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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Nov 03. 2023

비 오는 날의 즐거움

사흘 연속 비가 내리고 있다. 커다란 유리창 위로 수채화 붓자국처럼 빗줄기가 번져간다. 얼룩진 거실창 너머로 선명해지다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나무의 초록 자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옷을 갈아입던 작은 아이가 뾰로통한 얼굴로 다가왔다. “엄마, 오늘도 체육 시간에 밖에 못 나가?” 게릴라성 폭우가 반복되던 요 며칠 동안 바깥 활동을 못해 아쉽다는 말투다. “그러게, 아마 교실에서 수업할 것 같아.” 내 대답에 볼멘 표정을 짓더니 등에 멘 가방 위로 후드를 끄집어내려 낑낑대는 아이. 나는 아이의 매무새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시간 없다는 말로 등을 토닥이며 등굣길을 재촉했다. 체육 수업은 못하겠지만 오늘도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의 ‘비’는 늘 불청객이었다. 내게는 소풍의 영향이 컸는데, 유치원 때였던가 비가 와서 소풍 날짜가 변경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천 시 취소’라는 안내장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던지. 소풍날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부터 아홉 시 뉴스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비 예보가 없는데도 못 미더운 마음에 잠을 설치곤 했다. 소풍 당일, 맑은 하늘을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껏 설렐 수 있었다. 김밥 끄트머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일회용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 넣은 후, 운동화 흙을 털어내어 끈을 꽉 조여 묶으면 드디어 준비 완료.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그제야 두근두근 바뀌면서 들떠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하루를 위해 모인 부지런한 정성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기를.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소풍이라 생각하던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그 해의 소풍 장소는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롯데월드였다. 안내문을 받자마자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친구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디데이를 손꼽았다. 놀이기구 마니아인 친구 A가 앞장서서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겁이 많은 H는 누가 머리카락이 기구에 끼어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인지 진짜인지 모를 괴담을 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귀밑 3센티미터의 칼단발이던 내게 그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걱정은 단 하나였다. 제발, 비만 오지 않았으면.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놀이공원이란, 솜사탕처럼 파스텔톤으로 화사하게만 그려지던 곳이었다. 소풍날 놀이공원에서 우중충하게 비라니,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간절함이 부족했던 걸까. 안타깝게도 소풍날 아침은 회색빛이었다. 흐린 하늘에 비 소식도 있었지만 소풍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일정이 연기되지 않은 게 어디냐며 흡족하게 버스에 올라탄 친구들. 흥겨운 와중에도 나는 자꾸 차창 밖 하늘로 시선이 쏠렸는데, 캐스퍼 유령처럼 버스를 쫓아오는 시커먼 먹구름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고, 바깥으로 향하던 발걸음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돌아섰다. “일단 실내에서 바이킹이랑 후룸라이드부터 탈까?”, “아니야, 이 정도 비는 그냥 맞아도 될 것 같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행동대장 A가 우산을 펼쳐 들었다. “다들 실내에 몰려 있으니까 우린 나가보자!”     


가까이서 얼굴에 분무기를 뿌려대어 눈을 크게 뜰 수 없을 만큼의 성가심, 딱 그 정도의 빗줄기였다. 우리는 둘씩 짝 지어 우산을 쓰고 조심스레 호수 앞 놀이기구 쪽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이 정도 비쯤은 그냥 맞아도 될 것 같다고 속삭였지만 누구도 먼저 우산을 접지는 못했다. 습기에 푸석해질 헤어스타일도 신경 쓰였고, 옷이 축축해지는 것도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하얀 운동화에 흙탕물이 튀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땅만 보며 걷고 있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어디선가 “저쪽 놀이기구 줄에 사람 한 명도 없어!”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사뿐하던 네 쌍의 운동화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쓰는 둥 마는 둥 어깨에 걸치고 스타킹에 튄 진흙이 차갑다며 깔깔 웃으면서. 뺨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머리카락과 얼룩덜룩해진 운동화도 아랑곳 않고, 웃음소리를 발자국처럼 남기며 까르르 내달렸다. 왜 뛰는지 이유도 모른 채 꼬부라진 앞머리를 잡아당기며 헉헉 숨을 몰아쉬던 A와, 배꼽 잡고 웃느라 허리를 못 펴던 H. 우산을 접고 카메라를 꺼내던 나까지.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오래도록 생생하다. 어디서 도시락을 먹었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도, 비 맞으며 함께 웃던 순간들은 왜 이리 선명한지 모르겠다. 한 번 헝클어진 머리는 고데기 없이는 아침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을 테고, 더러워진 운동화도 집에 가서 빨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자유로워졌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우산을 접은 우리는 부슬비 속에서도 산책 나온 강아지들처럼 분방하게 걷고 또 달렸다. 그러다 물웅덩이를 만나면 그 앞에서 서로의 팔을 끌어당기며 웃고, 다리에 튄 흙탕물을 손가락질하며 또 웃고, 손거울로 서로의 모양새를 확인하면서 다시 웃었다. 대체 빗방울은 어떤 힘을 가졌기에 우리들의 웃음보를 수시로 터뜨린 걸까. 가장 기억에 남는 소풍을 꼽아보라면 주저 없이 그날을 선택할 것이다. 비 오는 날에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여전히 나는 맑은 날을 선호하지만,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한 가지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들이, 여행지에서 비를 만나더라도 낙심하지 말 것. 비 내리는 그 순간만의 희열을 기꺼이 누려볼 것.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서 얼결에 받은 선물처럼, 여행지에서 비를 만난 순간은 유독 진하게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이를테면, 휴양지의 수영장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물놀이하던 기억 같은 것이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수면에 닿는 빗방울을 감상하는데 잔잔히 행복해지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봄이 올 무렵 소나기를 만났던 어느 오후의 시골길도 떠오른다. 징검다리 건너듯 돌길 위를 넘는데, 바닥 틈새로 막 올라온 새싹에 시선을 빼앗겨 멈춰 선 적이 있다. 세찬 빗방울에도 꼿꼿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아니 비를 모른 체했으면, 결코 내게 닿지 않았을 순간들이다.

            

문득 빗속에서처럼, 삶에서 마주하는 변수들도 너그러이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되돌아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유독 예기치 못한 상황들 앞에서 쩔쩔매고 ,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에 조급해하곤 했다. 준비하던 일이 뜻하지 않게 어그러지면 쉽게 실망하고, 상황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들을 원망하느라 시간을 쏟으면서. '왜 하필 그때', '그것만 아니었어도' 같은 억울한 감정을 내버려 두느라, 이면의 밝은 순간들을 놓쳐왔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변수의 연속이기에, '잘 사는 삶'이란 결국 매 순간 기쁨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뒤돌아서지 않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볼 수 있는 것. 때에 따라 천진하게 겉치레나 체면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고 그저 가만히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든, 받아들이는 자세로 그 순간을 꾸려간다면 뜻밖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구름도 한층 가벼워진 모양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슬리퍼를 신고 함께 나가볼 계획이다. 옅은 회색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막 씻어낸 듯 깨끗한 물빛 하늘이 조금씩 드러날 테다. 비 온 뒤에만 만날 수 있는, 맑아지려는 찰나의 여린 빛. 고인 물 위를 찰박찰박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이 하늘을 아이와 나눠봐야겠다. 아이에게도 이 비가 불청객으로만 남지 않기를, 비록 체육 수업은 못했지만 비 오는 날의 유쾌함을 아이 나름대로 발견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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