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욕망하는 존재가 된다
지인의 추천으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았다. TV 역사의 이전과 이후를 나눈 드라마(출처 나무위키)란 찬사를 받은 작품 답게 아직 3월이지만 감히 올해의 콘텐츠로 꼽아본다. 각 인물들이 여러 상황에서 보이는 모습들을 통해 인간 본성과 전략적 상황 판단들을 보며 내 삶의 경험을 돌아보았다. 30대 동안 직장생활 - 창업 - 재창업의 시기를 거치며 겪은 여러 시행착오들, 더 나아가 앞으로 나란 인간이 저지를 법한 실수들에 대해 고찰하고, 행복이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약 3주에 걸쳐 틈나는 대로 정주행했으며, 시청 속도를 위해 일부 전쟁 장면은 과감하게 스킵했다. 본 감상문은 내 생각정리를 위함고, 스포는 아주 많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브라우저를 닫으세요!!!
어린 시절 산사의 꿈은 세르세이였다. 화려한 수도에서 왕비가 되는 것. 꿈을 좇아 킹스랜딩에 가고, 조프리를 사랑(?)하게 되고, 왕비수업을 받게 된다.아이러니하게도 꿈을 좇았던 그녀는 하루하루 더 불행해진다.
산사의 불행을 보며, 무엇을 욕망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산사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눈에 보이는 멋진 것들-수도에서의 화려한 삶, 왕비가 되어 예쁜 드레스를 입고,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삶-이 그녀가 바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많은 것들이 이와 같다. 소위 화려한 삶이라는 것들, 보이는 것들을 좇는 것은 선택이 쉽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산사처럼 불행해지진 않겠지만, 욕망의 본질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사의 ‘욕망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은 통치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여자로 태어나 통치자가 될 기회가 없는 그녀에게 상상 가능한 선택지는 왕비가 되는 것 뿐이었고, 그녀는 이것이 자신의 욕망이라 생각해 좇다가 고난을 맞이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북부의 여왕이 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칫 베일리시처럼 성공만을 좇는 기회주의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녀는 칠왕국으로부터 독립한 북부의 여왕이 되고, 통치자로서의 정의감과 책임감도 갖게 되어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실현한다.
나는 우리의 욕망이 곧 우리의 존재를 만든다고 믿는다. 편안하고 안락한 죽음을 좇던 티리온 라니스터는 많은 위기를 넘기고 ‘평화로운’ 육왕국에서 ‘평화를 지키는’ 수관이 되어 평온한(?) 삶을 맞이한다. 산사가 마지막에 정의와 책임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여 균형을 이룬 것과 동일하게, 호기심을 좇아 매음굴과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생존을 좇아 그때 그때 최선의 선택만을 하고 살아온 그 역시 마지막 순간에는 충성과 정의라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존 스노우는 어떤가? 중간중간 철왕좌에 앉을 만한 기회가 있었고, 심지어 죽음에서 부활까지 하는 등 최고로 운이 좋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정의’만을 바라보고 욕망한다. (운 좋게도 이런 엉망인 프로그래밍 규칙 속에서도 그는 끝내 죽지 않는다!!)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속세를 등지고 장벽의 수호자로 삶을 마무리한다.
우리의 욕망은 앞서 살펴본 극 중 많은 ’죽음’의 사례처럼 때로는 우리를 파멸시킨다. 특히 욕망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눈으로 보이는 욕구들과 현상만을 좇다보면 당장은 즐겁고 편할지언정 불행과 몰락의 길로 스스로를 몰아낸다. 지속적이고 온전한 욕망의 추구,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행복한 삶-조금 현실적으로 말하면 파멸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산사나 티리온처럼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드라마를 보며 배운 점이다.
나는 오늘도 무엇을 욕망하며 살아가는가? 내가 욕망하는 것은 단순히 현상이 아닐까? 내 욕망의 본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