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이 비폭력 운동가들을 위한 단순한 안내서에 그치지 않고 가장 작은 생명체도, 작은 호빗도 강력한 권력에 맞설 수 있음을, 자신의 창의성과 헌신과 용기에 의지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길 바란다. (286쪽)
부끄럽지만 시민운동은커녕 언론에 드러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이지도 않는 게 나다. 이기적이고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정보만 습득하는 그야말로 평범하지만 내 권리를 세게 주장해 본 적도, 무엇에 열정적으로 동참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마주하면서도 나와 독재자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이런 사회운동에 관한 책을 읽어서 과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몰라 시큰둥했다. 내가 속한 영역만 잘 지켜진다면 큰 상관이 없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심정으로 바라봤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은 내제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무거움으로 응수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유머가 있었고 영리하게 독재자를 약올(?)리면서 그에 맞서는 모습에 묘한 쾌감을 느낄 정도였다. 정작 가까이에 독재의 그늘아래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을 두고 있으면서도, 마찬가지로 작은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 낫다는 생각에 이질감을 느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경하듯 무관심할 수도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그런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재 치하에 있는 사람들만 이 책 속의 내용이 와 닿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 책의 내용을 큰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독재자의 권력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서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비법을 전수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부당한 것과 불합리한 것, 권리를 주장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작은 그림으로도 언제든 우리는 이들처럼 시민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가 주어진다. 시민운동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자유를 향해, 정의를 향해 주먹을 쥐는 행위만으로도(저항이란 뜻이 검은 주먹의 오르포트! 운동만 봐도) 뜻을 함께 할 수도 있다.
저자 또한 독재 치하에서 어두운 청춘을 보낸 이력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오르포트! 운동을 시작하고 세계 곳곳의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운동을 전수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평범한 나라를 원했다. 음악도 마음대로 들을 수 없는 나라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거절당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단절이 있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내가 그러한 상황이었대도 저자에게 비폭력운동을 배우려 왔던 많은 나라의 사람들처럼, 절대 우리나라에선 그런 운동이 힘들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파묻혀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끔찍한 경험이 토대가 되는 저자의 글은 재미있게 읽힌다는 사실이 서글플 정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길 바랐다. 저자의 당부처럼 영웅담으로 읽거나 평범하던 내가 영웅적 지도자가 될 것처럼 읽기를 나 또한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책임의식을 갖고 행동할 때 삶은 훨씬 의미 있으며, 훨씬 재미있다.(276쪽)’는 사실만 인지해도 위기의 순간에 절망이 나를 휩쓸어 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에겐 도대체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하고 시큰둥하게 책장을 열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곰곰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여전히 내 울타리 안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변화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며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내재해 있던 근원을 알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갑자기 자연재해나 테러가 일어난다면,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이 세상을 갑작스레 떠나야 하는 일이 닥친다면, 내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절망적인 무모한 상상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내가 스스로를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려는 노력을 할 때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모한 절망과 희망이 아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그것이 변화를 맞이할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