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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속의 지니 Apr 20. 2024

모즈나

(사람)

모스크바에서 만난 그녀의 이름은 모즈나, 팔레스타인어(아랍어??, 하여튼)로 '비'라고 했던 거 같다.

히잡을 옷 색에 맞춰 매일 바꿔가며 쓰는, 직업이 외교관이었지만 우리가 '시침핀'이라 부르는  바로 그 핀으로 히잡을 턱 밑으로 모아 조여 마무리하는(깜작 놀랐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 아랍 커리어 우먼이었다. 중동의 보통 여성-눈이 부리부리하고 몸매는 통통하면서 굴곡이 있는-인 모즈나는 수더분하고 재미난 아줌마이기도 했다.


우리는 비유럽권이라는 공통점과 형편없는 러시아어 실력이라는 더 결정적 공통점으로 친해졌다. (유럽권 학생들은 수업보다 파티가 루의 주된 일과인 작자들로 그중 일부는 심지어 노골적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알라신의 가호로 가난한 나라의 외교관으로는 쉽지 않은 해외 교육기회를 잡게 되었다'며 감사와 감탄을 입에 달고 지냈다.


그러나 그녀에게 기회를 준 러시아의 국민들은 히잡 쓴 그녀를 결명의 눈으로 봤고,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술 취한 남자가 시비를 걸 욕을 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 나와 함께 있었던 나의 룸메이트 세르비아 친구의 전언에 따르면 그 망할 러시아 놈은 그녀에게 욕을 하며 너의 나라로 꺼지라고 소리쳤다 한다) 덕분에 함께 있던 우리 그룹 모두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까지 두려움에 덜덜 떨어야 했다.


그녀는 아이가 셋이 있었고 남편이 다른 아랍 사람들과 달리 자기 외 다른 부인을 두지 않았다고 은근히 자랑다(사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이유일 거라고 다른 친구들은 짐작했다). 그러나 헤어지 전날 우리만의 송별 파티에서 그녀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 머리를 보여주면서 남편이 종종 자기를 때린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어느 날 남편과 말다툼 끝에 차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어 수업은 초반부터 수많은 격변화의 벽에 부딪쳐 정신을 못 차리는  더듬이의 대잔치가 되곤 했다. 예외일 수 없는 나에게 어느 날 '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라는 숙제가 떨어졌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모즈나가 남편과 세 딸을 각각 격변화를 활용해 소개하느라 죽을 고생하는 하는 꼴을 본 나는 (우리는 아직 가족관계를 커밍아웃하기 전이었다) 결혼 후 남편과 살고 있으며 아직 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를 재설정하고 작문을 했다. 그녀에 비해 내 발표는 가뿐하게 끝났다


그러나 그 이후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애 못 낳는 불쌍한 여자로 취급하며 위로와 다산의 축복을 쏟아부었다. 음식을 가려먹을라 치면 그러면 임신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을 했고 카푸치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짧은 반바지를 못마땅해했고 어느 날은 남편과의 사이를 심각하게 묻기도 했다. 가장 낭패는 그녀 덕분에 내가 불임녀로 계속 좌중에 리마인드 되면서 나는 계속 거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모스크바를 떠나기 하루 전 그녀가 내 방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흰색 히잡을 곱게 접어 내 손에 쥐어주며 자신이 모스크바에 있는 내내 알라신에게 지니의 임신을 위해 기도했다면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축복했다. 나는 그녀의 방에서 목격한 나침반이 붙어 있는 카펫과 그위에서 나의 회임을 위해 기도하는 그녀를 상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마왔고 한편으로 알라신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그 신은 능력이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이후로도 가끔 팔레스타인의 소식을 외신을 통해 들을 때면 내 손을 꼭 잡아주던 따뜻한 마음의 중동 여인 모즈나를 떠올린다. 부디 가엾은 그녀의 나라가 평안하길. 착한 그녀가 안전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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