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없다고. '한니발이 로마에 패배하지 않았다면',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축출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간절하게 이런 가정들을 한다 해도 해당 사건들을 다른 식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역사에서 가정법을 적용하려는 사람들은 해당 역사를 쟁취하지 못한 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을 격퇴한 로마군이 뭐가 아쉬워서 역사의 가정법을 사용하겠는가? 능양군(인조) 세력들도 무엇하러 광해군 걱정을 하겠는가?
이렇듯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역사의 가정법은 해당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 혹은 그들에게 공감하는 후세의 몫으로 남게 된다. 역사의 가정법은 정통 역사서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소설이나 영화 같은 예술 분야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 해당 역사가 한이 서려 있으면 있을수록 가정법은 더욱더 왕성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영화 <암살>도 역사의 가정법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에 대한 가정법? 친일매국노 척결에 대한 가정이다. 실제로 <암살>이 그려낸 장면들은 사실이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1933년에 친일매국노 강인국(이경영 분)과 조선 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가 저격을 당하지 않는다. 사실 강인국과 가와구치라는 인물조차도 가공의 인물이다.
<암살>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털어낸 후 본다고 해도 수작이 될 만했다. 이정재와 하정우의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테니까. 더군다나 영감(오달수 분), 속사포(조진웅 분), 황덕삼(최덕문 분) 등의 감초 연기는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웃게 하였다.
광복을 맞이하는 순간, 김구 선생과 김원봉(조승우 분) 선생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나온다. 약산 김원봉은 잔에 술을 채우며 이런 말을 남겼다.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김구와 김원봉, 두 거물에다 단재 신채호 선생까지 술자리에다 합석시키는 것이다. 물론 단재 선생은 1936년에 돌아가셨으니 그 세 분이 1945년도에 자리를 같이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억지로 단재 선생까지 소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반민특위에 불려 나온 염석진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거기에 더해 안옥윤이 "왜 배신을 했느냐"고 묻자 이렇게까지 답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일본이 빨리 망할 줄은 몰랐으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그렇다. 소설가 이광수, 시인 서정주가 광복 이후에 실제로 내뱉은 궤변이다. 이렇게 궤변을 내뱉었어도 그들은 잘살았다. 그와 달리 독립운동가들은 찬밥 신세에다 모욕감까지 느껴야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원봉이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시라. 실제로 김원봉은 그렇게 당했다. 독립군을 고문했던 악질 노덕술에게 해방 후 조국에서 수모를 겪었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역사서에는 가정법이 들어설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가정법은 예술의 영역에서 계속 생명력을 이어 나갈 것이다. 한편 그런 방식은 한풀이식의 자기 위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가정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면 된다. 자리에 동석하신 신채호 선생의 명언에서 역사적인 교훈을 얻는 것이다. 그래야 친일매국노들이 염석진처럼 적반하장을 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