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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Feb 18. 2021

반려동물 경제학, 펫코노미의 세계

입양과 양육, 교육과 여가를 아우르는 펫코노미의 경제적, 사회복지적 가치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명... '펫코노미' 시장 쑥쑥" / 2021.02.07. 글로벌이코노믹

"'펫코노미' 시장 폭풍성장... 유통업계 반려동물 마케팅 강화" / 2021.01.15. 뉴데일리

"반려동물 전용 맥주, 미역국까지... 1500만 명 시장 '펫코노미' 급성장 / 2021.01.07. 조선일보

"코로나19 속 펫코노미 시장 쑥쑥... 관련 제품 동반 성장 / 2020.12.30. 뉴시스


최근 펫코노미를 다룬 국내 언론의 기사 제목들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증가하면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 1/4 이상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살고 있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완동물을 지칭하는 펫(Pet)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가 결합한 '펫코노미(Petconomy)'가 21세기 유망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말티즈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나는 유러피언들의 반려동물 배려 문화에 감탄할 때가 많다. 특히 이곳 사람들은 개를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대형마트 근처에서 항상 동물 전용 마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비율로 따지면 우리보다 개를 더 많이 키우고, 정도로 비교하면 우리 못지않게 사랑하는 유럽에서 정작 '펫코노미' 열풍이 기사화되거나 관심을 끈 경우는 없다. 왜일까?


우리 언론의 펫코노미 관련기사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1인 가구와 자녀 독립 후 노후를 보내는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례가 급증했고, 그 결과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 미용과 보험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고기능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려동물 용품의 시장규모가 3조 원을 돌파했고, 향후 성장 추세가 가파를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인다.


하지만 반려동물 대상 고가 상품의 출시와 이를 통한 매출 증대에만 초점이 맞춰진 사회에서는 펫코노미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다. 양육과정에 필요한 용품 판매시장은 펫코노미의 일부에 불과하다. 입양과 양육, 교육과 여가를 포괄하는 거시적인 차원의 펫코노미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이다. 당장의 판매 수익보다 장기적인 직종 확대와 인프라 확장을 추구하는 21세기 펫코노미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자.   




펫코노미의 범주에는 크게 3종류의 하위 산업군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입양과 교육 분야다. 전문 브리더 농장과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양육과 보험 상품이다.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 장난감과 캔넬 등 각종 용품 판매업체와 전문 보험업체들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는 여가와 위탁 사업이다. 반려견과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전용 놀이터, 위탁 돌봄을 수행하는 펫시터와 전용 호텔 등을 들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매느냐가 중요하듯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단계는 입양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들은 펫샵에서 사고파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공인된 전문 브리더 농장에서 입양하거나, 유기견 보호시설에 맡겨진 강아지와 성견을 입양하는 두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 강아지는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의 사회화 과정 이후에야 데리고 올 수 있다.


우리는 비엔나의 유기견 보호시설인 <훈데베트레웅 불루마우>에서 말티즈를 입양했다


고양이와 새, 토끼와 햄스터 등은 가정 내에서만 기르기 때문에 분실 위험이 적고 타인을 해칠 일도 거의 없다. 따라서 입양할 때, 등록을 의무화하여 관리에 유의해야 하는 동물은 개가 유일하다. 현재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등록의무제와 함께 보유세를 징수하고 있다. 고유번호가 적힌 마이크로칩을 개 목에 삽입하고 펫 패스포트를 발급한다. 보유세 재원으로 도로와 공원 곳곳에 배변봉투함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강아지 체내에 이식하는 마이크로칩의 경우, 최근에는 GPS와 연계하여 이동 과정을 식별할 수 있도록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한국도 동물보호법에 따라 2019년부터 의무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마트 IT기술을 활용하여 고성능 마이크로칩을 개발한다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개 입양 전에 주보호자 사전 의무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수의사와 개 교육사 등 관련 직종의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입양 이후에는 개 전문 교육시설에서 단계별 훈련을 받아야 한다. 독일어권에서 훈데슐레라 불리는 전용 교육장은 어질리티 훈련을 포함해 다양한 놀이를 하며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다. 한국에도 개 교육시설이 존재하지만, 양적으로 너무 적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비엔나에는 수십 개의 훈데슐레가 다양한 시설과 가격대로 운영되고 있다. 선택의 폭이 넓고 접근성이 뛰어나기에 대부분의 견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훈데슐레에 방문한다.


