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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ug 25. 2021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붕괴된 세상과..'

[영화 후기,리뷰/왓챠, 일본, 우울한 영화 추천/결말 해석]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개봉일 : 2005.06.23 (한국 기준)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아오이 유우, 이토 아유미, 오오사와 타카오


붕괴된 세상과 쏟아져내리는 절망


* 학교 폭력과 관련된 장면들이 많이 나오니 상처가 있거나 거부감이 심한 분들은 주의하세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의 아름답지만 기괴하고 완벽히 아름답고 우울한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작품 <러브레터>처럼 아른아른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화이트 이와이와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지만 사실은 눅눅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그려내는 블랙 이와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블랙 이와이 중 가장 완벽하게 우울한 작품으로 분류되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145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어둡고 괴로운 순간으로 가득 채워놓은,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의 늪 같은 이 영화 앞에서 나는 아주 무력하게 몸을 웅크렸다. 우울함에 대항력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거의 하룻밤을 꼬박 이 작품의 공기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했었다.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를 좋아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견디기 힘들지만 견뎌야만 하는 인생의 한순간을 그리고 있다. 갑자기 탈선해버린 절친 호시노는 갑자기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변하고, 유이치는 호시노가 휘두르는 폭력에 휘둘린다. 아프고 슬프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유이치를 위로하는 건 릴리 슈슈의 노래와 그녀가 만들어둔 세계뿐이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기에 유이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세계에 기대어 하루를 이겨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에 관심 없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나 심한 폭력을 휘두르는데 어른들은 뭐 하는 거야?’라는 질문과 한탄이 절로 나올 만큼 그들은 무관심하다.


나 또한 유이치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유이치가 당했던 폭력과는 조금 다르고,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폭력 앞에서 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었던 중학생 시절, 유이치의 ‘릴리 슈슈’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가수와 그들의 세계가 있었다.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음악과 단단한 세계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나는 아주 아팠던 그 시기를 ‘지나간 과거’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어른이 되었는데, 유이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확신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유이치가 릴리 슈슈라는 가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에게 의지하며 희망과 절망을 모두 겪었던 그 시절의 기록이다. 도를 넘은 학교폭력과 외로움, 무력함, 우울함, 그나마 조금 쌓아올렸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절망감.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시간은 보는 이마저도 무력하게 만든다. 다른 아이들처럼 설레는 첫사랑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 기록을 남기고, 절친한 친구와 같은 밤하늘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보통의 소년이었던 유이치가 견뎌야 했던 슬픔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세상도 잘 모르는 어린애가 슬프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이가 어리다 해도 사는 게 버거운 순간이 있다. 어른이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 아이가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은 분명 다르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의 세상은 다소 좁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소년의 어린 날은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작은 감정의 파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린 소년의 마음을 자비 없이 푹푹 쑤셔대는 세상에서 소년은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리며 위로를 받는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 자리에서 견뎌내는 시간들. 유이치가 보여준 그의 완전하게 우울하고 축축한 시간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이 이렇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 날이 올 줄은 감히 상상치도 못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시놉시스


'릴리 슈슈'의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 그러나 그의 일상은 힘들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 호시노가 어느날 반 아이들의 리더가 되어 자신을 이지메 시키고 첫사랑 쿠노 역시 이지메를 당하지만 그녀를 도와주기에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소년의 유일한 안식처는 오로지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릴리 슈슈’의 노래 뿐... 그러나 현실은 노래로 감출 만큼 만만하지 않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내 고통은 에테르로 치료된다.


릴리 슈슈가 구축한 세계 에테르. 그곳은 평온함과 영원함이 보장된 장소다. 릴리 슈슈는 에테르를 음악으로 만든 인물로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다. 유이치는 첫사랑 쿠노를 통해 릴리슈슈를 알게 되고, 항상 옆에 있던 쿠노와 친구들의 자리가 비었을 때쯤, 릴리슈슈의 세계에 빠져든 유이치는 릴리슈슈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된다.


막 중학생이 된 1999년. 유이치는 신입생 대표로 답사를 읽은, 1등 출신이라고 소문난 모범생 호시노와 친구가 된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생겼다. 외계인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완벽한 친구 호시노, 집안마저 잘살고 엄마도 말도 안 되게 예쁜 호시노. 중학교에 오며 항상 옆에 있던 그녀(쿠노)의 자리는 비게 되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어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1999년 9월을 기점으로 유이치와 친구들의 평온한 에테르 같은 세상은 멸망한다. 호시노의 세상이 무너진 날을 기점으로 말이다.



2000년은 유이치가 14살이 된 해이자 그의 잿빛 시대가 시작된 해다.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빠를 따라 성을 바꿔야 했고, 통칭 ‘완벽하고 착한 부잣집 아들’이었던 절친 호시노가 갑작스러운 방황을 시작하며 유이치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그 해. 유이치는 언제나와 같이 행동했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렇게 어두워져있었다.


