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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혁재 Aug 27. 2019

청소 노동자의 쉼터는 어디에 있을까?

[이기사]로 편입하는 글

규모가 조금 있는 영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비품 재고 정리가 업무 중 하나여서 비품 창고 출입이 잦았는데, 건물에서 에어컨이 안 나오는 몇 안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한 여름 근무라 빌딩이 달궈져서 그런지 비품 창고에 들어갈 때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같은 건물인데도 다른 공간인 것 같은 공기에 서둘러 재고 파악을 마치고 나오곤 했다.


 내가 관리하던 비품 창고가 3개층에 나눠져 있었는데, 1개 층의 비품창고는 휴게실로 개조되어 있었다. 오렌지 색 근무복을 입으신 청소 노동자 분들의 휴게실이 그 숨 막히는 비품창고였다. 강의실, 복도, 사무실은 낮은 에어컨 온도에 긴팔 가디건까지 입을 정도 였는데, 비품 창고 휴게실은 개조 되었다 한들 에어컨이 나왔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죽음이, 그 휴게실의 장판 사진이 너무도 익숙해 계속 기억에 남는 이유일지 모르겟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67살의 청소노동자 ㄱ씨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자 휴게실에서 숨을 거뒀다. 지병으로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 전해지는데, 그가 처해있던 노동 환경이 병세를 더 악화시켰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ㄱ씨가 사용하던 휴게 공간은 (한겨레 기사의 표현을 인용) "계단 아래 가건물" 형태이고,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을 뿐 아니라", 3명의 노동자가 사용하는데 평수는 고작 "1.06평"에 불과했다. 사망 당시 바깥 기온이 34.6도 였다고 하니, 에어컨은 물론 창문도 없던 휴게실이 '휴게'라는 제 기능을 했을지 매우 의문이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으나, 휴게실 문제는 각 단과대 담당 문제였기 때문에 "내어줄 공간이 없다"는 식의 단과대의 주장에 청소노동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 한겨레 기사의 내용이다. 휴게 공간 설정의 결정권을 가진 단과대는 휴게실을 옮겨달라는 청소노동자의 요구를 같은 논리로 외면했고, 결국 ㄱ씨는 폭염에 사망했다.


기사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6932.html



 청소 노동자는 왜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하고 이런 대우를 받게 된 걸까?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권, 근로환경에 대한 문제가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연구한 권혜원의 연구는, IMF 금융위기 이후 유연근로제가 확산되자 대학 사업장 내 직접 고용되던 청소 노동자들이 용역 업체에 의해 간접 고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대학이라는 원청과 용역 업체라는 하청 기업이라는 이분적 구조에서 현재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의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자리잡았다. 원청인 대학은 기본적으로 가장 낮은 입찰 가격을 제시하는 하청 용역 업체를 선정한다. 즉 비용 절감을 최대한 이뤄낸 용역 업체가 대학의 청소 서비스업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비용 절감이 업체 선정의 핵심이다 보니 용역 업체는 시중노임단가보다 훨씬 낮고 최저임금 수준에 맞추어 청소 노동자들의 임금을 산정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용역업체에게 비용이 될 만한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될 만한)사안들이 고려되지 못하는 것은 슬프게도 당연하다.


노동의 유연화는 기업의 노동에 대한 유연적 이용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불안 속에 몸이 굳는다. 출처 : 한겨레

    

 또 하나의 문제는 원청과 하청 기업의 심각한 권력 불균형이다. 원청과 하청의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는 원청에게 있다. 단적인 예로 하청 용역 업체와 용역 업체에 고용된 청소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협상을 이뤄냈다 하더라도 원청에서 임금 승인을 나몰라라 한다면 임금 인상을 보장받을 수 없다. 나아가 원청인 대학이 기존 용역 업체와의 계약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용역 업체와 계약을 한다고 가정할 때 기존의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역시 완벽하게 보장받을 수 없다. 비정규직 특성상 노조 조직이 어렵고, 실제로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불안정한 고용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게 다가온다.


