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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May 10. 2019

들숨과 날숨에 배려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수영장

허리가 굽어도, 귀가 안 들려도 상관없어요.

화, 목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간다. 수영을 배운지는 2년이 다 되어간다. 두 번의 사계절을 물속에서 열심히 허우적대고 나니, 나는 자유형 배영 평형 접영까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화요일에는 오리발을 끼는데 발에 오리발을 끼우면 물속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 날개가 발바닥에 돋은 느낌이랄까. 쭉쭉 나간다. 물속에서 신이 난다. 칭찬은 고래를, 오리발은 나를 춤추게 한다.


한 반에 수강인원은 열 명이지만, 매번 두 세 명 정도 안 나오므로 일고여덟 명이 수업을 받는다. 나는 주로 화요일은 나오는 일고여덟 명에, 목요일은 안 나오는 두세 명에 속한다. 수영장에서는 내발보다 오리발이 확실히 더 매력적이다. 이십 대 초반의 학생부터 환갑이 넘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물속에서 발을 차고 팔을 휘젓는다.     



 

내가 보기에 이미 몸매가 늘씬한 어떤 언니는 더 살을 빼고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은 건강을 챙기고자, 허리가 굽은 어르신은 재활 차,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심심해서, 스물두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은 넘치는 힘을 분산하고자 수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안 하고 싶어 수영을 한다. 물속에서는 발을 차고 팔을 돌려 숨을 쉬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안 드니까. 오리발을 끼고 수업을 하는 날이면 아무 생각 없이 신이 날 수가 있으니까.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오전 9시에는 정확하게 신이 난다.      


오리발을 끼고 수영을 하는 화요일 오전 9시, 나는 정확하게 신이 난다.


한 어르신은 키가 작은데 허리가 많이 굽어서 가만히 서 있을 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어딘가를 잡고 있어야 한다. 우린 각자의 실력과 속도에 따라 나름의 출발 순서가 있는데 그 어르신은 맨 마지막이다. 나는 세 번째다. 물론 뒤에서. 그런데 뒤에서 두 번째 언니는 자주 안 나오는 두세 명에 속하므로 내 뒤엔 어르신이 있다. 다섯 바퀴 정도 자유형을 돌고 나면 가장 빠른 첫 번째 청년도 헥헥댄다. 우리는 모두 물속에서 최선을 다해 숨을 참고 물 밖에서 열성을 다해 숨을 뱉는다. 갑자기 제주 mbc에 근무할 때 해녀 프로그램 내레이션 멘트가 생각난다. ‘살기 위해 숨을 참아야 하는 모순. 해녀’     


헥헥 댈 때는 다들 수영장 벽 끝에 기대어 헥헥 대는데 허리가 굽은 어르신은 맨 마지막에 도착하므로 벽 아래 발 받침대가 있는 곳에 서있을 공간이 없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레인을 붙잡고 겨우 서서 헥헥 댄다. 하지만 레인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므로 기대 있어도 기대어 있는 게 아니다. 그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 다들 열정적으로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이 없기에 어르신의 위태한 헥헥을 보지 못한다. 나는 나름 어르신의 앞 짝꿍이므로 어르신께 말한다. 제 어깨 잡으세요! 그러면 어르신은 내 어깨를 벽 삼아 기대어 조금 안정적으로 헥헥거리실 수 있다. 그럼 나도 그 템포에 맞춰 함께 헥헥거린다.      




힘이 넘치는 스물두 살의 막내는 귀가 잘 안 들린다. 청각 장애가 있다. 우리는 처음 그 친구가 들어왔을 때 자꾸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귀마개를 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일부러 누군가 알리지 않았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그 친구의 장애를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늘어나 모두가 되었다. 막내는 막내라 힘이 넘쳐서 영법을 완벽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제일 빠르다. 팔만 두세 번 휘 저어도 수영장 물이 제일 많이 튄다. 우리는 막내가 물을 엄청 튀며 출발을 하면 아이고. 아이고. 하며 그 물을 온 얼굴로 다 맞고 우하하. 우하하. 하며 엄청 좋아한다. 물 싸다구를 맞는데 왜 다들 웃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 친구의 청각장애를 알고 난 후로 항상 그 친구 앞에서 입모양을 과장해 큰 소리로 설명을 한다. 접 배 평 자. 네 바퀴 갈게요! 접영 갔다가 올 때는 한 손 접영으로 두 바퀴 갈게요! 선생님 목소리가 수영장 안에 크게 물결친다. 혹시라도 그 친구가 못 알아들으면 두 번째로 빠른 아저씨가 손가락을 펴서 접영 배영 평형 자유형 네 개! 하고 알려주고, 마지막 어르신도 브이자를 하며 한 손 접영 두 바퀴! 하고 알려준다. 다 소리치며 말하는데 하나도 시끄럽지 않다. 우하하. 우하하. 또 웃는다.  



   

오십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엄청 오지랖이 넓다. 수영장에 도착 해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말을 건다. 아유 몸매가 이뻐. 어디 살아? 나 여행 가서 다음 주엔 못 나와!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아무 말이나 하신다. 그 아무 말 덕에 우리 반은 분위기가 좋다. 역시 세상 곳곳에는 아주머니가 필요하다. 서먹할 때, 무언가를 배울 때, 연관성 하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아주머니가 있다면 누구라도 말을 하고 웃게 된다. 아주머니들은 자꾸만 질문하고 웃으시니까.


나는 우리 반 막내가 장애가 있는 것도 아주머니가 얘기해 줘서 알았다. 귀가 잘 안 들린대. 그러니까 우리가 잘 챙겨주고 알려줘야지! 입 크게 벌려서! 이렇게 아! 아! 역시나 또 웃게 된다. 예외가 없다. 오지랖만 넓은 게 아니라 마음도 넓은 아주머니. 나는 순간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그 넓은 마음이 조금 줄어들까 염려되어 언니라 불렀다. 언니! 언니 차례예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우하하. 우하하. 아주머니언니는 물속에서도 웃는 것 같다.    


물 싸다구를 맞는데 왜 다들 웃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수영장 안에서 수영 말고도 배우는 게 많은 것 같다. 어깨를 내어주고, 소리쳐 알려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법도 배우는 것 같다. 무엇보다 허리가 굽어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물속에서는 다 똑같은 회원님이라는 게 제일 좋다. 선생님도 어린 막내에게 반말하지 않고,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에게 늦었다 하지 않고, 허리가 굽은 어르신에게도 안된다 하지 않는다. 그저 회원님! 회원님! 부르고 동작을 열심히 알려 줄 뿐이다.


남인데도 서로에게 많은 살을 드러내 보이는 신기한 관계들이 최선을 다해 손발을 차고 숨을 쉬는 공간. 들숨과 날숨에 배려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수영장. 나는 그 숨을 많이 마시고 뱉어서 이제 오리발 없는 목요일에도 신이 날 것 같다. 우하하. 우하하. 많이 웃게 될 것 같다.













'아비와 어미'에 이어 '일상과 단상'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도, 일상 속 이야기들도 잘 써보고 싶어서요. 항상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온 맘 다해 감사드려요.

제 첫 책이 될 원고를 탈고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인 듯해요. 잘 다듬고, 더 사려 깊게 고치고, 알맞게 배치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책으로 보답하려고 두 번째 힘을 쓰겠습니다.
(탈고하고 탈진했다 다시 기운 차렸어요! 헤헤)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가장 큰 용기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또 쓰겠습니다.


@hjl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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