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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May 16. 2024

완벽주의의 문제

The downsides of perfectionism

저는 어쭙잖은 완벽주의자입니다. 완벽주의를 원천으로 삼아 학교에서도 인정받고, 사회에서도 성공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저의 완벽주의는 뭔가를 이뤄내는 힘이 아닌, 될 일도 발목 잡는 그런 완벽주의입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생각처럼 잘 안되면 걱정하고, 고민하며 한 걸음을 나아가지 못하지요. 저는 그걸 '다운 타임'이라고 부르는데 운이 좋으면 극복하는데 하루 이틀 정도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번 '다운 타임'에서 빠져나오는데 대략 한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인생 두 번째 정리해고를 겪고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습니다. 한 동안은 글 올릴 날을 설레며 기다리기도 했지요. 책을 읽다 좋은 문구를 발견하면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원래는 좋은 문구는 일기장에 적곤 했는데, 최근에는 다시 찾아보기 용이하도록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적기 시작했어요. 월요일 저녁마다 둘째 녀석이 퀸텟(피아노와 현악기 4대로 구성된 앙상블) 리허설을 하는 연습실 밖 의자에 쪼그려 앉아 글을 썼습니다. 인터넷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의 2시간은 글 하나를 완성해 내기 충분했습니다. 가슴속에 이야기가 한 문장, 한 문단씩 쌓여, 글을 완성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벅참이 참 좋았지요. 


아들의 퀸텟은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이번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글 쓰는 루틴이 없어지니 모든 게 뒤죽박죽 됐습니다. 한 번은 세 문단쯤 적었는데, 아무도 공감할 것 같지 않은 너무 사적인 이야기처럼 들렸지요. 배부른 아줌마의 투정쯤으로 보였습니다. 쓰던 글을 보류하고 다른 글을 새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건 너무 재미가 없네요. 남편은 제가 엄청 심각한 사람, 즉 '노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나름 '개그 욕심'이 있습니다. 노골적인 웃음이 아닌 위트 있는 글이랄까요. 암튼 제가 추구하는 글은 그렇습니다. 


제가 노벨문학상이나 신춘문예에 응모할 글을 쓸 것도 아니고 이게 전혀 써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저를 내버려 뒀습니다. 이삼일에 한 번쯤은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착각(?)에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부터 살고 볼 일이지요. 요 며칠 왜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재밌는 글, 많은 사람이 공감하려는 글을 쓰려는 저의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사실 저의 많은 문제들이 이 완벽주의 때문에 발생한다는 깨달음도 덩달아 얻었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도, 글이 짧아도 그냥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잠이 오던 차에 이 글을 썼습니다. 공부할 소중한 시간 40분 남짓을 써버렸지만, 그래도 글 한 편을 드디어 완성했네요. 오늘은 '아주 잘 살아낸 하루'로 기록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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