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은 음식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머물러 있는 끝 추위가 사라지고 빨리 따스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겨울만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인 듯하여 마음이 조급해진다. 겨울의 달콤함이 무엇이 있을까?
귀와 코가 빨개지도록 시린 바깥의 날씨에 집으로 향하는 길. 어디선가 풍겨오는 자글자글한 기름 냄새에 한 번쯤 고개를 돌려보게 된다.
길거리 가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마냥 뿌리치기 힘든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겨본다. 철판 위 기름 속에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몽글한 하얀 반죽.
그 반죽이 품고 있는 달콤함의 냄새가 흘러나온다. 반죽 속에 숨겨진 설탕이 골고루 퍼지기를 바라며 내 차례를 기다려본다.
기름을 머금은 봉투를 검은 봉지에 담아 손에 쥐고 따뜻함이 많이 사라지지 않도록 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달콤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문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손에 기름과 입가에 녹은 설탕을 잔뜩 묻힌 채로 먹는 달콤함. 안녕! 호떡.
호떡은 이상하다.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야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나는 봄과 여름에 호떡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왠지 다른 계절에 먹는 호떡은 눅눅하고 끈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는 곳도 많이 없다.
문득 호떡이 생각나 집에서 해 먹어도 길거리의 그 맛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계절에는 호떡을 잘 찾지 않는다.
그러다가 늦가을이 되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호떡에 그 기름 냄새와 녹은 설탕의 달콤함이 반가워진다. 왜일까. 겨울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예외인 적도 있었다. 내가 고향에 머물던 학창 시절이었다.
겨울에 특히 더 맛있었던 호떡이지만 그때의 나에게 계절은 큰 상관이 없었다. 언제나 호떡은 맛있었고 나는 사계절 내내 호떡을 찾았다.
내가 자주 먹었던 호떡은 지역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재료는 일반 호떡과 같았지만, 만드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기름에 굽는 것이 아니라 튀기는 호떡이었다.
처음 한 입 베어 물 때는 페이스트리 같은 바삭함이, 그다음에는 쫀득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두께도 더 얇아 녹은 설탕이 호떡의 겉 부분까지 흘러나와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과자 같기도, 쫄깃한 빵 같기도 한 호떡이었다. 친구들과 시내를 나갈 때면 그 가게에 들러 호떡을 먹고는 했는데 언제나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했다.
가끔은 기다림이 지루해 참지 못하고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결국은 손에 하나씩 호떡을 들고 있는 일이 많았다.
인기만큼이나 맛있었고, 기다리기는 싫지만 다시 생각나서 찾게 되는 호떡이었다.
돌아보면 호떡은 학창 시절에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달콤함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달콤한 추억을 함께 담은 음식이 되어준다.
호떡은 참 이상하다. 요즘처럼 종이컵에 담아 먹으면 흘러 떨어질 걱정 없이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데, 나는 여전히 빳빳한 종이를 반으로 접어 호떡을 먹는 것이 좋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할까. 고정관념일까. 익숙함의 차이일까.
예전에 호떡을 얇은 종이에 여러 겹 감싸 주다가 빳빳한 종이로 바뀌었을 때 얼마나 편했던지. 기름과 녹은 설탕이 흘러 손에 묻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그 빳빳함이 호떡을 잘 잡아주는 든든함으로 느껴졌다. 후에 종이컵으로 바뀌었을 때는 좋은 방법이라며 감탄했지만, 손에 묻지 않는 그 깔끔함이 왠지 서운했다.
포장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사서 집에 오면 포장 종이가 기름에 절어 투명해지고 겹겹이 바로 쌓은 호떡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면 그중에 설탕이 골고루 녹아있는 호떡을 고른 후 적당히 식은 호떡을 맨손으로 덥석 집어 먹었다.
남는 건 손에 묻은 반들반들한 기름과 끈적한 설탕뿐이었지만 그게 호떡의 맛이었다.
지금은 샌드위치에 감싸는 포장지처럼 호떡의 포장지도 깔끔하게 나와 좋지만 그게 왜 이리 아쉬운 건지.
나는 아직도 호떡을 그리는 맛이 그때 그 빳빳한 종이와 기름에 젖어 투명해진 포장지에 머물러 있나 보다.
호떡은 언제나 맛있는데 내가 너무 추억 속 모습만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설탕이 잔뜩 들어간 기본 호떡이 좋다.
종이컵보다는 빳빳한 종이에 집어 주는 호떡이 더 친근하고 맛있게 보인다.
추운 겨울이 오면 기름 냄새를 풍기며 뜨겁게 녹아 있는 설탕을 품은 호떡이 반갑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에게 호떡은 겨울이 담고 있는 달콤함의 클래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