호시노의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을 잃고, 가정이 흔들리자 호시노는 탈선과 폭력을 선택한다. 호시노 또한 초등학생 시절 왕따를 당한 상처가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과 아픔이 기폭제가 된 것인지 그는 동급생을 괴롭히는 일진 학생을 응징하며 그 순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완벽한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 벌거벗은 일진이 호시노의 발밑에서 기고 있는 장면이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항상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며 모두가 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틀에 맞춰 생활하려 했던 아이 호시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를 모르는, 남이 맞춘 세상을 폭파시키기에 이른다. 호시노가 유이치와 피해자들에게 행한 폭력과 잔혹한 행동들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으나, 견디는 것 대신 자신의 세상과 다른 이를 격렬하게 깨부수는 걸 선택한 그의 내면에 쌓인 부담감과 분노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행동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화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것 같다는 불호평을 내놓는 관객들도 일부 보였는데 그건 아마 영화 전반에 깔리는 아름다운 드뷔시의 음악 때문이 아닐까 싶다. 쿠노가 좋아하던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들과 화면 안에 가득 차는 따스한 햇빛.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에 주로 쓰일만한 장치들을 잔인한 폭력이 행해지는 순간에 집어넣은 건 이 두 가지의 대립을 통해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비치는 순간이라 해서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깔린다고 해서 모두 우아한 순간은 아니다. 유이치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저 끌려다니는 것 뿐이다.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유이치와 쿠노, 츠다는 그렇게 아픔을 속절없이 삼켜야만 했다.


                                                                       

죽으려 마음먹었다.


유이치는 죽음을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가정의 변화, 호시노의 직간접적인 괴롭힘. 그리고 첫사랑 쿠노가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유이치는 내 세상을 모두 지탱하고 있는 릴리 슈슈의 라이브 현장에서 죽기로 결심한다. 에테르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릴리슈슈가 있는 공간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면 왠지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호시노는 마지막까지 유이치를 괴롭게 한다. 호시노는 유이치의 표를 뺏어 쓰레기 던지듯 길바닥에 내버리고 혼자 공연장에 들어간다. 유이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호시노를 쳐다보고, 그가 들고 있는 파란 사과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릴리슈슈와 릴리슈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유이치의 마음을 위로해줬던 그의 팬. 그게 바로 호시노였던 것이다. 유이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공연장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사람이 몰린 틈을 타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우리만의 표식이었던 파란 사과에 꽂힌 피 묻은 칼. 유이치가 처음으로 포효하는 모습을 보이며 호시노를 찌른 그날, 유이치의 에테르는 무너졌고 더 이상 고결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뀐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간 쌓였던 분노와 울음을 토해내는 유이치의 모습이 다소 낯설고 무섭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무너진 세상을 돌파하기 위해 유이치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이것뿐이었던 현실이 아릴만큼 슬프다.



유이치는 잿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새로운 해가 왔고 새로운 머리색을 하고 다른 학년이 되어 다시 등교를 한다. 그리고 첫사랑 쿠노를 만난다. 심한 왕따와 성폭력까지 겪어야 했던 쿠노는 나의 걱정과 다르게 아주 강하게 살아남았다.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꿋꿋하게 그 아프고 우울한 시기를 견뎌냈다. 여전히 드뷔시를 좋아하는 쿠노는 지금도 릴리슈슈를 좋아할까?


유이치가 호시노를 찌른 날 이후로 릴리슈슈는 불길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에서 릴리슈슈는 결국 불행, 우울 또는 마지막을 뜻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이치를 통해 릴리슈슈의 음악을 접하게 된 츠다는 이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날고 싶다’며 자살을 선택했고, 직접 행동에 옮기진 않았지만 유이치도 릴리 슈슈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날, 자살을 결심했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기운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유이치는 호시노를 죽인다. 누군가에게 현실을 견디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던 릴리 슈슈의 음악은 한순간에 그들이 마지막을 결심하게 만드는, 또는 마지막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쿠노는 아마 이제 더 이상 릴리슈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환상으로 가득한 에테르에 기대기보단 묵묵히 현실을 견디며 살아남은 쿠노가 아직도 릴리슈슈를 좋아하는진 정확하지 않지만 그녀가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희망적이고 강한 인물임은 알 수 있다. 어쩌면 쿠노의 생존은 작은 희망일 수도 있겠다. 쿠노가 좋아하는 드뷔시의 곡이 깔린 마지막 장면, 이전과 다른 머리 스타일을 한 쿠노와 유이치가 마주 보고 서있다. 항상 서로의 옆에 서있던 두 사람이 잿빛 세상을 무너트리고 재회한다. 잿빛을 거둬낸 이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잿빛으로 물든 기억을 이겨낼 수 있을진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이제껏 보아온 순간에 비해 너무 평화롭고 따뜻해서, 나는 그들이 새로운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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