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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06. 2021

최선의 삶 -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영화 후기,리뷰/신작, 한국, 독립 영화 추천/결말 해석]


최선의 삶 (Snowball, 2021)

개봉일 :2021.09.01

감독 : 이우정

출연 : 방민아, 심달기, 한성민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많은 걸 알고 있는 나이도 순진한 나이도 아닌 애매한 주변인으로 불리는 그 시절, 사춘기. 우린 이제 클 만큼 컸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와장창 부서지고 마는 연약한 그 시절. <최선의 삶>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우린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어른이라 생각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다. 세상의 전부라고 느꼈던 친구들과 함께 모든 걸 차가운 길바닥에 내던질 수 있었던 무모한 그때. 소녀들은 나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최선을 다한 결과는 왜 항상 최상이 되지 않는 걸까?



<최선의 삶>의 주인공 강이, 소영, 아람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각자 다른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성격도, 가정 환경도, 학업성취도도 퍽 다르다. 하지만 강이, 소영, 아람은 믿고 있다. 우리의 우정은 견고하고 우리는 한 덩어리와 같은 사이라고. 강이, 소영, 아람은 세 사람 사이의 우정을 믿고 우리가 원하는 자유를 찾자며 어른들의 보호를 벗어나 길거리로 향한다. 아무런 준비도 능력도 없었던 소녀들은 현실에 부딪히며 주저앉고 충격으로 깨어진 마음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안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은 이내 거친 행동으로 변하고, 이전부터 은은하게 존재해왔던 세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는 한층 더 견고해진다.



미성년자인 주인공들은 정해진 가정으로, 다니는 학교로 당연하게 돌아가야 했다. 그들을 밀어붙이는 가출, 반항, 왕따, 정체성의 혼란, 가정 폭력과 같은 고민과 문제들에 시선을 주는 인물은 없다. <최선의 삶>은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조금씩 뒤틀려온 감정들과 미묘하게 마음을 긁어대던 문제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던 뜨거운 공기가 가득했던 새벽.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하고 날카로운 해결법으로 우리들의 관계를 도려내고 울음을 토하던 밤까지의 기록이다. 우리 셋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 최선을 다했지만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허탈한 그 순간. <최선의 삶>은 보는 이의 마음을 손에 꽉 쥐고 뒤흔들고 끝내 찢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걸 재끼고 무작정 달려가는 강이, 소영, 아람의 걸음이 그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하필 또 이들은 세명. 홀수 중에서도 가장 불안하게 느껴지는, 한번 소외되면 다시 흡수될 다른 집단을 찾을 수도 없는 수, 셋이라니. 세 명의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격동적인 마음의 변화와 그들 사이의 묘한 위계질서, 분노, 불안감 등을 필터 없이 거칠게 표현해낸 이 영화를 보며 윤성현 감독님의 2010년작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3명의 친구,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던 세상과 서로를 날카롭게 쑤셔댔던 말들. 이 두 영화는 어딘가 닮아있다. 주인공이 소녀인지, 소년인지만 다를 뿐이지.


내 앞만 바라보기에도 벅차 나와 다른 방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친구는 돌아볼 틈 따위는 없었던, 이제 단단해졌다 생각했지만 충격 한 번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던 그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가 최고가 되진 못했다.


<최선의 삶>은 이젠 완전한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갖게 된 방민아 배우의 새로운 얼굴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심달기, 한성민 배우의 합, 일명 강.소.아의 케미와 망설이거나 뜸 들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감정선을 연출해낸 이우정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파괴적인 작품이었다.




최선의 삶 시놉시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열여덟 ‘강이’, ‘아람’, ‘소영’.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우리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예쁘고 똑똑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소영과 사고 치는 것 외에 눈에 크게 띄지 않았던 강이와 아람. 세 사람은 항상 한 덩어리처럼 뭉쳐 다녔고 선생님들은 그런 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갖춘 똑똑한 소영만큼은 좋아했다. 소영은 어른들의 눈뿐만이 아닌 강이의 눈에도 멋진 사람이었다. 강이는 예쁘고 똑똑한 소영을 존중하고 좋아한다. 소영이 밑도 끝도 없이 짜증을 부려도 강이는 소영의 입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을 떠 넣어주고 골목 유일의 가로등 전구를 박살 내면서까지 그의 짜증을 받아낸다.



강이, 소영, 아람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소영과 아람의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강이가 가장 밑에서 두 사람을 받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집을 나가자”고 먼저 운을 떼던 건 소영과 아람이고 강이는 답답하다고 느끼던 찰나, 두 사람의 결정에 함께한다. 그리고 소영과 아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등을 토닥이는 것 또한 강이다. 매일같이 오르는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하굣길.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관심과 사랑을 한주먹씩 밀어 넣는 부모님이 있는 집. 분명 사랑을 받고 있긴 한데 강이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를 방패 삼아 크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뱉은 악이 소음에 완전히 묻혀 자신의 귀에도, 누군가의 귀에도 전혀 들리지 않으니 시원하기보단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강이는 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 대신, 시끄러운 소음 아래서 소리 지르는 걸 택한 걸까.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소영은 세 사람 중 가장 독단적인 인물이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데 연기학원을 끊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덜컥 가출을 감행한 철없는 이 소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강이의 손을 잡고는 이내 강하게 뿌리친다. 그리고 부모님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향해 홀로 걸어간다. 함께했던 강이와 아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말이다.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는 게 중요했고, 내 자존심을 꺾을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가장 최우선이었던 소영. 나는 그가 이기적이면서도 현명하다 싶을 만큼 계산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람은 강.소.아라는 집단의 중심 같은 인물이다. 함께 차를 탈 때, 사진을 찍을 때. 아람은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중앙에 위치한다. 아람이 이 집단을 이끈다는 의미보다는 강이와 소영을 이어주고 이 집단의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세 사람이 집을 구하고 아람은 금방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아람이 자리를 비우자 강이와 소영은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이내 엇나가는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소영과 묵묵히 받아내는 강이 사이에서 가벼운 농담으로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아람. 알 수 없는 표정과 앞일 따위 걱정하지 않고 빠르게 휩쓸려내려가는 아람을 보며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싶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해 걱정 없는 척 과장된 감정을 내보이던 아람의 행동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조금은 가난하지만 딸을 아끼려 노력하는 부모님 밑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자라온 강이. (가출을 통해 얻어낸 것이긴 하지만) 딸의 의사를 들어줄 수 있는 이성과 그만한 능력이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소영. 경제적으론 모자라지 않지만 툭하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밑에서 자란 아람.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처럼 상처 입고 버려진 것들을 모두 주워 담는 아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영과 연기를 배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맞을 때의 느낌을 체험하게 된 소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람. 이해하기보단 미워하기를 택한 소영이 강이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람이 강이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쳐다보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자 강이는 혼자 남게 된다.



소영은 연기를 배워 자신의 최선이라 생각하는 CF 촬영을 해냈고, 아람은 길거리에 버려진 슬픈 것들을 주워 위로하는 것에 몰두한다. 강이도 나름의 노력을 했고 강이의 부모님은 강이를 위해 기도하고 강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강이의 삶에서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강이가 할 수 있는 건 열대야가 기승인 밤, “덥다”고 말하며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퍼먹는 것, 다른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웃는 것처럼 앞에 놓인 상황에 순응하고 섞여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강이는 둘둘만 옷 사이에 나를 지키기 위한 칼을 품고 다니기 시작하고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아람과의 사이를 생채로 도려내는 더 나쁜 선택을 하고 만다. 최선의 선택이었던 그것의 결과는 최상이 아니었지만 모든 건 각자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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