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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15. 2021

<디 액트> -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영화,드라마 후기,리뷰/왓챠 시리즈, 드라마, 신작, 실화 추천/결말]


디 액트 (The ACT, 2019)

감독 : 로르 드 끌레르몽-토네르, 스티븐 피에트, 애덤 아킨, 크리스티나 최

출연 : 패트리샤 아퀘트, 조이 킹, 안나소피아 롭, 클로에 세비니, 케일럼 월디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충격 실화’, ‘아픈 줄로만 알았던 한 소녀의 이중생활’, 

날 위해 엄마를 죽여줄래?”

<디 액트>의 홍보영상과 기본 줄거리 설명을 본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이중생활을 숨기고 있던 딸이 엄마를 죽이거나, 최소 죽이려고 시도 정도는 할 것이다.’라고. 몇 개의 멘트만 봐도 어느 정도 그려지는 결말을 가진 작품인데, 왜 8부나 되는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걸까.


<키싱 부스>에 나왔던 그 여배우(조이 킹)가 삭발을 하고,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고? <디 액트>가 공개되었다는 소식과 홍보 영상들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궁금하니 1화만 한번 봐보고, 별로다 싶으면 보지 말아야겠다- 하며 1화를 재생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화까지 모두 달리고 먹먹함과 자유로움, 그 뒤에 따라오는 불쾌감과 이물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동화 속 공주 같은 삶을 꿈꾸는 소녀 집시 로즈 블랜처드.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해온 딸 집시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디디 블랜처드. 사춘기에 접어든 집시는 옆집 언니 레이시처럼 화장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지만, 디디는 집시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집시의 열망이 날로 커질 무렵, 집시는 자신이 아픈 환자가 아니고 그동안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두운 비밀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집시는 홀로서기를 계획하고, 머지않아 엄마에게서 완벽히 벗어날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날 위해서 우리 엄마를 죽여 줄래?


<디 액트>의 주인공은 집시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엄마 디디다. 남편 없이 아픈 딸을 홀로 키워온 디디는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를 통해 집시와 함께 오래 살수 있는, 진짜 우리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디디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딸 집시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집시 또한 웃으며 디디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의 온정이 담긴 분홍색 집, 귀여운 인형이 가득한 아이의 침실, 아프지만 밝은 웃음을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외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아니 오히려 많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해쳐온 ‘기특한 모녀’의 모습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향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집시의 세상은 엄마 디디의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변명으로 가득해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해본 적 없었던 집시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엄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던 본능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관념적으로 분홍색과 가장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파란색의 집에 살고 있는 이웃, 레이시 모녀는 집시 모녀와 다르다. 레이시는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화장을 하고, 운전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난다. 핑크색으로 도배된 집시의 집과는 반대로 레이시 모녀의 집은 파란색이며 공주 드레스, 왕관을 제외하고 ‘어른스러운’장신구를 해본 적 없는 집시와 달리 레이시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남자친구가 준 목걸이를 목에 차고 있다. 레이시의 손길과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화장품이 집시의 얼굴을 스쳐간 날 이후로 집시는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또 바라게 된다.


                                                                        

집시에겐 저밖에 없어요.


디디는 집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 집시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올해의 아동으로 신청하고, 있지도 않은 질환이 있다며 간식조차 먹지 못하게 하고, 사전 설명 없이 집시의 이빨을 뽑는다. ‘내 딸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건지, 집시는 혼자 걸을 수도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휠체어에 앉아 엄마가 갈아 넣어주는 음식을 기다려야 한다.


디디는 작고 약했던 딸이 소녀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될 무렵까지 가스라이팅을 계속한다. “너는 몸이 약하니까”, “너에겐 엄마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우리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선 딸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코스프레를 한다.


그녀는 이제 성인이 된 딸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잘못됐다는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닌 내 손안에 있는 아기.’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매일 샤워를 위해 엄마에게 알몸을 보이고 병원을 잘 다녀온 보상으로 폭신한 인형을 선물받고, 엄마의 품 안에서 잠드는 집시는 언제까지나 디디의 아기다. 아니 아기여야만 한다. 디디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디가 모든 걸 통제하고 집시를 속이려 해도 소녀(Girl)였던 집시가 여자(Women)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남자와 성에 대해 눈을 뜬 집시는 이제 자신을 소녀가 아닌 여자로 인식한다. 얌전하게 올려 입었던 드레스의 어깨춤을 살짝 내리고,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왕자님을 만났다며 결혼을 생각한다. 너무 오래, 강하게 눌려있어서인지 집시의 욕망과 비밀은 빠르게 자라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닉을 만나면서 가속도가 붙고, 엄마를 죽이지 않는 이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집시는 닉과 함께 디디를 살해하게 된다.



1화부터 4화까지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에게 가려져 일부 보이지 않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집시가 본격적으로 비밀을 갖기 시작하고 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5화부터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의 앞으로 나와 온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타이틀의 변화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향한 의지를 갖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집시와 닉이 디디를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순 없으나 디디가 집시를 평생 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건 사실이다. 멀쩡히 걸을 수 있는 아이를 자신의 통제권 아래 놓기 위해 휠체어에 앉혔고 성욕과 식욕, 그리고 사회를 향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호기심마저 ‘하면 안 되는것’이라고 말하며 집시의 모든 행동을 제한한다. 근데 여기서 좀 안타까운 건 디디 또한 자신과 비슷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딸에 대한 집착과 가스라이팅은 당연하게도 대물림되었고, 딸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말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디디는 엠마(디디의 엄마)가 자신의 모성애를 무시하고 몸이 약한 딸 집시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통제 아래 자란 그녀는 몸이 약한 집시를 두고 교도소에 수감된 후부터 더욱 심한 집착 증세를 보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집시는 디디를 알아보지 못했고, 몸이 약해 특별히 관리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집시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디디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가 우리 딸을 빼앗아갈지도 몰라, 몸이 약한 딸이 언제 다칠지 몰라. 이 두 가지 불안감은 디디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디디는 집시를 휠체어에 앉히고 병든 엄마에게 내성이 생길 걸 알면서도 새로운 진통제를 쥐여준다. 그리고 디디의 집착과 폭력 아래 자라온 집시는 디디의 등에 꽂을 칼을 산다. 하지만 디디가 죽고도 집시는 디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시는 디디의 환영을 보고, 단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디디의 말처럼 아이스크림 금지 표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닉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엄마가 닉에게 먹을 것을 구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모든 행동과 가치관은 디디가 남긴 흔적이었다.



엔딩 장면에서 ‘집시는 복역을 끝마치고 가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자마자 나는 이 끔찍한 집착의 고리가 또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내가 그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건 아닐까? 집시가 피해자임은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 집착과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휠체어에 갇혀있었어요.” 집시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갇혀있었고 엄마의 등에 칼을 꽂은 그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그가 나를 구했다고 말이다.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엄마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하나의 인격체,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다.



<디 액트>의 결말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디디가 죽고 나면 속이 시원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집시를 응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 폭력과 집착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조금 소름 끼치게도 디디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드디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사이다 ~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대물림의 순간, 그리고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행해지는 지독한 폭력. 이 모든 걸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폭력뿐이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깝고,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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