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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2. 2021

[여행기] 사랑은 책을 타고
- 북스토어 아베끄

[취재/글/사진] [제주 이야기]


사랑은 책을 타고 - 북스토어 아베끄




여행을 떠날 때마다 드는 작은 의문이 하나 있다. 평소엔 손도 대지 않던 책이 왜 여행지에서는 유독 생각나는 것일까? 특히 바닷가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면 책 한 권을 읽으며 나름의 낭만을 즐기고 싶어진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낯선 이와 같은 책을 집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혹은 영화 ‘노팅힐’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잘생긴 서점 주인을 만나는 상상은 여행하는 나의 마음을 두둥실 뜨게 만든다. 금능리에서도 어김없이 로맨틱한 상상에 빠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금능에서 유일한 연애 책방인 아베끄를 찾았다. 



책방은 마을 안쪽 골목길에 요새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이 책방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이라곤 오직 골목 모퉁이에 놓인 작은 이정표뿐이다.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책방의 모습은 마치 수줍음을 잘 타는 소녀 같다. 초록 대문을 지나 푸릇푸릇한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니 길 사이로 책방이 보이기 시작한다. 격자무늬 미닫이문이 달린 책방 입구는 가게라기보다는 작은 사랑방 같아 보인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나를 반겨준다. 집 모양에 맞게 짜 맞춘 가구들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창문에 달린 하늘하늘한 커튼과 감성을 자극하는 턴테이블이 더없이 조화롭다. 주인장이 일본에서 직접 공수했다는 문구제품은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아베끄만의 자랑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방을 둘러보니 마치 사랑에 빠진 문학소녀의 방을 엿보는 느낌마저 든다. 


여기가 연애 책방이긴 하지만 큰 주제는 ‘사랑’이에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 친구를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 말이죠. 그래서 연애 관련 서적도 있지만, 사랑에 관한 다른 책도 많아요. 그 외에 독립출판물도 있는데 요즘엔 손님들이 베스트셀러를 많이 찾으셔서 그것도 갖다 놓고 있어요.


사랑을 테마로 하는 책방이지만 아베끄에서는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한쪽 책장에는 여러 장르 서적이 대중없이 꽂혀있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 사이로 작은 메모지가 간간이 붙어있는 이 별난 책장은 아베끄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책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게 주인장은 ‘당신의 헌 책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책을 기증받아 다시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기증자에게 바닷가 마을 서점의 작은 공간을 빌려주고 책방을 내준다는 의미가 있죠. 그래서 너무 낡아서 읽지 못할 책은 받지 않고요, 기증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나 자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책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려요. 책방의 기본 테마는 연애책방이지만 헌 책장은 장르 구분이 없어요. 그리고 책 밑에는 기증해주신 분의 이름과 수식어를 적어놓아요. 책은 모두 반값 이하로 판매되고 수익금 일부는 기증자 명의로 비글 실험견 구조단체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투숙객을 향한 환영 메시지가 적힌 커다란 칠판도 헌 책장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했다. 언뜻 보면 인테리어용 칠판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칠판은 손잡이가 달린 어엿한 출입문이다. 문 너머는 ‘오! 사랑’이라 불리는 아베끄의 1인용 숙소인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이 공간은 조용히 여행을 다니며 휴식을 취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영업이 끝난 후에는 책방을 온전히 혼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오! 사랑' 내부 사진 (북스토어 아베끄 제공)


한번은 이미 다른 곳에 숙소를 잡은 손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단독 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싶은데 혹시 대실은 안 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돈을 낼 테니 3시간만 방을 이용하게 해달라고요. 짧은 시간이라도 손님이 사용하고 나면 저희는 청소를 다시 해야 하니까 죄송하지만 어렵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대신 마당에서 3시간 동안 책을 읽고 가시더라고요.


숙소 예약에 실패한 손님도 만족하고 돌아갔다는 아베끄의 마당. 나무판자로 바닥을 깔고 그 위에 소파베드를 놓아 숙소 못지않은 안락함을 자랑한다. 나무 그늘 아래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상상을 하니 내가 그토록 원하던 책 한 권의 낭만을 모두 이룬 느낌이 든다. 


여긴 원래 텃밭이었어요. 그런데 책방 공간이 좁다 보니 오신 분들이 책 읽을 공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북 토크 같은 행사도 할 겸 이 공간을 마당으로 만들었어요.


장사가 처음이라는 책방 주인장은 항상 ‘내가 손님이면 어떨까’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원칙에 앞서는 건 바로 ‘금능리 마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책방을 찾기 힘들어하는 손님들이 있지만,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간판은 달고 싶지 않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처음 금능리에서 느꼈던 사랑스러움을 그대로 옮겨 담고자 노력하는 주인장의 책방에는 오늘도 잔잔한 사랑의 기운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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