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어린 시절은 무척 행복했을 거라 믿었다. 그간 만나온 그림속의 장난기 많고 사고뭉치인 남자 아이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림들을 그릴 수 있고 과거를 반추하면서 그 시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추측은 보기 좋게 깨졌다. 저자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부모님의 잦은 싸움, 사생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대부분 독학으로 배워야 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조금 침울해졌다. 먼저는 저자가 그린 수 많은 어린 남자 아이들처럼 아이답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 그럼에도 익살스럽고 장난기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상반되어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래요, 정말 난 하나도 즐겁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이렇게 즐거운 것들을 좋아하게 됐을 겁니다. (24쪽)
나는 저자의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 꼬불거리고, 산만하고, 의미를 알 수 없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좋다. 오랜 시간 동안 저자를 만나오면서 생긴 편안함도 한 몫 할 것이다. 하지만 삽화를 제외하면 큼지막한 그림과 짤막한 글이 대부분인 저자의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었다. 짤막한 글이 설명이 되어줄 때 보다 그림의 의미를 더 난해하게 만들 때가 많은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 뉴요커 표지를 그리면서 겪게 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집『뉴욕의 상뻬』를 읽으면서 그의 그림들을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만난 것 같았다.
어떤 시기에는 어린 아이였는데 나이가 들었다니, 참으로 묘한 감정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것들에 왜곡된 행복의 옷을 입힌다고 나는 확신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걸요. (122쪽)
저자가 지나 온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왔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들려 온 음악이 그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고 현실을 도피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얀 캔버스 위에 쓱쓱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를 통해 알았고, 그 행위로 인해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렇게 힘겹게 지나 온 세월 속의 자신에게 ‘왜곡된 행복의 옷을 입힌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그런 옷을 입힌 경험이 있으므로 반대의 이미지 일지언정 예술로 탄생된 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둡고 침울하고 고생스럽고 희망이라곤 없었을 것 같던 그 시간을 지나 저자는 그림으로 엄청난 세계를 경험했다.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불우한 시골 소년이 그림을 통해 뉴요커의 표지를 그리기도 하고, <꼬마 니콜라>라는 책으로 유명해지고(저자에게는 유명하다는 의미가 여전히 낯선 것 같지만^^),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순간순간을 헛되이 지나가게 두지 않고 남들보다 조금 힘겹게, 돌아서 간 길일지라도 결국은 그런 노력과 인내가 쌓여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만나온 그림과 닮은 혹은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의 의도에 맞게, 때론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좋았다. 자신의 작품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하게 해석 되는 것. 그가 펼친 캔버스 위 세상은 이렇듯 광대하다. 저자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감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조차 감격스러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