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엄마의 냄새를 묻는다면, 다른 누군가들이 말하는 흔한 푸근함, 포근함, 정겨움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내게 엄마의 냄새는 으레 말하는 그런 것들보다 담배 냄새가 더 익숙하다.
우리 엄만 담배 피우는 여자다. 시골 집 바깥 테라스에 앉아 담배 피우는 걸 즐긴다.
봄이면 집 앞 과수원에 파리하게 올라온 복숭아 싹을 보면서, 여름이면 땀범벅이 된 몸을 고개 넘어 불어오는 바람에 식히면서, 가을에는 파란 하늘 밑을 지붕 삼아서, 겨울이면 자박자박 내리는 눈을 보며 어딘가의 기억을 더듬듯이.
늘 똑같이 담배를 피우지만, 계절마다 담배를 입에 문 엄마의 모습은 마치 카멜레온 같다.
엄마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건, 내가 9살이 된 무렵이었다. 그때 엄마 나이가 스물 아홉. 엄마는 이혼녀가 됐다. 한창 꽃물이 올라 예쁘기만 할 스물 하나에 엄마는 엄마가 됐다. 그리고 9년 뒤 이혼을 했다. 생때 같은 두 남매도 고스란히 빼앗겼다. 엄마 인생 전부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정도, 품 안에 뒹굴던 두 아이도, 남편도, 빛나야 할 20대에 엄마가 되느라 흘려버린 그 시간들까지도.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엇에 의지해야만 했을까.
덧없이 흐른 시간에 분노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일 밤 토끼 같은 눈망울로 엄마를 바라보는 두 자식이 그리워 몸부림을 치고 허벅지에 피멍이 맺히도록 때리며 울음을 삼키는 날들을 이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막 올라오는 꽃망울보다 더 찬란했던 그 시절을 빼앗겼단 허무함, 자신이 온 마음과 온 몸을 바쳤던 그 가정이 공중으로 흩어졌는지, 땅으로 꺼져버렸는지 모를 상실감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좌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담배 피는 방법을 배웠다. 엄마는 금방 담배와 친숙해졌다. 담배 한 모금에, 한 개비에 시름을 날리도 했고 고달픈 이혼녀의 인생을 녹여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 안에 남은 찌꺼기와도 같은 감정들을 지워내며 엄마 자신을 달래는 법도 제법 알아갔다. 문득 지난 시간을 거슬러 돌아볼 때마다 왼쪽 가슴께가 아릿하고 뻐근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걸 배워두기 잘했다며, 담배로 위안을 삼곤 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쯤 지났을까. 품 안에서 놀던 자식들은 어느덧 훌쩍 자라서 돌아왔고, 엄마는 새 가정을 꾸렸다. 엄마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0대의 순수함을 넘고, 30대의 가슴앓이를 넘고, 40대의 세상살이에 대한 처절함을 넘고, 50대에 엄만 비로소 제대로 된 엄마를 찾았다. 그렇게 곧 6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동안 엄만 도시의 여자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농부의 아낙이 되었고, 제법 억척을 떨며 새끼보다 더 새끼다운 과실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엄만 그 사이에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와 건강한 주름살, 그리고 해사한 웃음을 덤으로 얻었다.
엄만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 이따금씩 진한 입술담배를 피워대며 "내가 왜 아직도 이걸 이렇게도 못 끊고 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어린냥 섞인 소리를 하며 웃기도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무언가 지워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나보다.
오늘도 엄마는 변함없이 담배를 피운다. 나는 엄마가 담배와 이별할 날을, 담배가 엄마 인생에서 떠나 작별할 그 시간을 가만히 더듬어본다. 그곳에는 담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엄마의 인생을 지탱해주리라고, 그것은 어떤 거대한 큰 손이어서 엄마가 이따금씩 걷게 되는 지난 시절의 어두운 터널에서 영영이 엄마를 빼내줄 것을, 앞으로 빛나는 길 가운데로 이끌어줄 것을, 나는 두 손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