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이어폰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
막 취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친구가 전화를 했는데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느라 휴대폰 진동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미안,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진동 소리를 못 들었지 뭐야?"
친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물었다.
"너 신입사원이 근무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단 말이야?"
"왜 그러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근무시간에 버르장머리 없이 군다고 선배들한테 혼날 게 뻔해. 기본적인 사무실 예의가 아니니 절대 그런 짓하지 마."
나는 먼저 회사생활을 시작한 친구의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 팀은 전화도 자주 걸려오지 않고 방문자도 없는 편에 속한다. 잡담이 아니라면 동료와 얘기를 할 일도 없었다. 모두가 묵묵히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을 뿐인 사무실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면 될 뿐이지 굳이 이어폰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친구 말이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J대리님이 나를 회의실로 호출했다. 조용한 회의실에 마주 앉자 J대리님은 낮은 톤으로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아직 신입사원이라 사무실 예절을 잘 모르나 보네. 근무 시간 중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안 돼. 혹시 팀장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못 들으면 어떡해? 게다가 막내가 이어폰을 끼고 일하면 다른 선배들의 근무 기강까지 해이해질 수 있다고. 팀장님이 신입사원에게 기본예절을 좀 알려주라고 하시더라. 지금까지는 몰라서 실수했다고 생각할게.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해."
그렇게 내 이어폰은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처박히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언제 쓰레기통에 들어갔는지 이제는 책상 서랍에도 이어폰이 없다. 그런데 밥을 먹다 문득 이어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회사 동기들과 점심 먹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얘기를 꺼냈다.
"글쎄, 우리 신입사원이 참으로 당돌하단 말이야. 무선 이어폰을 쓰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더라고. 도대체 며칠이나 그러고 있었던 건지."
나는 문득 10여 년 전에 이어폰을 사용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 사이에 기술이 발전하여 이제는 무선의 시대가 되었다. 무선 이어폰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선배에게 불려 가 사무실 예절 운운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점심시간 내내 동기들은 당찬 요즘 신입의 업무 태도를 지적하느라 바빴다. 몰래 이어폰을 끼고 기분 전환을 해 보려던 신입들이 어느새 중년이 되어 후배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 시절 선배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선배 마인드는 참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씁쓸했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잔소리꾼이 되고 마는 걸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제 근무 시간에 이어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라는 점이 기쁠 따름이었다. 그날 바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무선 이어폰을 주문했다. 가격, 음질, 배터리 용량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기준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했다. 귀에 꽂았을 때 눈에 잘 뜨이지 않을 것. 그것이 내가 무선 이어폰을 고르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신입사원 때의 트라우마가 이렇게 오래 작용하다니 슬픈 일이다.
옛날 선배들이 '태도가 불량해 보인다.'는 이유로 눈치를 주던 이어폰. 사실 이어폰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주는 도구이다.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 주는데도 불구하고 사용을 금지당한 안타까운 도구다. 혹시 업무 시간에 집중이 잘 안되거나 업무 속도가 늦어서 고민인 사람이라면 생산성 향상 도구, 이어폰을 사용해 보길 권한다.
귀를 막으면 주변의 소음이 차단되며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사무실이 아주 시끄럽지 않다고 해도 생각보다 여러 가지 잡음이 떠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음악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스펀지형 귀마개를 사용해도 좋다. 귀를 막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좋아지고 일이 더 잘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일을 할 때 가급적 빠른 음악을 듣는다. 곡의 템포에 따라 생각의 속도가 빨라진다. 빠른 음악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리듬을 더 빠르게 해 준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져 있다. 쇼핑몰은 경쾌하고 빠른 음악을 틀어 고객들이 빠른 걸음으로 더 많은 상품을 보도록 한다. 음악을 듣지 않을 때보다 최대 2~3배 손이 더 빨라진다.
이어폰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음악으로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분이 좋을 때 일을 하면 몇 배의 성과가 나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좋은 기분을 '긍정 정서'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시그니처>의 저자 이항심 교수에 따르면 긍정 정서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주고 업무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준다. 하는 일마다 잘 되니 결국 업무 만족도까지 높아진다. 많은 연구 결과가 긍정 정서와 생산성 간에 상당히 높은 연관성이 있음을 밝혔다.
사무실에서 이어폰 꽂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상사가 부르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점이다. 몇 번을 불러도 못 알아듣고 있는 후배에게 역정을 내는 선배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나는 고도로 집중을 하면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더라도 누가 부르는 소리를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다. 누군가 불렀을 때 바로 대답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상태는 최고의 몰입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이다. 100% 몰입된 상태로 일해야만 실력을 모두 발휘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다. 제대로 일하려면 어차피 누군가의 부름에 바로바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로바로 선배의 말에 반응하기 위해 대기하라는 얘기는 몰입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일하라는 뜻이다. 후배 입장에서 이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가 된다. 비 몰입 상태로는 부지런히 해도 일의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폰이 동료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게 아닐까 하고 우려할 수도 있다. 창의력과 생산성이 높은 작업일수록 협업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소통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반드시 얼굴을 보면서 구두로 소통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메신저로 간단히 정보만 주고받으면 될 때가 있다. 상황에 따라 적합한 소통 방법을 택하면 될 일이다.
최근에는 바로 옆에 앉은 사람과도 사내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는 때가 많다. 메신저에는 늘 대화 내용이 남아 있기 때문에 따로 메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말은 휘발성이 있어 메모를 하지 않으면 쉽사리 잊어버리게 된다. 외부 사람과의 대화도 카톡을 사용하지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즉, 귀가 막혀 있다고 해서 소통에 방해가 되는 건 옛날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근무 시간에 양쪽에 이어폰을 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한쪽 귀로만 음악을 들으므로 다른 사람이 부르거나 전화가 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으면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건 후배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사의 선입견일 뿐이다.
유독 집중이 안 되는 날, 일은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초초하기만 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 그냥 무조건 일이 하기 싫은 날... 그런 날은 이어폰을 꽂고 빠른 음악을 틀어보자. 곧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리듬에 맞춰 어깨를 까닥까닥 움직이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깊은 몰입 상태에 빠져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직문화는 유독 '사무실 예절'이라는 딱딱한 문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몇 십억을 들여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몇 억 원짜리 업무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보다 사무실 근무 문화에 조금만 유연성을 허용하면 훨씬 더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IT 시스템에는 큰돈을 쓰면서 조직 문화에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으려 한다. 문화는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조직 문화 전체를 컨설팅하고 바람직한 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벌일 필요도 없다. 우선은 여러 가지 이유로 통제하던 직원들의 행동에 조금만 여유를 주면 된다.
무선 이어폰은 단연코 출퇴근 시간이 아닌, 근무 시간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