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과 대화

문헌서원에 담긴 유학자의 흔적

목은 이색 : 본관은 한산이며 자는 영숙인 이색은 목은이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다.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을 지킨 대학자 삼은의 한 사람이다. 1392년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이 된 것과 같이 엮여 금주로 추방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추후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이성계의 출사 요청이 있었으나 끝끝내 고사하고 이듬해 여강으로 가던 도중에 세상을 떠난다.


진수 : 목은 이색이라는 유학자 이름을 들으니까 KBS 드라마 정도전이 생각나네.

수진 : 이색이라는 유학자를 홀로 조명하기에는 드라마 소재로 약하긴 하지?

주만 : 그런데 문헌서원과 이색이라는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어?

성현 : 한국에 있는 서원들은 대유학자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는데 문헌서원은 목은 이색의 위패를 모신 곳이야.

소희 : 서원이란 게 지금으로 말하면 명문 사립학교잖아. 공립학교가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서 비교적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교육을 진행했다면 서원은 사림에 운영되는 그들만의 교육시스템에 가까웠잖아.

수진 : 그렇긴 한데 서원 같은 교육시스템은 유럽 같은 곳에서도 명문 사립학교로 있어온 것도 사실이야. 결국 능력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을 키우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아.

주만 : 결국 사람이다 그거네.


MG0A4189_resize.JPG 이색 신도비 (문화재자료 제127호)

소윤 :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성현 : 그렇지 원래 서원은 고려말 사학중 하나였던 서재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리고 지역마다 있는 서원은 지방 사림 세력의 구심점의 역할을 했어.

주만 : 구심점 말하니까 생각나는데 포켓몬고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포켓스탑이 있는데...

수진 : 그래? 요즘 포켓몬고라고 해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왜 이린 난리야?

주만 : 우리가 포켓몬 세대잖아. 포켓몬에서 콘셉트를 가져와서 증강현실을 통해 게임을 하는 거야. 포켓몬고 게임을 다운로드한 다음에 아바타를 만들고 GPS 지도를 키고 있으면 주변에 아바타가 나오거든 그걸 잡아서 트레이닝도 시키고 포켓몬 체육관에서 자신의 포켓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배틀도 할 수 있어.

진수 : 아바타는 옛날부터 나왔던 개념이잖아. 거기다가 배틀 같은 것을 집어넣은 걸로 그렇게까지 많이들 하는 이유가 되나?

주만 : 그게 일반 앱 게임과 다르다니까. 보통 다른 게임은 그냥 스마트폰만 가지고 움직이지 않고 누르면 오토플레이도 되니까 게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잖아. 그런데 포켓몬고를 하려면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녀야 하고 같이 포켓몬고를 하는 사람끼리 친해져서 사회성도 좋아진다니까.

수진 : 주만이 말이 그거잖아. 집에만 박혀 있던 사람이 포켓몬 캐릭터를 키우고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소통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거지?

소윤 : 역시 주만 오빠는 학문보다 잡기에 강한 거 같아요.

성현 : 잡학에서 때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무시할 수만은 없지.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문무(유학과 무학)를 제외하고 모든 학문을 잡학을 뜻했었어.


잡과 : 고려, 조선 등의 나라에서 시행하던 과거 제도의 일부로 기술 관원을 선발하기 위해 보던 과거제도 중 하나이다. 잡화를 보는 사람들은 공부하는 잡학에는 역학, 의학, 율학, 지리학, 천문학, 명과학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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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 서원의 경제기반은 토지와 노비를 바탕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국가 교육기관인 향교에 비해 문중이나 가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후대에 오면서 교육기구로서 1차적 기능보다는 가문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이 되었다. 서원에서 교육을 받는 강당의 구조는 익 공식의 단층 팔작집이 일반적이며 담장을 높게 세우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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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 : 수진 언니 조선시대에도 교육기관이 많이 있었잖아요. 우리가 많이 가본 향교, 서원이 있는데 서원도 그냥 서원과 사액서원으로 나뉘고 그 외에도 서당, 정사, 성균 관등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수진 : 국가차원에서 정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지방의 향교, 중앙의 사부학당과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이라고 보면 돼. 그리고 사설로 만들어졌지만 특별하게 공인된 교육기관으로 인정된 것이 사액서원으로 1550년에 소수서원이 사액서원의 시초라고 볼 수 있지.

