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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May 31. 2023

동생이 갖고싶어?

몇 년째 하는 둘째 고민

남편은 꿀댕이를 낳았을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둘째를 원한 것 같다. 그저 우리네 부모님들처럼 결혼하면 아이 둘은 낳아야지..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그런데 요즘 세상에 둘째라니, 어디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한 명도 낳길 주저하는 사회인데.

우리나라가 초저출산국가가 된 지는 이미 오래이고, 매년 출산율은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으며, 양육비 부담이 가장 큰 나라가 한국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마당에, 아이를 또 낳아 이 나라에서 키우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과연 잘하는 짓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낳는건 그렇다쳐도 누가, 어떻게 키우냔 말이다.

고민을 하다보면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고 생각을 멈추게 되었고,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 몇 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나와 남편은 더 늙었고, 신체적 능력이나 에너지도 떨어졌고, 파이팅도 줄었다.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신체적 건강을 20대 못지않게 유지한다지만 우리는 일과 육아에 지쳐 내 몸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게 변명이라면 변명.

내 한 몸 건사하고 한 명 육아하기도 이렇게 힘든데... 두 명은 두 배가 아니라 네 배로 힘들고 걱정거리도 네 배로 늘어난다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면 둘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애들끼리 놀게 되면 좀 편해진다지만 그 때까지는 어쨌든 나와 남편의 체력과 시간을 갈아넣어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 우리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지방에 거주하시기 때문에 급할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나마 꿀댕이를 지금까지 무탈하게 키운 것도 꿀댕이가 잔병치레를 많이 하지 않는 건강체질이고, 남편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여주며 잘 케어해 주고, 꿀댕이가 예민하지 않은 순둥이이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가 결코 내가 컨트롤한다고 할 수 있었던 사항들이 아니고 운이 좋아서였기 때문임을 안다.

이제 꿀댕이가 45개월째로 접어들어 (가끔 속을 뒤집기도 하지만) 대화도 잘 통하고 애교도 피우고 한결 함께 다니기 편해져 모든 상황들이 완벽하게 세팅된 듯 싶은데, 여기서 어떤 새로운 변수가 생기는 것을 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

남편도 나의 생각을 알기에, 또한 본인이 아기를 10달 동안 배고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한번씩 은근슬쩍 흘릴 뿐이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분들이나 친구들 중 둘 이상의 자녀가 있는 분들의 "둘이니까 좋다~"류의 말을 전한다든지, 인생계획 등등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자긴 (있지도 않은)둘째가 직장어린이집 다니는 것을 고려해 한 6년 정도는 지금 회사에 더 다닐 생각이라는 말을 한다든지.

그럴때면 나는 그냥 웃고 말지만, 그래도 둘째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왜인고 하니,


1. 꿀댕이가 너무 예쁘기 때문.

난 본래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꿀댕이도 계획한 임신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생긴 것이었어서 임신 초기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더니, 낳고보니 (처음엔 원숭이같아 놀라긴 했지만) 아기라는 생명체는 너무 신비로운 것이었다. 내 아기뿐 아니라 모든 아기들이 다 너무 예뻐보이고 소중해 보이는 마법같은 일도 벌어졌다. 또 조금씩 성장하는 순간들이 너무 경이로운데, 그런 순간들은 찰나와 같아서,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다 포착해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저장하지 못하는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꿀댕이가 이렇게 예쁜데, 또 다른 아기는 얼마나 예쁠까. 누구를 어떻게 닮았을까, 성격은 또 어떨까, 하는 궁금증.


2.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는 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꿀댕이가 열 딸 안부러운 애교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아들은 크면 다 부질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한 구전으로 익히 알고 있는 데다가, (대부분의) 딸은 엄마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점에서 나는 딸이 필요했다. 꿀댕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꿀댕이가 딸이길 마음속으로 엄청 바랐었더랬다. 물론 지금은 꿀댕이 자체로도 너무 사랑하지만.

앞선 글에도 이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엄마랑 나, 여동생의 관계가 정말 좋기 때문에 딸을 더 원하는 측면도 있다. 나도 나중에 나의 딸과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근데 이건 50%의 확률이라는 점에서 너무 치명적이다. 솔직히 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 둘째를 가져도 될 것 같은데, 아들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살짜쿵 생기려던 둘째 생각조차 없애버린다. 만약 내가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고민을 끝내고 둘째를 가지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은 또 아들이어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한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나름 비장한걸.


