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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Mar 13. 2019

니가 그리운 날엔, 니가 보고 싶을 땐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

 모든 사람이 그렇듯 각자의 특별한 순간들과 기억이 있다.

 첫 데이트가 그렇고, 결혼기념일이 그렇고, 수십 번 끝에 합격 소식을 들은 회사가 그렇고, 좋아하는 누군가와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날이 그렇고. 오랜만에 그것도 아주 우연히 보고 싶은 상대를 만났던 그런 날이 그렇고. 또 어떤 이별과 어떤 시작 앞에서 그렇다. 우리에겐 수많은 '특별함'이 존재한다.

 우리 엄마의 특별한 날은 그리움을 달래는 날이다. 나는 이걸 두고 엄마의 '그리운 마음 달래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엄마는 무언가가 그리운 날이면 음식을 만드는 버릇이 있다. 향이 짙은 그리움일 땐 자박자박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얼큰칼칼한 오징어찌개를 끓인다. 그리움이 못내 잊히지 않고 하루종일 엄마를 따라다니는 날이면 꼬들꼬들 돼지껍데기나 마른 노가리를 무치는, 꼭꼭 씹어야만 하는 밑반찬을 만든다. 떨어져 있는 자식들과 통화를 한 번씩 한 날이면, 그래서 그 자식들의 뭔가 기운 빠지는 목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도닥도닥 안아주고 싶은 날이면 묵은지와 등갈비를 넣고 한소끔 푸욱 찐, 묵은지등갈비찜 같은 음식을 만든다. 엄마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복잡미묘한, 여러 가지 섞인 감정과 감성을 엄마는 모든 요리로 풀어낸다. 이 많은 날 중에서도 특히, 엄마는 봄날에 김밥 싸는 걸 즐긴다. 고슬고슬한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예쁘게 부친 계란 지단과 오이, 당근, 맛살, 우엉, 단무지, 어묵 등 속재료만 14가지를 넣어 꽁꽁 눌러 싼 엄마표 왕김밥.

 엄마가 김밥을 싼 날엔 어김없이 내 핸드폰 벨이 울린다.


"딸~ 뭐하는데?"

"나? 뭐하긴, 일하지."


그러면 엄마는 약 올리듯 김밥 하나를 입안으로 넣고 우적- 씹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엄마 오늘 김밥 쌌는데~ (보란듯이 김밥을 하나 더 우적 씹으며) 오늘 김밥이 왜 이렇게 맛있냐~"


그리고 늘 그렇듯, 나의 반응은 이렇다.


"우씨... 나는? 나도 엄마 밥 먹고 싶은데...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럼 엄만 또 이 반응을 기다렸단 듯 기분 좋은 웃음 소리를 내며 말한다.


"지금이라도 내려 와라~ 오기만 해봐. 너 먹고 싶은 거 엄마가 다 해주지"


(엄마의 밥상은 아니다^^;;;;  사실 엄마의 밥상을 마주하면 먹기 바빠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엄마 밥상 사진 한 장 이쁘게 찍어둘 걸... 하며 후회하는 중이다)


 엄마가 생때 같은 남매를 떨어뜨려놓았던 날, 그리고 그 후부터, 봄날이면 제 등짝만한 책가방을 메고 소풍을 가는 아이들을 보며 엄만 집으로 돌아와 김밥을 쌌다고 했다. 어린 두 남매가 생각나서. 자신의 그 똘망한 아이들도 지금쯤이면 소풍을 가고 있을까, 누군가 김밥은 싸서 보냈을까, 김밥을 못 싸가서 굶지는 않을까, 혹은 김밥이 너무 부실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엄마는 김밥을 양껏 싸서 그 많은 김밥을 혼자서 꾸역꾸역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시골 집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면 엄만 아침부터 김밥을 싼다. 단 한 번도 김밥을 싸주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난날 그 자식들에게 못 먹인 김밥을 실컷 먹여주려는 듯, 엄마는 다른 날보다 재료를 더 많이 넣어 뚱뚱하다 못해 곧 터질 것 같은 크기의 김밥을 싸서 내놓는다. 서울로 올라가며 먹는 엄마의 김밥은 정겹다. 맛있다. 그리고 엄마의 그리움의 맛이, 자식을 향한 사랑의 맛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뚱뚱한 김밥을 입안에 미어 터지게 넣고 씹는 게 좋다.


 엄마의 밥은 나에게 언제나 그리움이다.

 맛있는 그리움, 쌉쌀한 그리움, 씁쓸한 그리움, 사랑의 그리움, 아픔의 그리움, 반짝이는 그리움, 보고 싶은 그리움, 애틋한 그리움, 외로움의 그리움, 고독의 그리움, 쓸쓸함의 그리움, 행복의 그리움.



<엄마에게 쓰는 짧은 편지>

엄마, 너무나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난날 엄마를 힘껏 사랑하지 못해 미안해.
언제나 나에 대한 그리움,
또 나의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엄마의 마음이 문드러지다 못해 다 짓이겨진 채 아물지 않아 그렇게 그 채로 견디고 버티는 걸
조금 더 알아주지 못해서,
조금 더 관심 있게 바라봐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의 인생을 조금 더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다면...
엄마의 삶을 내가 조금 더 사랑했다면...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삶이 이렇게 풍족해질 수 있다는 걸,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는 걸.
엄마가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버리지 않아서, 잊지 않아서, 감사해.
엄마가 그 모든 시간을 견뎌준 만큼,
포기하지 않은 만큼,
이젠 내가 천천히, 하나씩 다독여줄게.
엄마가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열 번을 더 했어야 할 말.
나의 엄마, 나의 단 하나의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정말 다행이야
사랑해 엄마.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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