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회담>이란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어서 저자가 출현했던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책을 읽고 나니 직접 말하는 것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하지만 내면은 참 강인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5살의 어린 나이에 동아리 친구와 함께 ‘우리 에베레스트를 등정해보는 건 어떨까?’ 얘기하고 진짜 실행에 옮기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 모두들 우려하는 가운데서도 목표를 정하고 그 모든 걸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이뤄나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직접 훈련하고 준비하고 후원자를 찾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모험에 대한 힘을 얻게 되었다. 타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성공도 장담하지 못했겠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그들이 해냈기에 그 부분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10대부터 20대 초반의 나를 떠올려보면 남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름대로 적극적이었던 면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이 촐랑거리기도 하고 면박을 받기도 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삶에 대해 회의적이 되어가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지금 나에게 당장 옆 동네에 가서 살라고 한다면 아는 사람이 없다며 우울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을까? 나이 탓만 할 수 없는게 아무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꼭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계획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나와 상반되게 저자는 정말 열정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베레스트 산 등정만 해도 인생에 획을 그을만한데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으로 이동하는 계획을 짰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는 계획에 동조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완주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꿈을 공개하는 것, 그것은 상대를 향해 잠겨 있던 문을 열 뿐 아니라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주는 일이었다. (96쪽)
나는 그동안 내 꿈을 감추려고만 했다. 분명 너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거란 대답이 들려올 것 같아서 감추기에 급급했고 들키기라도 하면 당황하면서 부정했다. 그런데 최근에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자의 글을 읽으니 결과의 여부에 따라 일단 내가 하고 싶을 걸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긴 하고 싶은 거 없냐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건 지금 할 수 없겠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긴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거 최대한 지원해줄 테니 해보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서 정말 별거 아니지만 조금씩 실행해 보고 있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열정적으로 삶을 대하는데 타고난 천성이거나 어떠한 계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는 천성적으로 열정적인면도 있었고 어릴 적 엄마라는 이름의 부재와 이 모든 모험을 함께 한 가장 사랑하는 친구 롭의 죽음을 지켜보았기에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정말 죽마고우를 잃어버린 그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고, 그 친구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하다 우간다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 동참한다. 그것이 바로 ‘원 마일 클로저’ 모금운동이고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누군가처럼 열심히 살아낼 자신은 없지만 내게 주어진 조건과 삶에 충실 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무언가를 뒤집어엎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변화를 작은 것부터 실행해 보는 것. 그것이 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한다면 당장 행동으로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