3. 애들끼리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근데 이미 친구가 되기엔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친구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이 고단한 세상살이에 함께 길을 가는 피붙이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거지. 나에게도 여동생, 남동생이 있고 남편도 형이 있으니.

아무래도 고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생각을 나누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돕거나 도움을 청하고, 기쁜 일 있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주고, 여행을 갈 때에도 가장 편한 동반자가 되어 주는게 형제자매라는 것에 우리 다 동의한다. 그런 점에서 꿀댕이에게도 형제나 남매를 선물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들끼리는 동성이 좋다던데, 꿀댕이를 생각하면 아들이 나으려나? 아냐아냐 아무래도 힘들 듯. 넘쳐나는 에너지와 우렁찬 목소리와 불도저같은 힘을 도저히 더 이상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언젠가 꿀댕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동생이 필요하냐고. 꿀댕이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아니?, 난 필요없어.”

라고 답했다. 왜 필요없냐고 물어보니 자긴 엄마, 아빠만 있으면 된다며.

사랑을 나누어 받기 싫어서 그런건가.

꿀댕이의 의견이 그렇다면야, 내 너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마 하며 내 마음 속 일말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며칠 전 친구네 집에 꿀댕이와 놀러갔을 때 친구의 돌쯤 된 딸과 함께 놀면서 제법 오빠노릇을 하며 동생과 잘 놀아주는 것이 아닌가. 동생이 좋아한다고 옆에서 방방이도 살살 뛰어주고, 동생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그러더니 돌아오는 길에 자기도 파니가 있으면 좋겠다고(파니는 꿀댕이가 좋아하는 추피책에 나오는 추피 여동생 이름인데 꿀댕이는 여동생의 대명사처럼 모든 여자 동생들을 가리켜 파니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 자기가 파니 잘 돌봐줄 수 있다고 ㅋㅋㅋ

꿀댕이 마음도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을 수 없나보다.




로스쿨 다닐 때 오랫동안 룸메이트를 했던 친구를 며칠 전 만났다.

친구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첫째를 낳았는데, 한 일년 쯤 지난 후 둘째고민을 하더니 어쩌다 쌍둥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왔었다. 자연임신이고 유전적 요인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쌍둥이가 생겼더랬다. 와우. 순식간에 세 아이의 엄마라니!!

친구가 쌍둥이를 낳은 후에는 카톡으로만 간간이 연락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어서 수다가 끝이 없었다.

세 아이가 모두 성격도 제각각, 기질도 제각각, 생김새도 제각각(쌍둥이는 남자 여자 이란성 쌍둥이다)이라며, 어쩜 다 다른지 신기하다고.

세 아이가 같이 노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오밀조밀 저들끼리 붙어서 얼마나 귀엽게 노는지, 친구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구나 싶었다.

근데 곧이어 시작된 팩폭의 시간.

식비며 교육비가 벌써부터 우려된다, 여행이라도 다같이 가려고하면 비행기표에 호텔방은 2개 잡거나 스위트룸을 잡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다, 걱정도 너무 많아져서 어디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을지 혹은 누구에게 맞거나 누구를 때리지는 않을지 키는 잘 클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릴지 생각하다보면 끝도 없다 등등.

아이가 셋이니 손 가는 일도 많아서 시부모님이 주중에 상주하시며 육아를 도와주시는데도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나에게 둘째 생각 아직도 없냐고 묻고는, 자기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긴 둘째 안 낳을 것 같다고. 한 명 낳아 부족함 없이 잘 키우는 게 좋은 것 같다고.


기쁨과 환희도 가득하지만 그에 따르는 희생과 어려움도 공존하는, 뭐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 아니겠냐마는.

둘째를 낳고 싶은 이유도 여러가지이지만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러가지, 하나하나 다 합리적이다.


내 생물학적 나이라든지, 꿀댕이와의 나이차이라든지 등을 고려하면 더 이상의 고민을 끝내고 어느 한 방향으로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왔다갔다 혼란한 나의 마음.


아~~~모르겠다. 일단 뱃살이나 빼고 다시 생각하자.

지금 이 상태로 임신했다가는 나중에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니…

(근데 3년이 지나도록 못 뺀 걸 뺄 수 있을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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