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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고양이 Jul 12. 2021

눈까지 떨리는 코끼리 다리 나에게

내 인생을 살자

작년 나는 유독 다리가 퉁퉁 부었다. 일을 끝나고 돌아온 날은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올라 걷기도 힘들고 발은 뜨거웠으며 심지어는 누워서도 고통스러운 단계가 되었다. 가족들에게 특히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리를 발로 살살 밀어 달라며 마사지를 요구했고 나중에는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하며 인터넷 검색으로 여기저기를 찾아보고 무슨 큰 병인가 싶어 덜컥 겁도 났었다. 그래도 어떤 원인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프니 병원을 가더라도 무슨 과에 진료 신청을 해야 하는지조차 막막했다. 피곤하면 다리는 부었던 적이 있었고 푹 자고 일어나는 날은 다리가 훨씬 가벼워져서 그런대로 생활이 불편하지 않아 모르고 지냈었다. 

작년의 내 생활을 달랐다. 꼬박 서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누군가가 할 일을 내가 했어야 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아이들 산책도 매일 산을 가야 하는 상황으로 내 다리에서 신호를 보낸 것이다.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 이젠 나 좀 돌보며 살라고 언제까지 책임감에 짓눌려 나를 외면할 거냐고 하는 것 같았다. 


또 정의에 불타는 나는 부당한 것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몇 달씩 꾹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다 때가 됐을 때는 나의 목소리를 낸다. 그때는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말하고자 마음먹을 때는 이건 해야겠다 여겼기에 나는 말한다. 

항상 남 좋은 일을 시키는 나는 어디 가도 내가 앞장서고 좋은 일은 다음 사람에게 몰아주었었다.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늘 내 것은 생각 못 하고 바로잡는 것만 보다 나를 정작 지키지 못했다. 


방학 동안 기본 검사부터 MRI, 초음파, CT까지 검사하고 나서 보니 내 몸은 엉망이었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고 뭐 하며 살았던가. 철분 수치는 바닥으로 응급상황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비타민D는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철분 수치가 그 지경이니 빈혈 수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당시 한쪽 눈이 심하게 떨리다 심지어 상대방이 알아보는 상황이었고 한번 떨리면 좀처럼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다. 남편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당장 그만두기를 권하고 권했다. MRI 검사 결과 뇌의 혈관이 꼬여있다고 수술을 해야 하고 완치율을 98%이니 돌고 돌아 결국은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고 나이가 젊을 때 하는 것을 권하셨다. 난 아직도 수술을 못하고 있다. 아니 미루면서 안 하고 있다. 


마지막 진료상담은 막내와 갔었다. 옆에서 같이 듣던 막내의 한 마디에 많은 생각도 든 하루였다. 

"엄마, 무서워? 나도 했잖아. 엄마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하며 10살 아이 말에 나의 마음은 들켜버린 것 같아 웃었고 감동받았다. 아이는 한 달 전 씩씩하게 눈 수슬을 멋지게 해 냈던 아이다. 진짜 멋진 막내였다. 하지만 난 맞다. 무서웠다. 수술은 한 시간 남짓이고 일주일 입원이면 되는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느낀다.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작년에는 코로나가 심하니 올해는 지나고 한다고 가족에게 말했지만 또 올해에는 너무 바쁘니 잠깐만 바쁜 거 지나고 해야겠다고 하며 미루고 있다. 


처방받은 약을 한 움큼 가져오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수치가 낮으니 약을 먹으라는 것인가 보다 하며 크게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약이라고 처방받아온 것들은 약이라기보다 거의 영양제 수준들이었다. 수치를 정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철분제와 기타 등등의 약들이다. 임산부들이 먹는 철분제와 엽산을 내가 나이 40대 중반 주부가 먹으면서 한 번도 영양제나 몸에 좋은 것들을 먹어 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생소한 상황이었고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몸이 그 지경이 되고 본의 아니게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다리만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무리 없이 다녔을 것이다. 다리가 결정적으로 매일 가야 하는 산책과 서서 있는 일들이 내 다리를 보호하자 싶어 어쩌지 못했다.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서 찾아보고 알아본 끝에 하지 정맥류가 의심되었다. 아! 그래서 아팠다면 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구나 하며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지 정맥류의 다리는 산을 오르거나 가파른 곳을 가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하며 오래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무리가 오는 것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병원 진료도 3차 병원을 가기까지는 동네병원의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가 있어야  갈 수 있는 요즘 상황에서 진료받으며 상담받고 처방받는 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대학병원을 가기 위해서 영상을 첨부해서 다시 대학병원 교수님께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번거롭고 힘들었다. 큰 에너지와 시간을 들이며 병명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사 선생님과 상담 과정에서 병원마다 같은 병을 처리하는 과정 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또 알게 됐다. 


종합병원에서는 척출 수술이라 전신마취를 하고 한쪽 다리를 할 것이고 내가 나이가 젊기에 재발을 다른 혈관이 또 생기면 그게 재발이라 여긴다면 재발이고 대학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사실 두 다리 모두 아프다고 하고 수술을 하고 싶지 않고 다른 방법을 물었을 때 더 반가워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내 선택인 것처럼 느꼈기에 나는 바로 안 하고 싶은 마음을 내 비쳤고 선생님 또한 혈관 강화제를 먹으며 나아지시는 분도 많으니 약을 처방해 수시고 압박스타킹을 권하셨다. 

모든 병이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 최후의 수술을 할 때도 우리가 꼭 그 방법인가라고 생각해 볼 만은 한 것 같다. 

결국 나는 하지 정맥류 수술을 안 했고 잘 무리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자극적인 것은 모든 병에도 안 좋지만 부기가 있는 나는 자극적인 맵고 짠 음식과 밀가루, 고기, 유제품을 웬만하면 멀리하고 관리하니 다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부기가 덜 부으니 괴로움은 줄어든다.


또 음식이다

음식을 가려먹고 다리까지 한결 나아지니 우리는 무엇을 가려 먹어야 하는지 알면서도 안 한다. 

요즘 사람들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이 아니고 알고 있지만 외면하며 바쁘게 사는 것이다. 

나와는 조금 먼 일이라고


나도 그랬다. 

남편을 몸을 관리한다고 

아이들을 지켜낸다고

하지만 정작 나를 지키지 못했다.


나의 미니멀과 간소한 인생에 몸부림치던 나는 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건강이 내게 알려준 중요한 메시지처럼

이젠 나를 위한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고

나를 아끼는 것이 가족을 아끼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도 건강하게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나를 응원한다. 


인생의 반 정도 살아온 나는 이제부터 내 인생을 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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