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갯벌의 꿈

결자해지 -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이 마을에 있는 술집은 옛날 농협창고로 이용하던 곳을 개조한 곳이었다. 천 장고가 높은 이 술집은 겉의 허름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낮에는 배이커리로 이용되지만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도 하지만 분위기가 독특해서 외지인들도 찾아와서 인증숏을 찍는 곳이기도 했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린다고 했던가. 한적한 시골마을의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간의 흔적을 보이는 녹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심에는 물이 담겨 있는 공간이 있었고 위에는 연등같이 보이는 조명이 지그재그로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깊지는 않은 물이었지만 묘하게 깊이를 알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ㄷ자로 만들어져 있는 큰 테이블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고 그 뒤로 안주나 술을 만들어서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이 만들어져 있었다. ㄷ자 테이블의 안쪽으로 테이블이 배치가 되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남자는 운영을 부탁을 받고 잠시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다.


"실장님, 오늘도 손님들이 많네요."

여자 직원의 말에 실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잠시 홀을 바라보면서 손에 마른행주를 들고 씻어 놓은 잔을 뽀드득 소리가 날만큼 깨끗하게 닦아서 옆에 두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좀 묘하네."

"뭐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같이 술자리를 하고 있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오늘 많은 것 같네."

"전 잘 모르겠어요."

남자는 만들어놓은 안주를 다른 여자 직원을 불러서 가져다주라고 눈빛으로 말하면서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테이블의 세팅이 거의 끝나서 약간 한가해졌다.

"저 끝에 있는 테이블을 봐봐."

여자는 남자가 가리킨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 테이블에는 남자 세명이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 몇 번은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왜요?"

"저 사람들은 같이 온 적이 별로 없어. 그런데 저 앞쪽에 있는 남자가 이번에 술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데 무언가 이질감이 든다는 거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술을 사고 싶나 보죠. 비싼 술 이긴 하지만요."

"술을 살 수야 있지. 그런데 저 사람이 그걸 즐겨마시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얼음에 잔뜩 희석해서 마시는 데다 저 술을 다 마실 때쯤 되면 아마 딸기우유를 1리터쯤은 마실걸."

"그건 자신의 취향이잖아요."

"문제는 저 술이 글랜 그란트 21년 산이라는 거야. 글랜 그란트 21년 산은 사실 정말 맛있는 술이거든. 마셔본 적이 있어?"

"아니요. 제 알바 월급의 1/3이나 되는 술을 어떻게 마셔요."

"술맛을 모르면서 비싼 술을 살 때는 이유가 있는 거야. 게다가 무척 친해 보이지가 않는 사이야. 안주도 술맛을 잘 느낄 수 없는 매운 안주를 주문했거든. 차라리 구운 채소 안주인 콜리플라워 스테이크가 어울리지."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고 다시 바라보니 그들의 분위기가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대화 주제가 된 이들은 봉수와 도박판을 운영하고 있는 남자와의 테이블이었다. 다음 주에 큰 판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빌리기 위해 재흥이 술을 사는 자리였다. 와이프의 체크카드와 연결된 통장잔고를 보았더니 이런 술 한 병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비싼 술을 사야 이들이 의심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다니까."

"내가 지난번에 말하지 않았나. 1억이라고 말이야. 돈 나올 구석이 어디 있어서 판에 들어오겠다는 거야."

재흥은 남자의 말에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상당히 험하게 썼는지 몰라도 네 모퉁이가 모두 헐어 있었다. 지갑에는 온갖 카드 영수증과 로또번호가 있는 종이조각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었다. 여러 장의 카드 중에 한 카드를 꺼내서 남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돈이 없었으면 이 술을 살 수 있겠어. 이게 바로 마누라 카드야. 말을 확실하게 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돈이 생긴다니까."

"그럼 그 돈을 가지고 판에 들어오면 되겠네."

"아이~ 참. 다음 주에도 판이 열리잖아. 2주 후 이야기는 그때 말하고 다음 주에 나도 끼워줘. 내가 이렇게 비싼 술도 사잖아. 마음껏 마시라니까."

남자는 술이 담긴 잔을 들어서 남자들의 앞에 있는 잔에 술잔을 부딪치며 한 번에 마셨다. 남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셨다.

"그래서 얼마나 필요한데."

"나야 많이 빌려주면 좋지."

"좋아. 3,000 빌려주지, 더 이상은 안돼, 그리고 혹시 어딘가로 튀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지?"

"그런 걱정 말라니까. 자 오늘은 내가 사니까. 얼마든지 마셔. 안주도 하나 더 시킬까?"


