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찾아 떠난 할시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을 향해서 뛰어오르자

by 김현주

아이슬란드 여행 BGM: 청춘만화 - 이무진


비행이 망설여지기도 하겠지만
한 번뿐인 이 모험을 겁내진 않아
오늘보다 오래된 날은 없으니 어서
날아오르자

점점 혼잔 게 외롭긴 해도
멈추지만 않으면 도착해
끝과 시작의 과정 사이의 나의
쉼표를 그늘진 길가에다



친구들과 모여서 2026년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사소한 바람이나 습관 만들기도 적었다.


나는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보고 싶었던 오로라 보러 가기를 적었다.

운 좋게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고 쉬는 친구도 오로라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을 준비했다. 그것도 2주도 안 되는 사이에.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게 3월까지라고 하기에 후다닥 다녀왔다.


처음에는 캐나다 - 옐로우나이프를 골랐다. 비행기 편이 포함된 패키지를 살펴보면서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금액과 최대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구성으로 몇 가지 패키지를 비교해 보다 하나를 골라서 신청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패키지 가격이 홈페이지에 나온 것보다 훨씬 비쌌다. 유류비 때문에 비용이 증가해서 여행 경비가 의도치 않게 늘어날 상황을 마주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가 비행기 편을 찾고, 거기 가서 할 수 있는 여행은 따로 알아보자며 다시 계획을 짰다.

게다가 옐로우 나이프는 정말 오로라보기를 보는데 집중해서 시내 구경이나 밤이 되기 전에 액티비티나 관광할 게 많지 않았다. 개썰매나 설산 등산은 하루, 이틀이면 될 것 같고. 그래서 아예 지역을 바꿔보았다. 볼 게 많거나, 할 게 많은 곳을 찾다 보니 아이슬란드로 향하게 되었다.



가는 편: 핀에어 한국 → 핀란드 → 아이슬란드 (돌아올 땐 반대로 돌아왔다)

작년에는, 열심히 일하느라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울릉도로 국내 여행을 다녀왔기에 아이슬란드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아주 오랜만에 탔다. 게다가 경유도 처음이었다. 2시간 미만으로 경유 시간이 있는데, 헬싱키 공항은 작아서 경유가 빨리 된다는 공식 홈페이지 글을 믿고 갔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봤을 때도 다 가능하다고 해서 믿고 갔다.

레이캬비크로 가는 비행기 게이트 오픈 시간에도 심사 줄이 길었다. 친구와 함께 불안해하고 있는데, 직원이 레이캬비크로 가는 사람만 나오라고 해서 짧은 줄을 만들어줬다.

여행을 가면, 추천 받은 책이나 여행지에 잘 어울려보이는 책을 가져가서 읽는다. 이번 여행에서 가져간 책은 '오로라를 따라간 푸트만스씨 - 헨드릭 흐룬' 이었다. 다 읽고나니... 결말 때문에 책을 잘 못 고른 거 아닌가 싶었지만 여행을 할 수록 왜 푸트만스씨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갔다. 물론 친구는 그래도 이해가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그랬지만, 푸트만스씨 상황에서 오로라를 보았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내와 오로라 구경

오전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두고 시내 구경을 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옷을 껴입고 간 바람에 시내를 걷는 게 더웠다. 건물들이 다 낮아서, 대충 높은 건물이 4-5층이 되는 높이로 시야가 뻥하니 뚫렸다. 서울, 경기도의 빌딩숲만 보다가 낮은 건물들로 이뤄진 지평선을 바라보니 눈이 참 시원하고 편안했다. 여유로웠다.

첫날 저녁부터 오로라 헌팅이 있었다. 차를 타고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투어로, 밤이 되니까 바람이 추워졌다. 비행기에 내릴 때 기장님이 오늘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러키데이라고 말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뜬 날이라서 오로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많이 했다.

오로라 헌팅을 위해 픽업을 기다리며 친구와 각자 욕심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오로라를 보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볼 거면 크고, 움직이는 것까지 다 보고 싶다는 욕심을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기부도 했다...

시내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갔다.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선명한 오로라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로라가 약하면 색도 약해서 구름처럼 회색으로 보이는데, 선명한 오로라는 또 색을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카메라를 통하지 않아도 초록색의 오로라를 보게 되다니. 자연스럽게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오로라를 마주하고, 오로라가 움직이는 걸 구경했다. 넓게 퍼지면서 다른 방향으로 길이 났다.

오로라를 묘사할 때 장막이 움직인다, 천이 움직인다고 하는지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왔다. 삼각대를 가져가서 타임랩스로 요동치는 오로라까지 찍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에 봤던 오로라가 사라지고,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생기는 오로라를 구경하며 핫초코를 먹는 경험은 상상하던 기쁨 그 이상이었다. 14시간이 넘는 비행의 피곤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바로 목적을 달성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이대로 아직도 설렘이 남아있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그날 밤, 바로 오로라 밑에서 찍은 사진으로 몇 년 만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기도 했다.




