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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May 09. 2021

고작 이걸로 상담받아도 될까?

내 문제가 사소하게 느껴지는 당신에게

요즘 우울한 사람도 많고 상담도 많이 받는다던데..
나도 상담받고 싶단 생각은 들지만 고작 이 문제로 가도 되는 걸까?
너무 하찮다고 상담사가 비웃진 않을까?
사실 이 정도 힘듦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 아닌가?
요즘 보면 어려운 자영업자, 취업준비생도 많은데 내가 이런 일로 힘들다고 상담까지 신청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다들 참고 사는데 나만 인내심이 부족해 못 참아서 이러나?


처음으로 상담실을 찾는 많은 내담자들이 상담센터 문턱을 넘기 전 하는 생각이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담'이라는 단어가 선택지가 떠오를 정도로 힘들긴 힘든 것 같은데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게 맞나 갸웃거리게 된다. 취업준비생, 독거노인, 자영업자 등등 장기화되는 코로나 시대에 안 힘든 사람이 없다는데 나는 이렇게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다. 그러나 나의 힘듦에 있어 옳고 그름과 된다 안 된다는 자격은 외부에서 누군가 부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병원에는 진료 항목이 있다. 산부인과만 해도 질염부터 예방접종, 분만까지 범위가 넓고 피부과도 여드름, 흉터 제거, 보톡스까지 다양하다. 상담은 없다. 가족, 진로, 학업, 성격, 죽음, 종교까지 살면서 드는 모든 생각이 '상담 항목'이다. 병원으로 치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피부부터 내장까지 다 본다는 얘기다. 그래서 상담실을 찾기가 더 어렵다. '가족'이란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도 정도가 다 다르니 내 문제로 상담에 가도 되나 싶다. 그냥 평소처럼 엄마랑 다툰 게 좀 오래가는 것뿐인데 가도 되는 걸까. 가서 사춘기도 아니니까 엄마 말 잘 듣고 화해 잘하라고 비웃음 당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상담 가능 범주에 '엄마와의 싸움'이라도 적혀 있으면 이런 고민이라도 안 했을 텐데 싶다.


하지만 모친과의 갈등으로 상담을 고민할 정도라면 단순한 갈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작은 갈등이 오랜 기간 쌓여왔을 수도 있고, 평생 갈등이 없다가 처음으로 생겼을 수도 있으며, 내담자의 어떤 사정 때문에 이번 갈등이 유독 크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상담을 고민하는 이에게 그의 심리적 어려움은 결코 작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버틸 만큼 버텼고,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았기에 상담을 떠올렸을 것 같다. 이제까지 사용하던 대처 전략이나 방어 기제가 더 이상 효력을 보이지 않게 되면서 도대체 이런 일 혹은 경험이 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통제할 수도 없고, 타인과 공유할 수도 없을 때, 결국 삶의 진도나 일상의 흐름을 이어 나가지 못할 때, 내담자는 상담실을 찾는다(유성경, 2018).


비웃음에 대한 우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당사자는 그 주변의 비웃음 때문에 더 힘들었을 수 있다. 노골적으로 타인이 나를 향해 웃지 않아도 주변에 나보다 더 객관적, 물리적으로 힘든 사람이 많다면 내 고민은 나의 내면에서부터 셀프 비웃음 당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상담은 다르다. 당신의 어려움을 당신도 알기 어려운 온전한 당신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공부하고 훈련받은 사람이 바로 상담자다. 본인이 아닌 상황에서 본인의 마음을 본인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도 못한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가 인기를 끄는 게 아닐까!) 상담심리학자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심리학 이론을 공부하고 수백, 수천의 시간을 수련받는다.


어려움은 주관적이다. 코로나가 힘든 건 맞지만 그 어려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탄 승객 중에서도 춥다고 민원을 보내는 이가 있고 덥다고 투정 부리는 사람이 있듯 모든 건 상대적이다. 지금 상담을 고민하는 모든 사람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 과거엔 있었다. 혼자서, 주변에게 털어놓고 견디다가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벽에 다다라 상담을 찾는 거다. 당신의 어려움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상담에서 다뤄볼 만하다. 주변의 눈치, 내 안의 비웃음 때문에 힘들었다면 이를 있는 그대로 봐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어려움을 이해받고 누군가 알아준다는 건 생각보다 꽤 따뜻하고 좋은, 가치 있는 경험이다.


유성경(2018). 상담 및 심리치료의 핵심 원리.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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