 청소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구조에 놓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서비스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들여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권혜원의 연구는 한국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의 문제가 "저부가가치-저숙련의 노동집약적 일자리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관련 서비스 종사자들이 저임금에 처할 위험을 높이는 외에도 복지혜택, 교육훈련을 통한 숙련향상 기회, 경력발전 가능성 등을 누릴 기회를 현저히 제한하여, 이들이 낮고 막다른 노동시장 내 위치에 고착될 개연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청소 서비스업 역시 이러한 서비스업 성장 형태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현재 청소 노동자들의 저임금, 고용불안정성이 형성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 마음 아픈 특징은 청소 서비스업에  "중고령 여성"종사자가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는 청소서비스업을 "중고령 간접고용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저임금 서비스 업종"으로 설명했다. 이는 노동시장에서 청소 노동자가 겪는 문제에 '젠더 불평등 문제'가 접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가사 노동의 주체를 여성으로 단정 짓는 사회적(혹은 전통적) 편견은 '건물 내 청소 서비스업'을 '여성이 하는 낮은 가치의 노동'으로 평가했다. 동시에 건물 외 작업이나 경비직, 청소 노동자 총 관리직은 남성이 맡도록 함과 동시에 셩별 임금 격차를 당연시했다. 이러한 젠더 불평등과 위계 질서의 형성은 임금 차별이라는 노동 시장 내 문제와 더불어 성희롱이나 언어 폭력 등 인격을 침해하기 이르렀다. 단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청소 서비스업에 종사하기로 한 중고령의 저학력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피해라기엔 그 정도가 너무하지 않은가.


**참고 자료

권혜원, 권현지, 김영미. 2016. "대학 청소 용역 서비스 작업조직 내 범주적 불평등의 지속과 균열". 산업관계연구.



 해결책은 없을까?


출처 : 중앙일보

 청소 서비스업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기업 '푸른환경코리아'이고, 둘째는 '경희대 모델'이다. 먼저 '푸른환경코리아'는 시설물과 종합건물관리를 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래서 다른 용역업체와는 다르게 청소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아마 이 기업이 '철거민 자활공동체'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고용불안정성에 대한 걱정과 무시받으며 일하는 일상에 익숙한 사람들을 공감하는 능력이 높았을 것이다. 단가 낮추기에 혈안인 용역업체에 비해 인건비가 높게 책정될 지라도, '나의 회사 나의 일'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게 된 청소 노동자들의 서비스는 그들의 것과 비교가 안될 것이다. 실제로 2017년 경쟁 입찰에서 당당히 코레일 청소 용역으로 선정된 사례를 볼 때 고용안정성과 인격적 존중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이 기업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고 있다.   



** 참고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904011728115

http://www.seouland.com/arti/PRINT/2149.html


 경희대 모델은 대학 사업장 내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학교는 자회사와 계약을 하는 모델을 말한다. 이러한 대안은 학교와 노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장기간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토론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청소 노동자들은 경희대의 유연한 태도에 고용 안정성과 소속감을 누릴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론 결국 용역 업체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지 대학에 소속되지 못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문제는 같지 않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즉 교직원이 받을 수 있는 기초적인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인건비 문제에서 학내 구성원과 동등하게 처우받지 못하는 문제는 언제나 존재하는데, 경희대와 같이 유연한 태도를 가지지 못한 대학이 사용자라면 이 모델에서도 현재 청소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참고 자료

임주환. 2016. "대학 청소 용역직 노사 관계 실태와 쟁점".  노동리뷰.

**참고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7674.html


 보면 볼수록 한국의 노동 환경이 참 후진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국가 주도의 기업 위주 경제 발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설 곳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의 노동환경을 씁쓸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물론 사용자도 사용자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 같다. 자본가의 생각을 읽기란 참 쉽지는 않지만, 그들이 갖고 있을 고충도 클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경희대 모델이 전제한 사용자와 노동자,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끊임 없는 회의 과정에 자꾸 눈이 간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조금 나아진 해결책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 더욱 눈이 가는 건 푸른환경코리아 사례다.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는 노동자는 영원히 비용으로 처리된다. 문제는 노동자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들도 분명한 인격체고, 사용자가 노동자를 대하는 자세는 곧 소비자가 노동자를 대하는 자세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자들도 자신의 일과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로 성취감을 느껴야 노동의 본질적인 의미가 실현될 수 있다. 비단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노동하는 자아에서 진정한 성취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본가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졌음 좋겠다. 노동자를 비용으로 인식하게 하는 자본의 논리에서 한 걸음만 떨어져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빌딩 엘레베이터를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비트윈'이란 어플을 사용하며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계셨던 어머니 한 분이 갑작스레 말을 거셨다.

"이모티콘이 참 귀엽네, 내 카톡에는 없는데.."

 귀여운 이모티콘에 눈길이 가신 어머니께서 신기하셨는지 말을 거셨다. 섬세한 감수성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카톡에는 없는 다른 메신저 어플이라고 설명드리자 어머니께서 아쉽다는 듯이 웃으셨다. 어디서 뵌 것 같은 낯이 많이 익은 얼굴이라 생각해봤더니 내가 일하던 학원 빌딩 청소 하시던 청소 노동자 분이셨다. 근무복에 가려져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청소 노동자 어머니의 웃음이 그때는 참 밝았는데, 글을 쓰고 보니 참 시리게만 다가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이 마음을 자꾸만 무겁게만 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 온 서비스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 글 밖에 쓰지 못함에 죄송함이 너무 크다. 출처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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