진수 : 그럼 서당, 서재, 정사의 차이는?

성현 : 서당은 마을마다 있었던 초등학교의 개념으로 보면 되는데 원래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서재에서 조금씩 바뀐 것이 서당으로 변모한 거야. 그리고 정사는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그런 교육공간은 아니고 학문이 높다던가 명망 높은 유사가 강학소를 개설하면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는데 강학이 이루어지는 건물을 정사라고 부른 거야.

주만 : 간단히 말하면 스타강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그런 거랑 비슷하네.

MG0A4202_resize.JPG 전사청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구를 보관하는 곳)

소희 : 목은 이색에게 붙은 수식어라고 하면 대학자, 삼은, 고려에 대한 충절 같은 거잖아. 그런 거 말고 더 있을까?

성현 : 이색이 태어난 곳이 강구항이 있는 경북 영덕이거든 그곳에 가면 작은 전통마을이 나오는데 괴시리 마을로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한 이색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중국 괴시마을과 비슷하다고 해서 괴시(槐市)라고 붙였다고 해.

소윤 :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이 경북 영덕이었군요.

수진 : 이색은 고려가 원나라에게 공물을 바치고 왕까지 마음대로 하는 내정간섭이 심했을 때 나서서 고려의 여자들을 징발해가는 공녀제 폐지에도 큰 공헌을 했어.

진수 : 맞아 그래서 조혼 풍습도 생겼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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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소양은 무엇일까?

소희 : 바르지 않은 것은 바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성현 : 목은 이색이 가장 아꼈던 제자 하륜과 정도전은 고려 대신 조선을 선택했잖아. 소희는 그들의 철학관은 어떻다고 생각해?

소희 : 저물어가는 왕조를 지키느냐 새로운 왕조를 창출하느냐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시대에 상관없이 사람들 각자는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으니까.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은 현재 상황과 충돌할 수 있는데 목은 이색은 그 상황을 거부한 거고 하륜이나 정도전은 미래와의 충돌 속에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한 거니까.

수진 : 새로운 가능성을 선택한 하륜과 정도전도 다른 길을 걸었잖아.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초중반부까지는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의 정도전에게 밀리다가 결국 정도전을 제치고 승자가 된 거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영향을 받은 오르테가의 사상은 항상 자신의 환경을 변혁하고자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삶, 즉:남들처럼" 사는 삶이란 결국 개인적 미래상이나 도덕적 규범 없이 사는 꼴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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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이제 다 봤으면 연못을 바라보면서 정자에서 좀 쉬자.

진수 : 그래 한적하게 연못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네.

수진 : 목은 이색의 가문인 한산 이씨는 조선왕조에서 정승 4명, 판서 10명, 공신을 12명이나 배출한 가문이니까 그 위세가 대단했지. 일제강점기 당시 월남 이상재 선생도 목은 이색의 후손이야.

소윤 : 월남 이상재 선생이 목은 이색의 후손이었어요?

성현 : 고려시대에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 따라 신분제가 고착화되었는데 목은 이색이 문하시중으로 오르면서 한산현이 군으로 승격된 것은 엄청난 일이야.

주만 : 군에서 시로 승격되는 그런 거랑 비슷한 거 아냐?

수진 : 그런 거랑은 차원이 틀려 고려시대에는 군, 현, 부곡 소가 있는데 태어난 지역에 따라 무조건 신분이 정해져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 게다가 지역에 따라 차별이 엄청났으니까. 명학소에서 반란을 일으킨 망이·망소 이난이 대표적인 고려시대 신분 타파 민란이잖아.

소희 : 시대마다 다르지만 공평이라는 말이 지켜지는 것이 참 어려운 일 같아.


망이 망소이의 난 : 1176년에 일어난 이 민란은 무신집권기에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고 사회경제적 모순에 하층민들의 삶이 핍박받자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 망소이 무리가 봉기해 공주를 함락시켰다. 고려 조정은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켜 회유책을 쓴 다음 이들을 다시 토벌했다. 이 민란으로 인해 결국 향·소·부곡 등 특수행정구역의 소멸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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