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원망하고

오늘도 살아냈다.

by 마음곳간

5.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거실 찬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송골송골 이마에 콧잔등에 뒷 목덜미에 땀이 찼다.

바람이 선선한데 아직 후덥 한 열대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훅 몸에서 열감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 갱년기?

호르몬에 지배받는 몸뚱이를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또 피어났다.

머릿속 생각은 엊그제 일들은 기억 못 한 지 오래고, 오히려 까마득했던 어린 시절 기억들만이 또렷했다.

생각도 못했던 아빠의 얼굴과 표정, 말투까지 선명한데 어제 먹은 점심 반찬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치매가 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치매에 걸리고 싶다는 생각.

차라리 빨리 늙어져서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차라리 타임워프 능력이 내게 생겨 과거나 미래의 어느 날에 살고 싶다는 생각.

이런 얼토당토않는 생각들이 가득 머릿속을 채워지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알아차린다. 나의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새로운 일을 배워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또다시 가족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나는 몇 달 전부터 편하게 살기로 했다.

아등바등 종종거리며 혼자 바쁜 척하는 것은 이제 그만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엌으로 나와 내가 자는 동안 식구들이 먹어치운 음식들을 정리하고 싱크대에 쌓아놓은 그릇들을 정리하는 일이 내 첫 일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치우고 차리는 일이 나의 주 업무가 된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사회에 나가 20년을 같은 업무에 있었다면 장인이 되었을 시간인데 집안일은 티도 나지 않고 스트레스만 더해가니 주부의 삶은 내게 맞지 않는 직업임이 분명하다.

남편에게 나는 이제 편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은 한 후로 정말 가사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청소는 물걸레 로봇청소기가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해 주었고, 거의 성인이 다 된 두 아이들은 엄마에게 밥을 달라고 더 이상 보채지 않는다. 내게 밥을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유일하게 남편뿐이다.

그런 남편조차 일이 바빠 집에 오지 않는 날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맛보는 날이 된다.

나여사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다. 하하하


그런 날이 내게 영영 오지 않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둘째를 등에 업고 큰아이는 거실에 방치해 두고 주말이면 우리 집으로 들이닥칠 시부모님과 시동생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방을 치우고 저녁준비를 해야 했던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일들을 해 냈을까?

그때 내 마음은 엄청 힘든 일로 가득 차 있었을 텐데...

다시 돌아가 그 시절 나를 만난다면 꽉 안아주고 고생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삶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무엇을 물어볼까?

나의 생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그동안 겪어온 시련과 고난 안에서 매 순간을 견디게 만들었을까...

나의 생이 다하여 눈 감을 그 순간에 나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깨닫게 될까....

가끔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주말에 고1 대상 입시 전략 설명회가 있다.

대치동 본원에서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진행하시는 올해 첫 설명회다.

이번만큼은 학부모 참석인원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

현장의 열기를 보여줘야 다음도 있다.

옆자리 원장님은 내쉬는 숨마다 한숨이다.

아카에 있는 학부모 DB도 몇 안되는데, 돌리는 전화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딱 하나다.

'연결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 중입니다.'

수신 차단이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몇 안 되는 전화번호를 들추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나실장은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 감사합니다. 학원입니다 "

" 저... 고등학생 아비인데 뭐 좀 물어봅시다 "

건조한 목소리지만 말투는 빨랐다.

나실장은 밝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 아~ 네 아버님~ 학생이 몇 학년일까요? "

" 예.. 고1 남학생입니다."

" 아~ 고1 남학생이군요. 어느 학교인가요? "

" 하.. 참.. ㅎㅈ고등학교요. 아들 가방에서 전단지를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요새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요, 공부도 안 하고 다니던 학원도 끊고

뭐든 지가 알아서 한다고 하네요.

참 답답해서 전화드렸어요.

이번 중간고사도 그냥 폭망 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실장은 아버지의 말에 무게를 느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한숨을 담은 구조요청이었다.

