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진기 놀이

찰칵! 딸깍!

by 글쓴이

* 아이의 24개월 시절 함께했던 놀이



1회용 필름 카메라, 아이가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나무라지 않을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놀이




이따금씩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마치 내가 제3자가 되어 어린 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그 장면들은 꼭 닥나무로 만든 종이의 질감 같아서 약간의 노이즈가 껴 있는 듯하다. 추억도 열화가 되나 보다. 그 거친 장면 속에 들어있는 내 모습을 지켜볼 때면 나는 꼭 유원지나 공원에서 사진을 찍던 그 옛날의 사진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육체의 성장은 필히 시선을 고도화시킨다. 어린 시절 내가 보던 세상의 높이는 어땠을까. 어린 시절 나는 무엇에 눈길을 끌리곤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많은 물리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 아들의 시선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해보고 싶어졌다.



아이와 함께 행주산성 일대를 놀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인터넷으로 1회용 필름 카메라를 주문했다.



‘ISO 800 필름, 고정 셔터, 27장의 필름 수, 재활용 불가’



상품을 설명하는 기능적 특징보다 손가락으로 끼릭끼릭 돌리는 손맛과 스타카토 연주법처럼 톡 끊어지는 플래시 소리, 남은 촬영 가능 장수를 보는 긴장감 등이 먼저 떠오른다.



따스한 주말, 가족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행주산성 역사공원에 도착하여 아이에게 사진기를 건네주었다.



- 아들, 이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아들이 찍고 싶은 모습이 있으면 여기에 눈을 대서 확인한 뒤에 이 버튼을 딸깍! 하고 누르면 돼. 그러면 사진을 찍을 수가 있어!



- 좋아!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이 왜 없지? 왜 안 나와?



- 글쎄~? 이상하다? 사진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 사진이 없어져 버려서 속상해.



-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찰칵하면 사진이 바로 나오지? 그런데 사진은 원래 사진기에 빛을 담는 것이라 시간을 충분히 먹어야 잘 만들어지는 거야. 이 사진기는 빨리 사진을 보려고 하면 예쁜 사진을 볼 수가 없어. 독특하지? 아빠가 아들에게 준 사진기는 꼭 할아버지 사진기 같은 거야. 며칠 기다리다 보면 나중에 사진들이 선물처럼 네게 나타날 거야~ 아빠도 네가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더 궁금하고 기대가 돼. 나중에 사진이 집에 오면 같이 보자!



- 할아버지 사진기라서 엄청 신기해.


이작가의 열심



며칠 뒤 사진관에서 인화를 하였다. 아들이 찍은 세상에는 내가 추억을 회상할 때 보이던 그 거친 재질들이 녹아 있었다.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는 그 사진들을 찬찬히 보는데 괜스레 찡한 마음이 올라왔다.



- 아들! 사진이 왔어!



- 어디?!



- 짜잔- 우와 나무랑 강물을 진짜 예쁘게 찍었구나~



- 내가 잘 찍었지?!



휴대전화나 DSLR을 아이에게 오롯이 맡기는 것이 어렵다면 추억의 1회용 필름 카메라를 한 번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조금 느리지만 무게감 있는 사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종반부 뮤직비디오 느낌의 사진



흔들리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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