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재밌는 책을 만나면 없던 시간도 내서 책을 읽게 된다. 젖먹이 갓난아이를 돌보고 있는 내가 이틀 만에 이 책을 읽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를 보면서도 틈만 나면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연일 푹푹 찌는 불볕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아주진 못하더라도 더위에 지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불러 낼 수 있는 마력. 그것이 장르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철저히 과정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1960년대가 배경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긴 시간을 끈기 있게 추적한 결과물은 결국 드러났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어떠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범인을 추리하고 찾는 일. 핸드폰 없고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으며 각 지방의 경찰서마다 협조 요청하는 것도 힘든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두 발로 뛰며 실마리를 잡았다 놓치고, 헛물을 켜다 실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형사 이마니시가 있었다.
원한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을 심하게 뭉개버린 한 남자의 시신이 전차 조차장에서 발견된다. 유일한 증거는 전날 밤 한 술집에서 피해자와 범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를 보았고 피해자가 도호쿠 사투리를 썼으며 ‘가메다’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도무지 사건을 풀어나갈 수 없는 정황을 말해주듯 진전이 없어 합동수사는 해체된다. 그대로 놔둔다면 미해결 사건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마니시 형사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의문을 갖고 궁금증을 풀어가며 먼 지방까지 답사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까지 놓치지 않는 끈기를 보인다.
이 살인사건을 누가 어떠한 이유로 일으켰냐는 게 독자의 궁금증인데 그 결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증거가 너무 없기도 했고 범인의 인적사항은커녕 피해자를 찾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상황에서 언뜻 보기에 사건과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기록되기도 했는데, 연관이 없다면 저자가 치밀하게 그려낼 일이 없을 거라는 짐작아래 꼼꼼히 읽어나갔다. 이마니시 형사의 동선처럼 때때로 인내를 요하기도 했고 사건 해결이라는 종점을 향해 가기 위한 정황들이 너무 눈에 띄기도 했다. 한 사람의 범인을 의심하긴 했지만 이대로 이 사람이 범인으로 결론이 난다면 지금까지의 과정이 너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알 듯 촘촘히 깔아놓은 복선 아래 범인은 이미 모습을 드러냈으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과정이 너무 성실했기에 범인의 의도가 충격적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오해와 충동은 당시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사회파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저자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었다. 그럼에도 처음만나는 이 작품으로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단박에 알아챘다. 자극적인 소재들로 물들어 있는 요즘 세대에 비하면 조금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저자가 이 소설 속에 녹아내려 했던 사회의 모순과 그 시대를 살아나가던 사람들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굉장히 촘촘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랄 수 밖에 없다.
또한 범인이 숨기고 싶었던 과거에 대한 열등감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잘못을 제쳐두고라도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자극적인 일들의 원인에도 현 시대의 흐름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잉태하는 것. 그런 사람들을 이 사회가 품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잘못된 편견이 사회적 흐름이 되어 버렸다. 그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다고 해서 용기가 될까? 나부터 그런 편견을 버리자는 조그만 용기를 내더라도 쉽게 타인의 생각에 휩쓸려 갈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이 너무 안타깝고 지금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혀만 찰뿐 어떠한 해결책도 책망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그만큼 씁쓸한 소설이기도 했다. 읽어낸 속도만큼 소설의 내용을 쉽게 간과하고 잊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를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 나 또한 무심해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이 소설을 떠나보내지 못한 이유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