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쿠라 히로미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
종종 책 표지만 보고 사는 책이 있다. 한 번의 들춤도 없이 오로지 표지와 제목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책. 이 책이 그랬다. 한 번도 들춰보지 않고 묵묵히 계산을 치르고 집에 가져와서도 펼쳐보지 않았다. 이런 책은 마음의 준비가 될 때에 펼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갈 무렵의 어느 깊은 밤, 서가에서 책을 꺼내왔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조용히, 그러나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멀리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짧은 글들은 읽지도 않았는데 사진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져 한참을 다른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하면 너무 식상할까.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이제는 창피하거나 회피해버리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늘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푸르른 자연은 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감성은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거나 밤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아니면 신나게 뛰어놀거나, 극과 극을 달리는 나의 놀이문화에서 이 아이들이 겹쳐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처럼 많은 것들이 열악하진 않았지만 유난히 멀었던 학교, 틈틈이 농사일을 거들고, 넉넉하지 않았던 환경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30대 초반인 내가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40~50대 분들과 얘기가 통하는 것이 이런 어린 시절 때문일 것이다. 걸어서 1시간을 가야 학교에 도착할 정도로 두메산골에 살았고, 농사일 때문에 학교를 못가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바쁠 때면 여지없이 일을 도와야했다. 그러면서도 늘 무언가에 굶주려했고, 그것을 채워 줄 것들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드는 의문은 과연 그때의 나도 이 아이들처럼 맑았을까 하는 것이다.
유난히 눈동자가 새까만 아이들. 표정에서 모든 감정이 드러나는 아이들. 현실은 팍팍한데 그것을 알면서도 밝게 살아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이 짧은 책 안에 모두 담겨있다. 삭막하면서도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오는 아이들, 동물을 돌보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수업에 임하는 아이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하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인연을 맺어왔는데, 그가 찍은 사진과 쓴 글을 보면 단기간에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라는 느낌이 단박에 든다. 그 속에서 함께 살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함이 뚝뚝 흐르다 못해 책장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현장감이 돋보인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친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딘가 낯이 익었고 내가 지나왔던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모습이 아닌가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나처럼 눈동자가 탁해지지 않기를 바랐고, 때에 절지 않기를 바랐다. 어쩜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을 상상하는 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너무 멀리 가버리고 만 것이다. 아이들에게 새 책상과 의자가 주어졌을 때, 방학이 끝나 새 학기가 시작되고 봄이 왔을 때처럼 점점 더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따뜻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