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이유는 모른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미라클모닝을 시작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10분씩 비루한 몸뚱어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매일 10분씩 앞당겨 최종적으로 4시 30분에 일어난다를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과 다른 무의식과 게으름은 나를 지배했다. 6시 10분, 6시, 5시 40분으로 이어지다 다시 방탕한 주말을 맛보았고 다시 월요일 목표를 세우고 다시 시작했지만 화요일 새벽 또 다른 내가 알람을 꺼버린 것인지 알람을 씹은 것인지 실패했다. 아니 어설픈 성공이랄까?
몸속의 수많은 내가 미라클모닝을 꿈꾸는 나를 지배한다. 방광문제로 인해 딱 하루 4시 30분 의도치 않게 미라클모닝에 성공했다. 뿌듯함이 컸기에 다음날 또 한 번 4시 30분 기상을 꿈꿨지만 또 다른 나는 그런 부지런한 나를 호락호락 보고만있지 않았다. 결국 알람을 끄게 만들고 실눈을 뜨며 5시라는 타이머를 맞추게 만들었다. 부지런해보겠다는 내 안의 소심한 나는 게으른 또 다른 나에게 찍소리도 못한 것이다.
5시에 다시 알람이 울리고 실눈을 뜨며 아 오늘은 펜션 청소를 해야 하니 육체를 쓰지 말아야겠어. 그냥 자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게으른 내가 나를 지배하며 결국 5시 50분 기상. 미라클모닝이라고 말하기 머쓱한 시간까지 나를 인도했다. 결국 다음날 바로 실패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미라클모닝의 장점을. 자존감이 떨어질 때 우울할 때 삶을 변화시키고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삶을 주체적으로 바뀌고 시간을 컨트롤하며 자존감이 올라간다 했다. 하지만 실패하는 날이 많아지니 겨우 이것도 하나 못하나 싶은 우울감은 더 커져갔다. 자존감이 낮은 나를 위해 시작한 미라클 모닝이 오히려 이것도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 자존감은 더욱 바닥이 되어갔다. 며칠 겨우 도전하고 실망하기에 이르다 할 수 있지만 미라클모닝 정말 장점만 있는 게 맞는 것이냐는 내속의 게으른 내가 따져 묻는다. 내 안의 게으른 나는 미라클모닝의 장점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게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게 맞는 것인가 하는 다양한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미라클모닝 진짜 좋은 거 맞아?
사실 4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보내는 것과 5시 50분의 시간차는 어마무시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작아졌고 다시 급해진 느낌이 들었다. 기존기상시간은 7시 25분. 누워서 실눈을 뜨고 핸드폰을 보는 시간 15분. 정신 차리고 물 마시고 아이 등교준비를 하며 밥을 차리면 7시 45분. 아이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면 8시 30분. 비몽사몽에 아침밥 차리는 건 정말 피곤했다. 하지만 5시 50분에만 일어나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여유롭고 짧지만 책까지 읽을 수 있었다. 4시 30분 기상을 맛보니 아침에 산책에 책 읽기. 글쓰기와 영어공부를 하는 미친것처럼 뿌듯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사실 아침시간 장점은 많았다. 하지만 침대에서 거실로 나오는 그 시간의 고통은 뭐. 심지어 또 다른 내가 알람을 꺼버리는 악당짓을 하기에 4시 30분 미라클모닝은 과연 성공할 수 있는 것이냐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의지가 약했고 (의지가 강했더라면 벌써 술부터 끊었겠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게으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게 과연 미라클모닝의 장점이란 말이더냐.
점점 게으른 나의 가스라이팅이 이어져 가며 미라클모닝 자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쁜 생각과 우울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미라클모닝은 더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걸 아는 미라클긍정파 또 다른 나는 결국 다시 4시 38분에 나를 깨웠다. 그리고 다시 4시 30분 두 번째 미라클모닝을 성공시켰다. 어두컴컴한 동트기 전 거실로 나를 불렀고 물 한잔을 마셨다. 산책을 가야겠다 싶은데 어제까지 그렇게 맑던 날씨가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도 미라클모닝에 성공은 했지만 산책은 실패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알람을 꺼버리는 행동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날씨가 안 도와준다 싶다.
궁금해졌다. 미라클모닝하는 사람들의 아침. 아침운동을 가는 사람들이라면 비가 와도 가는지. 비 오는 날은 휴무인지.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다른 일을 하는 그 사이 멍한 상태는 없는지. 그 사이사이 핸드폰을 보거나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지. 그 시간에 차라리 자는 게 맞지 않은지.
비 오지만 사진과 영상을 남겨두자 싶어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까지 비 오는 걸 감수하고 열었는데.
젠장. 날 반겨주는 건 창틀사이 꿈틀거리는 지네라니. 비 와서 미라클모닝도 망한 것 같고 인증샷찍고 자랑이라도 해보랬더니 새벽부터 만난 게 지네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잠이나 더 자는 건데 말이다.
4시 30분 미라클모닝 과연 내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내일은 비가 그치고 산책을 할 수 있을까? 비가 오면 주말이니까 한 시간이라도 더 자는 게 맞을까?
또 한 번의 주말이 지났다. 회사도 주 5일 근무라 미라클모닝도 그 핑계에 주말은 쉬어본다. 그리고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듯 오늘 다시 한번 4시 38분 알람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주말은 쉬어갔지만 중간중간 실패하며 매번 새롭게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미라클모닝을 시작한 지 벌써 3주의 시작이다. 역시나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천둥번개가 치고 있고 아침 공복 산책은 오늘도 실패지만 괜찮다. 오늘 아침은 일어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