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아무튼 어디에고 빛이 없다는 것. 내 머릿

가네하라 히토미 <뱀에게 피어싱>

by 안녕반짝


『뱀에게 피어싱』을 알게 된 것은 아쿠타가와 상 수상소식 보다 김영하 작가의 추천 때문이었다. 한참 재미나게 읽고 있던 김영하 작가의 책 속에서 이 책이 나왔다. 독특한 이력과 스무 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호감이 가면서도 약간의 경계심이 일었다. 천운영 작가님의 추천사처럼 나 역시 ‘운 좋은 작가라고, 막나가는 일본 젊은애들의 고만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창 혈기가 왕성한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분명 인상을 찡그릴 책이었다는 데에 장담한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만나서인지 '문장 단면에 배어나온 깊은 울림을, 고통을 위장하거나 부풀리지 않는 냉정함과 그 속에 묻어나오는 열정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제야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한 호흡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날 때면 무척 반갑다. 초반 30페이지만 수월하게 넘기면 한 권은 뚝딱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뱀에게 피어싱』도 무척 고마웠다. 분명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님에도 이렇게 술술 잘 읽힌다는 것에 스무 살의 나이에 쓴 작품이라는 것에 감탄했다. '스플링 텅'을 아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시작부터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드러낸다. 도마뱀의 혀처럼 피어싱을 해서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첫 만남을 갖게 된 아마와 루이. 아마를 따라 루이도 스플링 텅을 하게 되면서 시바 씨를 알게 된다. 그 셋의 이야기는 루이의 피어싱이 커질 때마다, 스플링 텅에 가까워짐에 따라 흘러가게 되는데 결코 유쾌한 소설은 아니라고 거듭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 매력에 이끌려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플링 텅도 충격이지만 혼전 동거, 폭력, 사디즘, 알코올 중독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그야말로 어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루이가 시바 씨의 가게에 들어섰을 때 변태들이나 좋아할법한 가게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소설을 어떤 이들이 좋아하게 될까 나 역시 궁금해졌다. 소설을 읽어나감에 따라 어떤 특정한 이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군상을 보게 되는 거라고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다. 나하고 다르다고 무조건 인상을 찡그리고 무시하게 되면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와 시바 씨 사이에서 루이의 어정쩡한 태도, 아마의 충동적인 이면, 시바 씨의 사디즘 뒤에 숨은 진부함 들을 비교적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시각의 차이가 컸다. 내 스스로도 이렇게 무뎌질 수 있는 것인가에 놀랄 정도로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이는 아마와 동거를 하면서, 시바 씨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삶의 의욕을 찾지 못했다. 스플릿 텅을 확장해 가거나 등에 용과 기린 문신을 할 때 잠시 무언가 반짝이는 흥분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점점 시들시들 해지는 것 같았다. '뭐랄까…… 아무튼 어디에고 빛이 없다는 것. 내 머릿속도, 생활도, 미래도, 완전한 암흑이라는 것.' 루이가 느끼는 이런 무기력감을 20대 초반에 경험해 본적이 있는 터라 아마가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부러웠다. 욕망을 맘껏 분출하고, 편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독과 고뇌들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날, 그리고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 된 날, 아마를 시바 씨가 해를 입혔을 거라는 의심이 든 날들을 루이가 모두 받아들이기엔 벅찬 감이 있었다.


옮긴이는 '이 소설을 연애소설로 보는 데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루이가 정말로 아마를 사랑한 것인가 하는 의문에 기인한다.' 고 했다. 나 역시 루이가 아마를 깊이 사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다는 점'에 수긍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부분을 아마가 알지 못한 것이 다행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가 죽었을 때 깊은 상실감을 느꼈으나, 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예의로 치부 될 뿐 사랑이라는 느낌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시바 씨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아마보다 더 속을 알 수 없는 시바 씨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루이의 깊은 속내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갖게 되는 변화를 그렇게 무정 없이 지켜보았다.


이 불편한 소설을 거리낌 없이 읽어낸 것, 어떠한 찡그림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대견스러울 정도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새로운 세계를 맛본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소설의 소재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어쩌면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 내면 속의 밑바닥의 그림자들이 뭉클뭉클 올라오는 느낌을 받더라도 이 소설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한 순간이나마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거북한 면들을 덮어 버리고, 이면의 진정한 자신과 조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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