실태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네요. 해가 갈수록 독서인구와 독서량이 모두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지 않는데 아이라고 책을 펼쳐 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