진정한 펫코노미 시대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사람과 개가 행복하게 공생하는 문화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아지가 어미와 함께 충분히 교감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호자 역시 개의 속성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교육시설들을 거주지 인근에 확보한다면, 훈련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되는 전문인력들의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  




입양과 교육의 뒤를 잇는 다음 단계가 국내 언론이 그토록 흥분하는 양육과 보험 시장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반려동물 국가인 독일의 경우, 2019년 기준 약 53억 유로(약 7조 1천억 원)로 한국보다 2배 이상 시장규모가 크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 추세에 비해, 우리처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진 않고 있다. 온라인 중심으로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한국에 비해, 일반 매장에서 저렴하고 다양한 제품을 진열해놓은 유럽의 특성 때문이다.


비엔나에서 우리가 즐겨가는 개 용품샵은 프레스납(Fressnapf)이라는 체인점이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반려동물 사료 회사인 프레스납은 유럽 12개 국가에서 1,4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끔은 푸터하우스(das Futterhaus)나 퀠레주(Kölle zoo) 같은 매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특히 퀠레주는 대형견을 위한 생식 사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엔나의 대표적인 반려동물 용품 체인 <프레스납>


이곳 매장에는 로열 캐닌을 필두로 종별, 연령대별 다양한 사료는 기본이고, 동물의  부위를 재료로 만든 영양 간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정용과 산책용으로 구분되어 적당한 크기로 제조된 간식은 애견인들의 필수품이다. 작게 자른 사슴뿔과 커피나무 줄기는 우리 집 말티즈의 최애 상품이기도 하다. 개의 지능을 개발하고 주인과 함께 놀 수 있는 기발한 장난감들은 방문할 때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에 비해 한국은 펫용품과 펫푸드를 주력종목으로 삼고 패션, 가전, 식료품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산책하기 힘든 환경을 고려한 실내 관절매트와 산책 보조기구를 판매하는 헬스업체들도 등장했다. 반려견과 반려묘를 청결하게 관리하기 위해 드라이 겸용 에어샤워가 출시되었고, 털 날림을 방지하는 공기청정기도 판매되고 있다.


요컨대 유럽에서는 반려견의 시각에서 개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반면, 한국은 견주의 입장에서 구매하여 만족감을 느낄만한 용품을 주로 마케팅하고 있다. 반려견과 산책을 자주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유럽에서는 가슴 줄과 야외 놀이기구들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반려견과 주로 실내에서 함께 지내는 우리는 공간의 청결을 강조하는 전자제품과 배변패드가 주력상품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반려견 보유세와 함께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통 집 보험에 특약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산책하면서 사람이나 상대 개를 물어서 상해를 입히면 치료비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피해보상까지 모두 지불해야 한다. 만약 다른 개를 물어 죽이면 그 개 역시 안락사를 당한다. 다만 반려견 건강보험은 선택사항이다. 의료비 지출이 염려되면 다양한 출시 상품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펫코노미를 구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반려견과 함께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고 위탁 돌봄을 수행하는 시설과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비엔나에는 훈데존이라 불리는 개 전용 놀이터가 20개 이상 운영 중이다. 집에서 10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공원과 산책로, 훈데존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에는 6곳의 반려견 놀이터가 있는데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강변 고수부지에 덩그러니 마련되어 있다.


사실 거주지 인근에 잔디공원과 산책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반려견을 떠나 인간의 삶을 위해 가장 소중한 복지정책이다. 비엔나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10년째 1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강력한 사회복지와 함께 자연 친화적으로 도시를 가꾸었기 때문이다. 반면 첨단 스마트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서울은 60위권에 머물고 있다.


집 근처에 언제든 편하게 산책하고 쉴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이 있는 비엔나에는 개가 출입할 수 없는 장소, 가슴 줄을 끌고 다닐 수 있는 장소, 가슴 줄 풀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각각 표시되어 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야 하기에, 비엔나 시민들은 반려견 허용 여부를 반드시 체크한다. 다양한 취향을 지닌 시민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즐겨 방문하는 집 근처 훈데존에는 잔디밭과 나무, 도나우강이 개들을 환영한다.


한국은 반려견 위탁 돌봄을 주로 전용호텔이나 동물병원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은 야외활동이 가능한 보호시설과 개 학교에서 장기간 위탁을 하거나, 펫내니라 불리는 전문 시터가 집에 방문하여 산책하면서 돌봐준다. 베이비시터보다 펫시터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차 이 직종은 매우 전도유망한 분야다. 제대로 된 펫시터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와 전문자격증 시험 등 관련 제도를 지금이라도 세심하게 다듬어야 한다.


조만간 펫코노미의 시장규모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경제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펫코노미는 매우 중요한 공공산업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법제도 속에서 사회적 갈등이 최소화될 수 있다. 펫코노미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고 사람과 반려동물이 행복한 공존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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