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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Aug 21. 2022

가부키초 남자들은 검정에 빨강에 약간 하양

불야성(1996) 하세 세이슈

[세계 추리문학전집] 32/50


살인, 마약, 강간(남-남, 여-남, 남-여), SM, 근친상간(수직과 수평), 성도착증. 『불야성』에는 사회가 일반적이라 여기지 않는 모든 금기가 묘사된다. 무대는 고농축 욕망에 젖은 향락의 거리 신주쿠 가부키초. 이 '가부키초 동물의 왕국'을 살아가는 모든 등장인물의 심성은 야생의 원초성을 닮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한다. 단 한 가지 제약이 있다. 쾌락은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한에서 추구해야 한다. 다른 집단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을 때 죽음이 돌아온다.



장물아비 젠이치는 지옥도의 일원이자 아웃사이더로서 위험을 헤쳐가며 생을 유지하고 있다. 일찍이 거리의 법칙을 깨닫고 생존만을 목적으로 처절하게 살아왔다.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 태어난 혼혈이라는 한계 때문에 보호받을 곳이 없었다. 아슬아슬 줄타기해오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과거 콤비로 일했으나 상하이계 보스의 측근을 죽이고 도주했던 포악한 남자 우푼춘이 신주쿠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복수에 혈안이 된 위안청구이는 그를 잡아 올 것을 젠이치에게 명령한다. 임무에 실패하면 확실히 죽고 성공해도 죽을 확률이 높다.


이 책의 특징. 선한 인물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젠이치는 온갖 악한들을 이용하면서 다른 악한들을 제압하고 회피한다. 매사에 극도로 냉소적이고 절대 남을 믿지 않는 그가 남긴 어록도 작품이다. "이 세상에는 미치지 않은 쪽이 더 드물다." "이 세상은 뺏는 놈과 뺏기는 놈 둘밖에 없다." "괜히 의미를 부여하지 마." "나 이외의 인간은 모두 타인이야."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 벼랑 끝에 홀로 서서 꺾일 듯 부러질 듯 서바이벌 물수제비를 뜨는 젠이치의 분투가 질주하듯 펼쳐진다. 추천사의 말처럼 끝내준다.


대만, 상하이, 베이징, 홍콩 등 여러 세력 간 분쟁이 소용돌이친다. 암흑세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한 하드보일드 누아르 『불야성』은 순도 100%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색깔은 세 가지다. 검정. 가부키초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깊고 어두운 욕망이다. 욕망의 실현에 동반되는 피와 폭력은 빨강이다. 마지막 하양. 총과 칼을 든 대도시 원시인들은 어떤 규정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잔혹한 한편 약간은 순수하다. 물론 짐승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을 만큼 뒤틀린 정도가 강하긴 하다. 오직 본성의 어둠에만 주목했을 때 나올만한 인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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