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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by 곽작가 역사트레킹 Nov 07. 2018

서울 최고의 단풍 명소를 찾아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10편 _성북동 역사트레킹






“서울도 단풍의 도시입니다.”


추석 즈음이 되면 필자는 가끔가다 저런 말을 내뱉곤 한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놀라워하며 해당 명소를 알려달라는 긍정파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부정파였던 걸로 기억한다.


- 피... 오버하시는 거 아니에요?


필자가 서울학개론으로 먹고 살다보니, 서울을 너무 과하게 격상시켰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은 저렇게 질책을 하셨다. 그런 면에서 좀 억울한 면도 있다. 진짜 서울에도 설악산만큼 아름다운 단풍 명소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벚꽃은 축제까지 개최하며 자랑을 하지만 서울의 단풍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서울은 단풍의 도시’라는 말을 힐난하셨던 거였다.


하지만 ‘서울은 단풍의 도시’라는 말은 사실이다. 이번 ‘성북동 역사트레킹’ 편을 읽어보시면 필자의 말에 수긍을 하실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성북동 역사트레킹에서 확실히 각인시켜 드리겠다.




* 성북동 역사트레킹: 단풍이 아름다운 무장공비 루트





● 법정스님과 길상사


춘녀사추사비(春女思秋士悲)라는 말이 있다. 봄에 여인들은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가을에 선비는 비애를 느낀다는 뜻이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춘녀사추사비’처럼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지만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길을 나선 트레킹팀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여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녀들은 봄꽃을 반겨하는 봄 처녀들처럼 곱게 물든 오색단풍 앞에서 크게 환호했다. 사실 형형색색의 단풍 앞에 남녀가 어디 있고, 노소가 어디겠는가? 그냥 즐겁게 즐기면 되지!


서론이 길어졌다. 성북동 역사트레킹의 첫 탐방지는 법정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상사다. 길상사는 고급요정인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북악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이후 리모델링을 실시했지만 사찰 건물의 대부분은 요정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길상사: 본당인 극락전. 단청을 칠하지 않아 고택 같은 분위기가 난다. 




대원각이 조계종에 등록됐을 때는 1995년 6월이었는데 당시는 ‘대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 2년 후인 1997년에 시주자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의 법명과 비슷한 ‘길상사’로 명칭이 바뀌어 창건된다. 대원각을 운영하였던 길상화 김영한은 당시 시가로 천억 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했고, 그런 길상사에 법정 스님은 회주(會主: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로 임하게 된다.


“법정 스님이면 무소유로 유명한 분인데... 아무리 시주를 받았다지만 천억 원이면 너무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요?”

“부담이 됐겠죠. 안 됐다면 그건 거짓말일거에요.”


전에 참가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아무리 시주 형식이라지만 천억 원이면... 로또를 몇 번 맞아야 하나? 더군다나 법정 스님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셨던가? 그래서인지 법정 스님은 10년 동안 김영한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10년 동안 시주를 제안한 김영한도 10년 동안 그 제안을 거절한 법정 스님도 정말 대단한 분들인 것 같다.


“곽 작가님은 누가 천억 원을 시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럼 저는 바로 ‘제소유’로 만들 겁니다. 무소유가 아닌 제소유!”


길상사는 성북동을 찾는 이들이 잊지 않고 탐방하는 명소가 되었다. 꼭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방문하면 좋을 장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좋은 길상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1. 법정스님

2. 김영한

3. 대원각

4. 시인 백석

5. 종교화합




● 1000억 원보다 시 한 줄이 더 낫다?


1,2,3은 다 언급이 됐는데 시인 백석과 종교 화합은 좀 낯설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명이 백기행이었던 백석 시인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시를 썼는데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석을 좋아했던 시인 안도현은 문학청년 시절에 그의 시를 여러 번 필사했다고 한다. 이후 2017년에는 <백석 평전>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시인 백석과 길상사가 무슨 상관이 있나? 관련이 아주 많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가 길상화 김영한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녀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하지만 뜨겁게 타올랐던 그 둘의 사랑은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아들이 기생과 어울리는 게 마땅치 않았던 부모는 백석을 강제로 결혼시키려했던 것이다. 이에 백석은 자야(김영한)에게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자야는 자신이 시인의 앞길을 막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백석 홀로 만주로 넘어간다. 이때가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이었다. 이후 자야는 다시는 백석을 보지 못한다. 그는 해방 후 북쪽을 택했는데 1958년에 숙청을 당해 국영농장에서 양치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6년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 길상사 보살상: 성모 마리아상 같은 보살상.