"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

요즘 아이들, 특히 고1 아이들 정말 어렵습니다.

중학교때와는 다른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느라 많이 흔들리죠.

사춘기... 참.. 아이들도 힘들고, 부모님도 힘들어요. "

" 그렇죠. 말을 안 해요. 물어보면 짜증만 내고,

말 좀 하면 방문 꽝 닫고.

전단지 보니까 선생이 여럿이던데, 수학 선생도 많습니까? "

" 네 아버님 수학 선생님도 여러분 계세요.

아이 성적이나 성향에 따라 맞춤수업이 가능하도록 준비돼 있습니다.

아드님과 내원하셔서 학원도 둘러보시고 상담도 받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언제가 편하세요?"

" 아.. 제가 사업을 해서요. 너무 바쁩니다.

학원 갈 시간이 없어요.

애는 학원 안 다닌다 하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큰소리치는데

성적은 안 나오고......

답답하네요.. 정말..."

나실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친 마음, 불안한 감정

그리고 그 너머의 간절함.

"그렇군요. 아버님. 그런데요,

그런 아이일수록요,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도망치듯 피했던 공부가 '도망칠 필요 없는 것'임을 알게 되려면

누군가의 기다림이 필요하거든요.

이번 주말,

저희 학원에서 고1 학부모님들을 위한 입시 전략 설명회가 열립니다.

아버님처럼 자녀 교육에 고민이 깊은 분들이 오시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들이 조금은 선명하게 방향이 보이실 거예요. "

"설명회요? 언젠데요? "

"이번 주 토요일 오전 11시입니다. 저희 학원 대강의실에서 진행되고요,

문자로 자세한 내용 보내드릴게요.

확인하신 후 신청 문자 주시면 자료집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 하... 주말에도 바빠서요. 몇 시라고요? "

" 오전 11시부터 시작이고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시간 소요됩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쏟아지는 말.

" 근데, 그런 설명회 백날 다녀봤자 뭐 도움이 되겠어요?

애가 공부를 잘해야지.

이 놈은 머리가 나빠요.

공부도 안 하고 성적도 안 나오고,

꼴통이에요.

뭐 설명회 듣는다고 대학에 붙겠어요? "

아버님은 당신 자식에 대한 실망감을 학원 상담실장에게 적나라하게 말했다.

나실장은 학생의 이름을 끝까지 묻지 않았다.

아들의 가능성을 '꼴통'리아 지워버린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 아버님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부족한 내 아이에게 더 필요합니다.

잘하는 아이들은 성적에 따라 원하는 대학에 잘 갈 수 있어요.

우리는 부족한 우리 아이에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설명회를 들어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공부를 잘해 주면 좋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아버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설명회 때 오셔서 내용 들어보시고 방향 설정하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버님."

나실장은 조용히 전화를 내려놓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입시제도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평등을 부르짖던 교육부는

갈수록 학생들을 궁지로 몰아세우는 것 같다.

대입이 어떻게 공정해질 수 있는지 참...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대입이 아무리 개편되어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앞에서는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평등했다.

어떤 아이는 엄마 손 잡고 컨설팅 업체를 방문하고

어떤 아이는 혼자 집에서 문을 잠근다.

대입은 기회가 아니다.

대입은 판이다.

부모의 정보력, 학원의 전략, 전문가의 입김이

아이의 성적보다 더 정교하게 대학 합격의 운명을 짠다.

그러니 누가 붙고 누가 떨어졌는지에

감동도, 실망도, 분노도 큰 의미가 없다.

슬프게도, 대입은 이미 결정된 싸움인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가 대학에 붙을까를 걱정할 게 아니다.

그 아이에게, '붙을 자격'이 있었는지를 묻는 지금의 입시 구조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빨리 수능이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나실장은 다시 또 전화를 들었다.

학생 하나, 마음하나라도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입시 현실은

전문가들에 의해 재단되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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