막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온 여직원이 간단하게 그릇들을 초벌로 씻은 다음 레일 방식으로 들어가는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잘 세팅해서 넣었다. 식기세척기가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어서 씻는 소리가 외부로 거의 나오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잠시 한 숨을 돌리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남녀 사이는 이제 대놓고 만나네요. 읍내에서 소문이 자자한데 제가 부인이라면 정말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저 둘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 누가 봐도 둘은 정상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때론 상식적이지 않을 테니까."

"둘이서 무슨 말을 나누는 걸까요. 저는 그냥 소문으로만 듣고 읍내에서 가끔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곳에까지 같이 오네요."

"서로 간에 다른 좋은 꿈을 꾸면서 대화하고 있을지 모르지. 그런 걸 동상이몽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저 둘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고 보여."


화장을 진하게 하고 손톱은 길게 기른 여자는 형식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자지러지는 웃음을 남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남들이 보면 남자가 개그맨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액션이 아주 훌륭했다. 나이가 들은 남자는 술기운과 여자와의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한 껏 상기되어 있었다. 내심 점잖게 술에 대한 권유를 받아서 가격대가 있는 샴페인과 양송이 콜리플라워 스칼렛이라는 안주도 주문했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는 처음 느껴보았다.


"지영아. 내가 나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좋아해."

"그럼 오빠야 항상 젊게 살아가잖아."

"이 술이 뭐라고 했지? 아까 아르바이트생이 말해줬는데 기억이 안 나네."

"오빠 돔 폐리뇽이야. 나도 이 술을 마셔본 것이 얼마 안 되었는데 비싸지만 맛이 좋더라고. 이 술을 발명했다는 수도사의 이름이래."

"내가 이런 술도 마셔보고 지영이 때문에 내가 수준이 많이 높아지고 있어."

"사람이 태어나서 별거 있어. 돈 있으면 즐기는 거고 즐기는 만큼 인생이 재미있어지는 거지."

"지금까지 왜 그렇게 살았나 모르겠네. 여기 봐봐. 여기가 누가 시골이라고 하겠어. 돔? 뭐라고 하여튼 막걸리 마실 줄 알았지. 이런 술이 있는 줄이나 알았나."


나이가 들은 남자는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오랜 농사일로 인해 거칠어질 대로 거친 손에는 금이 가 있었는데 마치 흙이 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술집은 확실하게 특이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었다. 내부의 공간은 하나의 그림과 같아 보이기도 했다. 가게의 인테리어가 배경이라면 이곳을 끊임없이 채웠다가 비워지는 손님들은 디테일한 그림 요소들처럼 보였다. 샴페인 잔에 채워진 술은 반짝 거리는 별처럼 보였다. 그 잔 뒤로 비치는 내부는 마치 상상 속의 공간처럼 펼쳐져 있었다.


"서경사님, 어쩌다가 이곳에까지 오셨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가는 거지. 일하다 보니까 내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더라고 그래서 이곳으로 오겠다고 지원했어."

"저는 여기보다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일하고 싶은데요."

"여기 많이 발전한 거야. 이 촌동네에 이런 술집이 웬 말이야."

'저도 이곳을 가끔 오긴 하지만 정말 낯설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확실히 이곳에 돈이 풀리긴 했나 봐. 별별 사람들이 다 오잖아."
"비번인 날 집에서 혼자 있을 때가 많은데 오래간만에 나오니까 좋네요."

"사람 사는 거 뭐 있어. 돈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런데 말하실 것이 있다면서요."

"아~ 혹시 김순경 돈 좀 있어?"

"돈이요? 뭐 있긴 한데요. 얼마나 필요한데요."

"많이는 아니고 어머니가 이번에 수술을 받았는데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말이야. 한 300쯤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다음 달에 줄게."

"알았어요. 뭐 저야 혼자라서 돈 쓸데도 많지 않으니까요."

"고마워. 여기 술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살게."


서경사는 그녀에게 줄 별풍선이 떨어져서 현금이 필요했었다. 1~2일만 접속을 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매우 걱정스러운 듯한 문자가 왔다. 자신을 그렇게 걱정해주는 여자와의 대화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경찰학교에서 연수과정을 마치고 온 김순경은 자신을 믿고 따라주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술집의 수제 맥주는 맛이 참 괜찮았다. 고모가 이야기한 것이 어떤 돈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경찰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김순경에게 자신이 근무했었던 곳의 이야기에 조금 과한듯한 조미료를 쳐가면서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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