백석 시인과 자야가 사랑을 한 기간은 불과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야는 평생을 백석을 사모했으면 죽을 때까지도 그를 잊지 못했다. 노년에 김영한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1000억 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도 못하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고. 그러다 또다시 쉽게 사랑하고, 또다시 쉽게 헤어지고... 너무 가벼운 ‘사랑의 시대’라 그런가? 자야가 간직한 그 사랑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커 보인다.


마지막으로 5번, 종교화합을 살펴보자. 길상사에는 날씬한 관음보살상이 있다. 이 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라는 분이 직접 조각을 했다. 통상적으로 관음보살상은 ‘자비’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후더분한 면이 강조되지만 길상사 관음보살상은 호리호리한 모습이다. 그런 특이한 모습 때문인지 몰라도 더 눈길이 간다. 길상사에는 기독교 신자인 영안 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도 있다.


이렇듯 길상사에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서로 어우러져 있다. 서울에 이런 고요하면서도 종교적으로 화합을 이루는 장소가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 성북동 역사트레킹





● 아픈 현대사를 만나다김신조 루트를 걷다


자, 이제 길상사 위에 있는 정법사를 지나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서보자. 정법사 경내에서 내려다보는 성북동 일대의 모습이 멋지니 꼭 잊지 말고 보셨으면 좋겠다.


정법사를 뒤로 한 트레킹팀은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 ‘북악하늘길’로 접어들었다. 북악하늘길은 성북구에서 조성한 도보여행길로 총 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트레킹 팀은 제2산책로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다. 필자는 제2산책로를 앞에다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제야 겨우 여기까지 왔네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럼 거의 끝난 건가요?”

“아니요. 제 스타일 알잖아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헤헤...”

“에이...정말...”

“너무해!”


그렇게 참가자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떤 참가자는 ‘사기꾼’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에게 곧 있으면, 큰 환호성을 지를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 탄식과 핀잔이 감탄사로 바뀔 것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곧 있으면 서울에서 가장 고운 단풍을 보게 될 것이니까.


“이 곳은 북악하늘길 제2코스입니다.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곳이죠.”

“아, 여기가 그 유명한 그 김신조 루트...”

“예 맞습니다. 청와대 습격 사건이라고 불렸던 1·21사태를 일으킨 일당들이 여기서 우리 군경들과 총격전을 벌였죠.”

“아 그렇군요.”


북악산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다가 지난 2007년에 전면적으로 개방이 되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김신조 일당이었다. 필자는 호경암 앞에서 저렇게 설명을 했는데 호경암은 1·21사태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까지도 바위 곳곳에는 그날의 아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시 김신조를 위시한 무장공비들은 시간당 10km 이동을 했답니다. 그것도 산길을요. 건강한 성인이 4km로 정도로 이동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이동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구멍이 뻥뻥 뚫린 호경암을 앞에 두고 설명을 이어갔다.




* 호경암





● 격동의 시기, 1968!


“김신조 사태가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국의 정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지요. 또 그해 10월 경에는 울진, 삼척 지역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를 하기에 이릅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때...”

“우리나라에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월맹군의 구정공세로 미군의 예봉이 꺾였고, 미국에서는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났잖아요.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보자. 1968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서구에서는 68혁명이라 하여 구체제 극복을 내세운 혁명이 일어났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공산권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프라하의 봄이라는 혁명이 일어났다. 


‘밀란 쿤데라’라는 소설가 아시는가? 그 작가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프라하의 봄이 중요한 모티브였다. 하지만 그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구소련이 탱크를 밀고 들어오며 강제 진압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맞이한 ‘봄날’이 너무나 쉽게 사라지고만 것이다.


“와 여기 봐요. 여기 봐! 이 단풍 좀 봐요!”

“이 알록달록한 단풍들... 여기 서울 맞나요?”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열심히 설명을 했다. ‘밀란 쿤데라’를 ‘밀란 쿠데타’라고 했다가 질책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설명을 했다.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곳은 서울 최고의 단풍 명소였다. 참가자들은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신나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찍어댔다.


-찰칵찰칵


하긴 필자도 그랬을 거다. 재미없는 설명을 듣느니 알록달록한 단풍들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게 훨씬 더 남는 장사지!


그렇게 빛깔고운 단풍을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장공비의 루트였던 곳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긴 아무리 지뢰가 깔리고, 철조망이 쳐져 있다고 해도 DMZ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을 테니까! 이런 빛깔 단풍을 보며 필자는 크게 외쳐봤다.


“서울도 단풍의 도시입니다! 이렇게 오색단풍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 성북동 역사트레킹





● 성북동 역사트레킹


1. 코스: 길상사 ▶ 정법사 ▶ 하늘교 ▶ 김신조 루트 ▶ 성북동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중

5. In: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 Out: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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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kwakma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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