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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Jun 27. 2020

인문학계의 3D 직종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작가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에디터도. 아니 그냥 출판업계는 보지 마!

내 동생은 공무원을 준비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배운 것이 공자, 맹자에서 국어, 사회로 바꿨을 뿐. 옛날 말로는 신문방송학과, 요즘 말로 언론정보학과를 갓 졸업한 내 동생은 그 정도로 머리가 좋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문학도가 살아가기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과거 시험 준비란 걸 동생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경영학부를 나온 나는 글로 밥을 먹고 있다. 글 쓰는 것을 배우는 동생은 세상을 깨닫고 공무원을 준비하고 기업 경영을 배운 나는 어째서인지 글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다음 생엔 내 인생 경영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글을 쓰겠단 생각은 '언젠가 꼭 날로 먹겠다'란 생각이었다. 그게 중학생 때 생각한 발상이었으니 한 번쯤은 그 결심의 타당성을 다시 검증해볼 법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 정도로 언제나 조금 남들에 비해 늦는 편이다. 그건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엔 '멜로가 체질'이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19년도 8월에 했던 드라마라 하니 대략 1년 정도 늦은 시작이다. 남들이 다 씹고 뜯고 즐긴 뒤에 쭈뼛쭈뼛 다가와 '와. 이거 재밌네'하는 작자가 글을 쓰고 있다니 아무래도 이번 생에 날로 먹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다.

'멜로가 체질'을 보면 알겠지만 글이란 속성이 태생부터가 야근이다. '어제 출근해서 오늘 여섯 시에 칼퇴합니다'란 말처럼 옛날 글쓰기는 실력이 아닌 체력이란 말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이다. 만약 글을 쓰겠다고, 더 나가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일을 하겠다 하면 근무 조건에서 확인할 것은 얼마나 자유도가 높은가를 확인해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물론 퇴근의 자유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안에서 노래를 불러도 뭐라 하지 않는지, 원하면 회사에서 요리를 해도 되는지 그것도 아니면 작물 식물 하나 정도는 사무실에서 키워도 되는지에 대한 자유도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근과 스트레스는 기본 속성이다.


아 물론 글 쓰는 것이 인문학계의 3D 직종이라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 시각에서 그렇다는 거지 조금 트랙에서 이탈해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최고의 직장일 수도 있다. 길 가다 호기심 가는 아저씨에게 부담 없이 말을 걸어도 되고, 글 쓴다는 이유 하나로 단골 식당 사장님과 남들보다 이틀 먼저 친해질 수 있다. 사무실에서 기름 튀며 고기를 구워도 '아. 이건 모두 콘텐츠 만들기 위함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모두 만사 오케이다. 다행히 나 또한 이런 삶을 즐기는 편이다. 힘들다고 불평할 거 다 하면서 즐기니 나는 어쩌면 M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조그만 잡지사에서 매달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보통 잡지사에서 책을 '만든다'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글을 쓰고 디자인이 끝내면 인쇄소에 디자인 파일 넘기는 것이 대부분 잡지사의 과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만든다' 그것도 사무실 안에서 직접. 콘텐츠 기획하고 글을 쓰고 그걸 디자인 해 직접 책까지 만드니 이걸 경영학적 전문 용어로 '인바운드'라고 한다. 하림 기업에서 닭을 직접 키워 가공하고 상품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전 경영학부 선배가 경영학은 나중 취직해서 내가 어떤 구조로 고용주에게 부림 받는지 아는 것이라 했는데 그 선배는 정확했다. 이걸 대학 졸업한 지 2년이 되어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4년 동안 공부한 게 헛된 건 아니었나 보다. 


3D는 어렵고, 위험하고, 더럽다의 약자이다. 그래 글 쓰는 건 생계유지에 어렵고, 정신건강엔 위험하며, A4용지가 내 책상에 아주 더럽게 흩어져있다. 실제로 며칠 전엔 힘들게 교정 다 본 원고지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눈물을 삼키며 다시 원고를 뽑았다. 뭐,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고 교정은 봐야 하니... 

그래도 글을 쓴다는 건 매력적인 면이 있다. 글 쓰는 건 가오다. 그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글을 쓴다 하면 멋지다 해주는 친구가 있고,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요구르트 하나를 서비스로 주고, 아는 사람도 많아진다. 후배가 찾아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묻는다면 그래도 먼저는 공무원을 추천해 줄 거다. 글 쓰는 건 루미큐브의 조커처럼, 비상용으로 빼 둔 오만 원권 다섯 장처럼 공무원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는 친구들에게 추천해 줄 거다. 


'그래 너도 3D 직종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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