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3
나는 100을 받았으면 100만큼을 주는 사람이다. 받으면 그만큼 돌려줘야한다는 생각은 얼핏보면 맞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먼저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모두 계산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해본 적도 없었다.
3년 전, 아이를 낳았다. 임신 소식을 전하고 출산하기까지 여러 친구들에게 많은 걸 받았다. 주로 신생아부터 3개월까지만 쓰는 것들을 줬다. 쑥쑥 크는 아이의 성장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몇 번 입히지 않은 옷들을 받았다. 묻지 않아도 친구들은 이맘때쯤이면 이게 필요하더라며 택배로 부쳐주고 만나러 나올 때마다 이것저것 싸와서 나눠주었다. 한번은 친구집 옷장에 들어가 현재 아이에게 작아진 사이즈의 옷을 꺼내 큰 봉투에 그대로 담아주었다. 쓰다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은 장난감, 글밥이 작아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을 받았다. 우리 아이는 크는 동안 언니, 오빠들의 물건으로 자랐다.
물건을 준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의 인사와 보답을 하긴 했지만 이 마음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잘 몰랐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A에게 100을 받았으면 A에게 100을 돌려줘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구나. 이제 물건을 돌려줘야 하는 아이들은 다 커버렸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계산하지 않고 물건을 나눠주기로 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알아서 물건을 부쳐주고 필요한 것을 찾아줬던 것처럼 나보다 늦게 출산한 친구들에게 아이의 물건뿐만 아니라 정보도 나누어주었다. 꼭 같은 사람에게 주고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를 낳고서야 깨달았다. 많이 받아보고서야 알았다. 김하나 작가의 <힘빼기 기술>에 이런 글이 있다. 친구들에게 준 거 없이 많은 걸 받을 때 이 이야기가 불현 듯 생각났다.
“세상에, 넌 정말 친절하구나.”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나,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에게서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 이제 내가 너에게 친절을 돌려주는거야. 그러니 하나, 너도 여행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네가 받은 친절을 그 사람에게 돌려줘.”
김하나 <힘빼기의 기술>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변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무슨 이유에선지 투정을 부리며 울고 있는 아이와 그를 달래고 있는 엄마를 마주한 적이 있다. 가방 속에 있던 아이의 젤리를 꺼내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젤리 먹어요?”
그 엄마는 민망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젤리를 건네준다. 아이는 잠시나마 눈물을 그치고 기쁘게 받는다. 작은 건넴 하나로 아이의 엄마에게 휴식이 되었기를. 나도 받아본 적 있는 작은 친절이 다른 엄마에게도 전달이 되었기를. 오늘도 가방 속에 우리 아이가 먹을 젤리 말고도 다른 아이를 위한 젤리를 한 움큼 챙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