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노릇에도 눈치와 자본이 필요하다.

by 해림

연분홍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큰손녀가 나풀거리며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섰다.


손녀가 입은 그 옷은 유치원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인 내가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이다. 백화점 매장을 수없이 뱅뱅 돌다,


결국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는 실패가 없다’는 나만의 공식을 믿고 선택한 옷이었다. 손바닥만 한 아이 옷값이 웬만한 어른 옷보다 비싸 카드를 내미는 손이 잠시 떨렸지만, 옷을 보고 환호할 손녀를 생각하며 과감히 결제했다.


아이들 옷에 관해서라면 나에게는 나름의 고집이 있다. 두 딸을 키울 때도 옷만큼은 무조건 백화점에서 구입했다.


금방 자라는 아이들에게 비싼 옷을 사주는 일이 낭비에 가깝다는 걸 알면서도, 되도록 이름 있는 브랜드를 입히려고 애썼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계 형편이 기울자 어머니는 외동딸인 나에게조차 예쁜 원피스 한 벌 사주지 않으셨다. 지독한 절약의 화신이었던 친정어머니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자, 내 안의 결핍이 만들어낸 표출이었다.


박봉의 교사 신분으로 병든 남편을 돌보며 넷이나 되는 자식을 공부시켜야 했던 어머니에겐 아끼는 것이 숙명이었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던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원망이 어린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었다.


큰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의 일이 떠오른다. 아파트 알뜰 장터 행거에 걸린, 조잡한 레이스가 덕지덕지 붙은 분홍 원피스를 보고 딸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추구하던 차분하고 질 좋은 백화점 옷들과는 거리가 멀어 한사코 만류했지만, 딸은 집에 돌아와서도 울고불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다시 내려가 그 옷을 손에 쥐여주었을 때의 그 환한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렇게 분홍 레이스에 푹 빠져 지내던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유치한’ 취향으로부터 독립했다.


그 시절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여 유아복 코너를 몇 바퀴나 더 돌았는지 모른다. 판매원은 유치원생 여자아이라면 이런 옷 한 벌은 꼭 있어야 한다며 하얀 레이스와 핑크빛 망사가 어우러진 공주님 드레스를 적극 권했다.


손녀가 기뻐할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나는 입학식 날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린이집 수료식 날 선물 상자를 내밀고 말았다. 하지만 상자를 열어본 손녀의 반응은 예상외로 미적지근했다.


할머니, 왜 옷에 토끼가 없어?


아차 싶었다. 손녀의 세상은 지금 온통 토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애착 인형부터 이불, 머리핀까지 수백 마리의 토끼에 둘러싸여 사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토끼 한 마리 없는 민무늬 옷을 사 온 센스 없는 사람이 된 셈이었다.


게다가 손녀가 가게 될 유치원은 활동 중심이라 치마 착용을 지양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나의 야심 찬 선물은 그렇게 옷장 구석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 원피스를 입은 손녀가 우리 집에 왔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한껏 고양된 아이는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우아하게 입장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마도 큰딸이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해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며 ‘이 옷이 너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는 감언이설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다행히 손녀도 한번 입어본 뒤로는 그 옷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제는 내가 사준 원피스를 가장 아끼게 되었다고 한다.


딸네 식구가 머물다 간 내내 손녀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말도 예쁘게 하고 귀여운 짓만 골라하는 것을 보니, 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입고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인가 보다.


사실 아이들뿐이랴. 옷 욕심을 버려야 할 나이가 된 나조차 새 옷을 입으면 마음이 설레는데, 어린아이의 마음은 오죽할까.


과거의 큰딸부터 지금의 손녀까지, 분홍 레이스 원피스는 시대를 건너뛰며 제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고작 원피스 하나로 손녀를 이토록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다음 달 카드값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 새삼 깨닫는다.


할머니 노릇 제대로 하려면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눈치와 센스가 먼저라는 것을. 오늘 하루, 손녀의 분홍빛 웃음이 우리 집 거실을 환하게 채웠다.


* 멤버십에 올린 글입니다.

큰딸부부 대신 1박 2일 두 손녀를 돌보고 밤새 끙끙 앓았습니다,

작품 '손녀가 세명입니다' 에서 글 한 편 공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취미가 삶을 잡아먹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