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쿠버의 소규모 개인 카페
서울의 프랜차이즈와 밴쿠버의 프랜차이즈가 서로 다른 성공을 거두었다면, 각 도시에서 개인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들은 어떨까?
서울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개인 카페의 격차가 어마어마한 데에 비해, 밴쿠버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개인 카페의 격차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부족한) 생각이다. 서울에서는 카페 간 경쟁이 프랜차이즈와 개인 카페 영역으로 나뉘어있었다면, 밴쿠버에서는 카페 간 경쟁이 프랜차이즈와 개인 카페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양상을 보인다.
서울의 개인 카페는 이미 프랜차이즈 카페와 전혀 다른 영역에 머물고 있다. 서울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카페들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인식도 높은 만큼 각 카페가 제공하는 음료의 수준 또한 뛰어나다. 동시에 카페가 음료 한 잔과 함께 고객에게 제공하는 전방위적인 경험인 인테리어와 분위기 또한 압도적이다. 서울의 카페만큼 통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카페를 밴쿠버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반대로 밴쿠버의 소규모 개인 카페들의 수준은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거의 동등해 보인다. 서울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와 거리를 두며 압도적인 수준으로 카페의 이용경험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밴쿠버 카페 간의 높은 수준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각 카페는 저마다 특색 있는 음료와 시그니처 원두를 이용한 푸어오버(Pour Over)를 선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각 카페마다의 개성이 고객들로 하여금 일종의 팬덤(fandom)을 구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게마다 가게 로고가 박힌 각종 기념품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리볼버(Revolver)는 개인 카페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인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가스타운(Gas Town)의 명물이자, 어마어마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이 카페는 10년이 넘어가는 창업 연도에 비해 원두는 비교적 신생인 브랜드 엑스 아니모(Ex Animo)를 사용한다. 카페의 분위기는 고즈넉한 원목느낌으로 가득하다.
손터(Saunter)는 리볼버 근처에 위치한 카페로, 리볼버만큼이나 멋진 커피를 선사한다. 리볼버가 수준 높은 커피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찍어내는 데에 반해, 공간도 넓고 카페 경험도 리볼버보다 느긋한 편이다. 리볼버 다음으로 좋아하는 다운타운의 카페 맛집 중 하나다.
리버티(Liberty)는 힙스터의 상징인 메인스트릿(Main Street)의 카페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카페로 보인다. 하얀색 페인트칠을 한 원목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직접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린다. 일하는 바리스타 분의 손목 위에 얹힌 오리스(Oris) 시계가 멋졌던 곳이다.
슬로(Slo) 또한 개인적으로는 리버티보다 더한 충격을 주었다. 둥글게 감싸안는 돔형 형태의 천장과 더불어 사막과 같은 매트한 질감의 주황색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곳이다. 무엇보다 처음 방문한 나에게 보여주었던 직원의 친절함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다. 위치는 메인스트릿 바로 옆에 놓인 프레이저 스트릿(Fraser Street).
메인스트릿의 다른 카페 애퍼처(Aperture)는 커피와 재즈와 모터사이클이라는 엉뚱한 조합을 재미있게 뭉친 카페이다. 커피와 더불어 생맥주와 위스키를 판매하며, 오후 5시 이전에 문을 닫는 인근 카페에 비해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다른 카페에 비해 공간에 머물며 각자만의 작업을 하는 고객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가게 한복판에 멋진 오토바이를 둔다거나 정기적으로 토요일 밤의 재즈 공연을 연다 거나한 점에서 가게 사장의 콘셉트로 가득 찬 공간이다.
포그리프터(Foglifter) 또한 메인스트릿의 또 다른 멋진 카페로 리버티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양한 종류의 페이스트리와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커피 맛도 훌륭한 편으로, 이용 고객의 좋은 후기가 많이 들려오는 공간이다. 메인스트릿의 커피 맛집 중 하나.
모두스(Modus)는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작은 카페로 커피 맛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하다. 카페 공간은 크지 않고 이렇다 할 공간의 콘셉트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커피 맛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듯한 곳으로, 조금 애매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찾아가 맛볼 만하다.
근처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은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으로 방문하는 이들을 사로잡는 곳으로, 무엇보다 10개가 넘어가는 많은 양의 원두가 선택권으로 주어진다. 애퍼처와 같이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작업을 하는 손님의 비중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 근처의 카페 오이데(Oide)는 자그마한 일본식 카페로, 무채색과 단순함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인상적인 카페다. 다른 곳에 비해 메인 음료 이름이 3가지 인 것이 인상적이다. 블랙(에스프레소+물), 화이트(에스프레소+우유), 그린(말차+우유). 푸어오버 옵션도 제공하며 퀄리티가 뛰어나다.
미온(Miion)이라는 리치먼드의 작은 카페는 이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볼만하다. 리치먼드라는 작은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하얀색의 조그만 카페이지만 그런 만큼 가게 사장의 콘셉트가 잘 녹아들어 간 공간이다. 공간을 채우는 재즈 음악과 가게에서 내오는 작은 컵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작은 조명까지, 사장의 확고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는 곳 같다.
아직 가보지 않은 카페들은 차고 넘친다. 에스트라토 커피(Estratto), 애나벨스(Annabelle’s), 카우독(Cowdog), 프로파간다(Propaganda), 허쉬(Hush)와 더불어 프랜차이즈인 프라도(Prado), 팀버트레인(Timber Train) 및 기타 등등,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카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느낀다. 서울만큼이나 치열한 밴쿠버에서 카페로 살아남기 위한 각 가게들의 전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