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하딩 <팅거스>
허름한 식당이나 상점을 둘러보다 생뚱맞게 걸려있는 벽거울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집 벽에 걸려있던 촌스런 꽃무늬가 그려진 벽거울은 여전히 시골집 벽을 차지하고 있다. 그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늘 그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하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오빠나 언니들이 아무리 진동 면도기를 사다 드려도 기어코 날을 갈아서 면도를 하시던 아버지. 거울 높이를 맞추시느라 구부정하게 표정을 바꿔가며 면도를 하던 아버지가 마치 어제 일처럼 불쑥 떠오른다. 왜였을까. 『팅커스』의 주인공이 떠올린 아버지와 추억을 묘사하는 잔잔함의 영향 때문이었다. 거기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회상하고 자신도 곧 그들처럼 죽음이란 세계로 합류해야 한다는 시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내게도 추억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며 소설은 시작한다. 조지는 그 환각상태에서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채워나간다. 종종 현실 세계로 돌아와 질문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미 삶은 그에게서 벗어난 것 같았다. 조지의 이야기에는 아버지 하워드가 있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다정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듯 강인한 어머니 사이에서 그럭저럭 추억을 만들어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단 하나 걱정거리가 있다면 아버지의 간질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발작을 보지 못하도록 신경 써 왔는데,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켰고, 조지는 아버지에게 숟가락을 물리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는다. 그 사건으로 조지의 엄마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 때라고 다짐한다. '자식들과 아무런 관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을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도저히 자신을 감당하며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라고 되뇌는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 특별히 다정다감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가져온 정신병원 안내서로 인해 하워드는 집을 나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딱 한 번, 재혼한 아내가 친정에 갔을 때 서툰 운전을 해가며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조지의 집에 찾아간다. 조지가 아버지로 인해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던 날처럼 크리스마스였고,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조지의 기억에서 가장 벅찬 날로 기억되는 듯, 모든 기억이 지나가고 책의 말미에 드러난다. 소설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하워드지만, 죽음을 앞두고 그 모든 것을 정리하는 인물은 조지였다. 조지가 아버지 하워드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하워드는 괴짜 목사였던 아버지를 '이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라고 떠올린다. 그렇게 삶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묘한 소설에 조금씩 매료되어 갔다.
『팅커스』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몽롱함이다. 꿈을 꾸는 듯, 환각상태의 조지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여행을 한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조지를 드러내는 시계 이야기, 죽음, 추억들이 나열되어 있는 소설 속에서 삶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만들어지기 전에조차, 이미 부수어지는 것, 또는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모든 것은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거야.' 라는 말처럼 완성되지 않은 무엇, 파괴되지 않은 무엇을 끊임없이 말하는 듯 했다. 그렇게 조지, 하워드, 하워드의 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는 끝이 아닌 이야기로 남았다. 조지 곁을 지키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손자는 '그것과는 관계없이 백 년의 세월이라는 반경을 가진 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로 이루어진 이 세월,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이 세월은 할아버지가 준 선물 같아요.' 라고 말한다. 손자가 느끼는 것이 조지가 회상하는 모든 이야기의 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쓰느냐가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팅커스』의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에서 드럼을 치다가 밴드가 해체되자 글이 쓰고 싶어 창작 교육 과정에 들어가 글쓰기를 가르치다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한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다 간신히 글을 쓴지 거의 10년 만에 첫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작품도 작품이지만 저자가 화제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서점이나 가정집에서도 부르면 달려가 독서토론회를 했다고 하니, 그의 작품을 발견하고 밀어준 소규모 서점들이 그의 수상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이유가 느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내가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옮긴이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작품이 그려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두고 있는 풀뿌리 독자들에게서는 공감을 얻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지 않았을까?' 라고 이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혹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삶의 존재들이 그러하듯 느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한 시간들의 진가를 이제야 발견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