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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un 28. 2023

소변이 마려워 4시 20분 미라클모닝이 시작되었다.  

몇 년 동안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던 미라클모닝. 23년 35가지의 목표 중 한 가지를 6개월이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 시작했다. 남들은 비웃겠지만 올해 시작한 것만으로 축배를 들어야 할 참.  사실 시작은 했지만 자신은 없다. 미루었다기보다 시작이 어려웠다. 자신이 없었고 핑계가 많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겨우 내 몸하나 마음대로 못하면서 뭘 하겠나 싶은 생각이 뇌를 지나갔다.  한심했다. 무기력했고 답답했다.  그래도 새벽의 꿀잠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불혹의 나이가 넘어가니 비가 오기 전에 종아리가 아파온다.  예전에는 맥주를 마시고도 아침까지 큰 방광을 자랑했는데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  금요일, 토요일에만 맥주를 먹기로 결심했지만 우습다.  베란다에 버려진 맥주캔들이 그저 비웃을 판이다.  



자면서 몇 번을 화장실을 가고 피곤해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그냥 참고 자면 되잖아~  했을 때 엄마가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니도 내 나이 되봐라 하던 그 말. 



그렇다.  엄마가 말하던 그 나이가 되어보니 정말 새벽에 소변이 자주 마렵다. 맥주를 마시고 자는 날은 더욱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맥주를 이깟 방광 하나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  새벽에 제발 방광아 너도 쉬려무나.  하지만 나이만큼이나 대가리 굵어진 말 안 듣는 방광은 그렇게 새벽마다 나를 깨웠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4시 20분 화장실로 인도했다.   



내가 아닌... 내 남편을 말이다.  나보다 더 큰 방광을 자랑하던 그였다.  더 오래 참을 수 있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방광 역시나 이제 늙었다.  맥주 먹고 자는 날에 그의 방광은 밤새 그를 호출했다. 

결국 4시 20분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움직임에 졸지에 미라클모닝에 성공했다.  




사실 도전은 지난주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4시 30분에 기상하면 오장육부 장기가 비웃을 것 같았다. 

낮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10분씩 10분씩 앞당겨 보기로 했다.  

수요일 6시 20분. 아이 등교 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1시간.  눈을 떠 정수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브런치에 글 하나 쓰고 오늘의 스케줄 다이어리에 작성하니 1시간이 다 지났다.  조금 피곤했지만 시작한 게 어디인가 싶어 뿌듯했다. 



목요일 6시 10분.  10분 앞당겨졌다.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고 추가로 생긴 10분은 영어공부를 했다.  10분이지만 10시간 한 것처럼 뿌듯했다.   고3 야자시간 흐트러짐 없이 공부한 몇 안 되는 날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금요일 5시 50분. 짧아진 방광이 열일하는 남편도 졸지에 일어나 미라클모닝을 함께 했다.  평소 책도 안 보던 사람이 아침시간을 독서로 채웠다.  아침시간 너무 뿌듯했으니 저녁은 축배를 들었다. 맥주 먹는 이유는 수만가지다. 결국 다시 맥주로 가득 채워진 방광과 뿌듯한 미라클모닝의 이야기들이 안주가 되어 늦게까지 떠들었다. 토요일 미라클모닝은 꿈이 되어 사라졌고 토요일 저녁은 친구네를 만나 한잔하니 일요일 아침 역시나 미라클은 무슨 헬모닝이 되었다. 



다시 재정비를 하고 미라클 모닝을 계획했다.  이제는 무조건 5시 30분에 일어나고 평일 맥주를 끊고 10시 전에 잠들기로. 하지만  월요일 내가 했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맥주가 필요했다. 화요일 알람이 꺼진 것인지 맥주 먹고 알람을 끄고 잔 것인지 결국 다시 또 제자리였다.  화요일 속상함에 다시 맥주를 마시고. (이 정도면 알코올 중독인가 싶지만 안 먹는 날도 있다. )   



그리고 오늘 아침 몸을 일으킨 건 바로 방광이었다.   이쯤이면 짧아진 방광에 고마워해야 할까? 미라클모닝의 일등공신이라고?  그럼 내일도 성공을 위해 오늘도 맥주를 먹어야 하는 건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4시 20분 동이 트기 전 일어나 수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 나가서 공복상태로 걸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장마라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저쩌나.  해가 5시 30분에 뜬다는데 조금 더 있다 가도 될까 말까.  전날 맥주랑 함께 먹은 라면으로 배가 더부룩해졌고 가다가 배 아프면 어쩌지? 그럼 화장실 갔다 가자 하며 시간을 끌어본다.

아마도 둘 다 엄청 가기 싫었던 것이다.  말은 공복상태로 2만 보 걷겠다 했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안된단말이다.  하지만 약 40분 두 번의 화장실을 다녀온 후 미라클모닝의 성공을 위해 우린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동네 낮은 동산에 올랐다.  6시도 안 된 시간 산스장은 북새통이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나오신 느낌.  동네 어르신들 인사도 서로서로 하신다.  동네 개도 왔다.   내가 잠들어 있던 시간 산스장은 인기만점이었고 부지런한 어르신이 이리도 많았다.   새벽의 공기는 시원했고 고요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새벽의 아름다움을  소변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낮시간 비록 적응하지 못한 내 비루한 몸둥어리는 좀비상태지만 내일도 우리는 미라클모닝에 도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맥주를 마셔야겠다.  내일도 알람 없이 새벽 4시 20분에 방광알람이 울려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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