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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Mar 12. 2019

그 흔한 엄마 얼굴

-텔레비전에 엄마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보고싶은 사람의 얼굴을 바로바로 꺼내서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은 참 좋다. 언제든지 핸드폰이나 테블릿 pc, 그리고 각종 인터넷 저장 시스템으로 지난 날 그리운 이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사람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 애닳는 마음은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달랠 수가 있다.


 

지금 내 기억 속에 있는 엄마의 모습은 아주 앳된 새색시 같은 얼굴과 그 뒤에 서른 중반의 얼굴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다. 갓 서른이 되었을 때부터 서른 중반을 오가는 그 몇 년 사이의 엄마 얼굴을 나는 모른다.

 내가 9살이 된 무렵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나는 남동생과 경상북도 예천이라는, 시골 깡촌 중에서도 깡촌인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그곳은 황토진흙을 바른 벽과 기와를 올린, 다 쓰러져가는 한옥집에 화장실은 푸세식이었고, 세면대는 마중물을 퍼서 물을 써야 하는 펌프가 있는 집이었다. 더 기가 막힌 상황은 아궁이에 불을 떼서 가마솥에 밥을 해야 했으며 냉장고도 없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꼭 조선시대 쯤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집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매일 밤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퀴퀴한 이불 냄새도 싫었고, 언제 먹었는지 모를, 말라 비틀어진 김치에 눅눅한 김, 잡곡이 가득 섞인 밥 등 정갈하지 못한 밥상도 싫었다. 나는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빨아준 뽀송한 이불 냄새가 그리웠고, 예쁘게 부친 계란말이에 폭신한 쌀밥이 놓인, 깔끔하게 정돈된 밥상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이대로 엄마를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9살이었다. 칠흑같은 어둠이 몰려오는 시각이면 내게 죽음과도 같은 공포가 달려들어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가요대전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몇몇 트로트 가수들이 연이어 구성진 목소리를 뽐내고 들어가기를 몇 번인가, 나는 TV 속에 나오는 한 여가수를 보고 숨이 턱, 멎는 것만 같았다.

엄마였다. 엄마가 나왔다. 분명 엄마였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 가슴만 두근두근~~"


가요대전을 진행하는 MC는 그녀가 주현미라고 했다. 주.현.미.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우리 엄마는 가수 주현미와 너무나 닮았다. 도플갱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니, 내가 엄마를 어디 가서 "우리 엄마 주현미에요"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이후로 나는 매일 그 시간에 그 채널을 틀었다. 이젠 매일 엄마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단 설렘이 그 시절 나에게는 말 할 수 없을 만큼 큰 위안과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주현미 씨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사실상 아주 드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동요 중에 이런 곡이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동요를 이렇게 바꿔 불렀다.


 "텔레비전에 엄마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내 마음에 안정이 올 때까지, 엄마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다보면 이상한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정말 엄마가 저 길을 걸어 내게로 올 것만 같은 기분. "해주야" 내 이름을 부르며 저 마당으로 들어설 것만 같은 기분. 달이 네모라고 해도 정말 믿어질 만큼의 어떤 힘이 생겼다. 그렇게 이 동요는 내게 18번 곡이 되었다.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도 불렀고, 그 시골 깡촌에서 뛰쳐 나가 차라리 고아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렀고, 감기에 걸려 아파 죽을 뻔 했을 때도 불렀고, 힘 없는 나와 동생을 괴롭히는 동네 오빠가 무서울 때도 불렀다.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이 노래를 크게 부르고 있으면 엄마가 가만히 와서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내겐 참 이상하고도 신기한 노래였다. (지금도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 주변을 돌아볼 때도 있다)  


 간혹, 누군가는 자신의 엄마가 나이가 들수록 꽃중년이 되는 것 같아, 또는 황신혜나 김희애처럼 예뻐서 좋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흔한 우리 엄마 얼굴이 너무나 좋다. 특별히 화사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그 얼굴. 너무나 평범해서 한 번 보면 그저 잊힐 것만 같은 그 얼굴. 나는 엄마의 그 얼굴이 참 좋다. 그 시절 나에겐 엄마의 그 얼굴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9살 작은 아이에게는 누군가의 닮은 얼굴을 통해 엄마의 얼굴을 잊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특별하지 않은 엄마의 그 얼굴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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