골든서클과 다이아몬드 해변, 얼음 동굴

씽벨리르 국립공원, 게이시르 지열지대, 굴포스 폭포, 셀야란드 스포츠폭포 - 스코가포스 폭포 - 레이니스피야라 검은 모래 해변 - 스카프타펠 자연보호 구역 - 요쿨 살론 빙하 호수 - 얼음 동굴 투어 - 다이아몬드 해변까지. 알차게 구경했다. 사진으로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아이폰(프로였음에도)으로 모두 담기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아이폰으로 사진만 1500장을 찍었다. 브런치에 올리지 못한 장소와 사진도 가득할 정도로 짧지만 많은 추억을 남겼다. 전문 카메라를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연 속 풍경은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경이로웠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참 오락가락이었다. 달리고 있으면 바람이 강하게 불다가 비가 내리고, 어느 순간 해가 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날씨가 확 바뀐다. 첫날 오로라를 보았던 날이 정말 날씨가 좋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영화 촬영지도 둘러보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겨울을 가득 담고 왔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만들어진 빙하를 구경하고, 그 틈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었다. 친구와 눈싸움도 해보고, 검은 해변도 걸어봤다.


오로라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건 다이아몬드 비치였다. 퇴사하고, 험난한 취업 시기를 겪으면서 무수한 도전과 실패(불합격)를 마주하고 있는 내게, 바다로 나가는 빙하들이 파도에 깎여 조각난 얼음이 해변에 밀려와 다이아몬드처럼 보인다는 게 굉장히 멋있고 위로가 되었다.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조각난다. 조각이 쌓여서 아름다운 해변을 만들다니.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수많은 도전과 과정의 조각들이 모여서 인생을 만든다. 무수한 조각들이 모여 반짝인다. 단순한 조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이아몬드로 보인다. 도전하지 않으면 조각도 생기지 않는다. 조각마저 결국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왔다가 또 다른 파도에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간다. 조각도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그다음으로는 빙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던 스카프타펠이 인상적이었다. 오로라는 거대한 우주를, 하늘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준다면 스카프타펠에서 마주한 빙하는 자연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시간과 환경이 담긴 자연 앞에서 내가 가진 고민과 걱정이 얼마나 별 것 아닌지 알려주는 압도감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내가 가진 시간을 써야겠다는 도전과, 거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마치, 내가 실패해 봤자 우주로 치면 얼마나 작은 실패겠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물가도 다른 의미로 충격을 줬다. 정말 비쌌다. 한국의 2-3배가 되는 물가를 자랑해서 밥 한 끼에 기본 2만 원부터 시작하고... 마트에서 사서 해 먹는 게 저렴하다고 하지만 호텔이기에, 별도 조리는 할 수 없었다. 챙겨간 컵라면과 스키르(요구르트와 비슷한 전통 발효 유제품)으로 저녁을 챙기고 점심은 투어 중에 만나는 식당이나 가게에서 간단하게(라고 하지만 그래도 2만 원이 평균가였다)를 사 먹었다. 호텔에서 친구와 함께 수프, 립, 햄버거, 맥주 1병을 시켰는데 12만 원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팁이 없다는 점...

함께 투어를 갔던 사람들과 인스타도 교환하고, 감초 젤리도 선물 받아먹어봤다. 감초 젤리는... 정말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미리 체험해 보았기에 기념품으로 감초 젤리 대신 소금을 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하고 각자 나라의 여행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친구와 2인으로 투어를 신청해서 그런지 여행하며 한국인은 만나지 않았다. 대부분 차 렌트를 해서 투어보단 직접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관광지에서는 종종 가족, 혹은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지금껏 내가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한국인을 가장 적게 만난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토킹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보험 12,276원
비행기 3,754,600원 (핀에어)
비행기 발급 20,000원
2인 투어 패키지(호텔 숙소 포함) 4,098,372원
아이슬란드 숙소 포함한 패키지는 가이드 투 아이슬란드라는 곳을 통해서 이용했다.
총 7,885,248 / 2

4일 동안, 1인당 적어도 3,942,624이라는 돈을 썼지만...(가서 쓴 식비, 기념품은 제외)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일정을 늘려서 온천과 북부의 관광지를 더 다녀왔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온천을 가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적당했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으니 이번에는 이 정도로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아이슬란드에 있다. 아이슬란드 너무 좋아... 가 입에 붙었다. 아이슬란드에 가기 전에는 시드니가 인생 여행지였으나, 이제 아이슬란드가 나의 인생 여행지이며 10년 뒤, 다시 찾아갈 목표가 되었다. 살다 보니 10년이 굉장히 훅 가더라. 대학교 입학하며 만난 친구들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이슬란드와 여행을 같이 간 친구도 대학-취준 시기에 만나서 곧 알게 된 지 10년이 되어간다. 그러면 다음 아이슬란드 여행도 금방이겠구나 행복해진다.

다시 아이슬란드를 찾는 날, 드넓은 자연 앞에서 당당하게 많은 도전을 했고 실패에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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