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이번에 교통사고를 겪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또 한 번 되새겼다고 할까.
다른 사람의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난 직후 나는 정신이 없었다. 몸은 자연스레 움직였지만, 생각은 멈추고 혼란스러웠다.
나 때문에 사고가 난 사람에게도 무척 미안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한 마음을 담아 괜찮은지 계속 물었고 계속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 사람은 짜증이 나고 화도 났을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다. 가던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박으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랄까. 사고를 낸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에이, 바빠죽겠는데. 한눈팔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보험으로 처리하죠.”
“네. 알겠습니다”
“바빠죽겠는데.”
나는 부랴부랴 보험사에 전화를 걸기 위해 번호를 찾았다. 때마침 다른 신고로 도로를 지나가고 있던 경찰이 멈춰 서며 신고했는지 물었다.
나는 신고하지 않았고 보험 접수를 한다고 했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현장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트렁크를 열고 안전하게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뿐이었다. 그 사람이 조용했던 건. 경찰이 가자마자 그 사람은 자신이 바쁘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바쁘신데. 저도 빠르게 진행하고 싶어요. 자꾸 재촉하시면 제가 더 당황해요’
헤매듯이 트렁크를 열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분이 옆에서 계속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자기가 전화를 걸었는데 이 번호가 맞냐며 또 물었다.
“잠시만요. 그 번호 맞고요. 제가 보험사랑 먼저 통화를 해도 될까요?”
‘그래요. 당신도 놀라고 정신없으니 저를 재촉하는 거겠죠. 저도 그래요. 그러니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실래요?’
‘알아요. 당신은 바쁘고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겠죠. 저도 그래요.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에요.’
이 와중에 옆으로 지나가는 차 한 대가 큰소리를 내며 빨리 차를 치우라고 했다. 내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보험사와 통화를 하며 사고를 접수했다. 내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 사람이 접수 번호를 물었다.
‘잠시만요. 방금 접수했으니 금방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접수 번호가 오자마자 번호를 부르라고 짜증 내는 그 사람에게 화면을 찍으라고 보여주었다. 조금 있다가 사고출동 서비스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자신이 대신 통화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더니 보험사와 통화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피해자라고요. 바빠죽겠는데 뭐라고요?”
“… 원래대로 제가 그냥 통화할게요.”
보험사 직원이 현장 사진 찍고 그 사람을 먼저 보내라고 말했다. 나는 사고가 난 차를 찍으며 정확히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물었다.
“차가 어느 부분이 손상되었을까요?”
“당신이 박은 거잖아요!”
‘네, 저도 알아요. 저의 잘못이에요. 단지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잘 아는 차 주인에게 다시 한번 물은 거예요. 짜증이 나겠지만 조금만 진정해 주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분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 보험사 직원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은 다행히 경찰이 뒤에 있어 줘서 조금 안정이 되었다.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돌아와서는 몸도 힘들었지만, 그 사람의 말과 태도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교통사고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운이 좋게도 여태껏 큰 사고도 없었다. 운전에 안심하고 있던 나는 이 사고에 헤매었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 몸은 긴장감에 뜻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손도 느려지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보험사에 전화를 거는 것도 버벅거리고 트렁크를 여는 것도 잊어버렸다. 상대방이 보기에 어리숙해 보였을 것이다. 답답했을 것이다.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바쁜 와중에 난 사고라면 화가 났을 것이다. 짜증도 많이 나겠지. 나도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으니까.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그래도 누구나 사고를 당하면 놀라고 당황하며 무섭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나라도 그렇다. 하지만 사고를 낸 사람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
사고를 낸 사람은 나고 할 말이 없으니 감추고 참고 있는 것이다. 나도 놀라고 당황했다. 무서웠고 너무 미안했다. 나에게 속상했다.
‘알아요. 제 잘못이에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 미안한 일을 했어요. 하지만 나도 그래요.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에요. 그러니 조금만 진정해 주면 안 될까요?
저에게 조금의 시간과 여유를 주면 안 될까요. 작은 이해를 바라는 제가 너무 이기적일까요. 당신도 어느 날 나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잖아요.’
사고를 수습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갓길에 사고가 난 차들이 서 있었다. 경찰차도 보였다. 나보다 먼저 사고가 났나 보다. 그래서 이 길이 갑자기 밀렸나 보다.
거기다 나까지 사고를 냈으니 도로가 더 밀렸겠다. 다른 차들은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사고가 난 차들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찡했다. 그 마음을 알 거 같았다.
‘알아요. 저도 방금 그랬거든요.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