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Oct 01. 2021

엘리시움 - '닿을 수 없는 두 개의 행성을 구하라'

[영화 후기,리뷰/왓챠, SF, 닐 블롬캠프 영화 추천/결말 해석]


                                                                              

엘리시움 (Elysium, 2013)

개봉일 : 2013.08.29 (한국 기준)

감독 : 닐 블롬캠프

출연 : 맷 데이먼, 조디 포스터, 샬토 코플리, 앨리스 브라가

                                                                        

닿을 수 없는 두 개의 행성을 구하라


손꼽히는 SF 명작 <디스트릭트9>의 ‘닐 블롬캠프’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엘리시움>. 많은 관객들은 디스트릭트9의 결말을 보고 속편을 기대했으나 닐 블롬캠프 감독은 속편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 <엘리시움>을 발표했다. 속편을 기대했던 혹자들은 <엘리시움>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디스트릭트9과 다른 느낌이라 실망했다.’보다는 ‘디스트릭트9과는 다른 맛을 봤다’고 표현하고 싶다. <엘리시움>은 지구에 머물던 스케일을 우주를 향해 더 확장했고, 액션 또한 시원하고 대범해졌다. <디스트릭트9>에 비하면 감정을 건드는 힘은 조금 약해졌지만 액션 영화로서의 새로운 힘이 더해졌다.



어릴 땐 'SF‘를 그저 상상 속 이야기를 풀어낸 화려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기보단 시각적 즐거움을 중시했고,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SF 영화를 즐겨 본 편은 아니었기에 이 영화를 처음 만났던 날은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누군가의 공상이 새로운 무게로 다가왔고, 그만큼 많은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엘리시움>을 보며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던 영화 <승리호>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황폐화된 지구와 약자들을 남기고 매정하게 지구를 떠나버린 재력가들. 대부분의 것들이 망가진 지구와 항상 푸르른 인공 행성. 뿌리는 같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승리호>는 인물들의 다른 삶 속에서 충돌하는 상류층의 욕망과 주인공들의 흔들리지 않는 인간다움에 집중했고, <엘리시움>은 의료기술의 양극화와 우정, 인류애에 집중한다.



부잣집 도련님이어도 가기 힘든 ’엘리시움‘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맥스와 프레이는 시설에서 함께 자란 오래된 친구다. 프레이는 엘리시움을 보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 가는 곳‘이라 칭하고 맥스는 프레이를 꼭 엘리시움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다.


똑같이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지만, 사회엔 엄연한 계급이 존재한다. 현 사회에서도 계급을 무시할 수 없지만, <엘리시움>에선 그 계급의 차이가 황폐화된 땅과 푸릇푸릇한 우주 행성의 거리만큼 더욱 크게 멀어져있다.


프레이가 말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자가 아닌, 특별한 집안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황무지에서 후퇴한 의료 기술로 겨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평생을 목숨 걸고 일해도 엘리시움 티켓 한 장을 살 수 없는 사람들. 맥스와 프레이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언젠간 엘리시움에 가겠다.‘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맥스는 마음을 다잡고 취직한 공장에서 무리한 작업 지시로 인해 방사능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마지막 희망인 엘리시움으로 가기 위해 위험한 일을 시작한다. 맥스는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엘리시움으로 갈 마음을 먹지만 차후엔 뿌리인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갈등한다.


지구와 엘리시움의 거리는 걸어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과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그만큼 멀다. 아래에 있는 지구에서 위를 봐도 아름답고 위에서 아래를 봐도 아름답지만 각 행성의 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엘리시움 시놉시스


하나의 인류, 두 개의 세상

 버려진 '지구'와 선택받은 1% 세상 '엘리시움'

 최후의 시간 5일. 모든 것이 그에게 달렸다!

 인류의미래가 걸린 최후의 생존 전쟁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지구와 엘리시움으로 나눠진 각자 다른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2154년의 로스앤젤레스. 지구엔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지구는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의 일은 로봇들이 맡고 있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로봇들이 맡지 않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병에 걸려 죽느니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아보겠다며 엘리시움으로 향하지만 엘리시움의 장관은 민간인들이 탄 우주선을 미사일로 격추하며 불법 이민자를 잡아들여 처리하라고 명한다. 장관은 ’불법 이민자를 지구로 추방하라‘고 하는데, 엘리시움에서 바라보는 지구란 자신들이 자고 나란 행성이 아닌 뒤떨어진, ’추방당하는 장소‘밖에 되지 않는듯하다.



장관이 ’불법 이민자‘라고 칭하는 지구 사람들은 딸의 부러진 팔을 고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엘리시움에 접근하고, 엘리시움 사람들은 집마다 있는 의료기기를 통해 매일 간편하게 치료를 받는다. 엘리시움의 기술은 맥스의 방사능 피폭도, 폭탄으로 날아가버린 얼굴도 재생시킬 수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경관 로봇들에게 맞아 팔이 부러진 맥스가 병원에 갔을 때, 지구의 병원은 엘리시움과 다르게 열악한 상황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프레이는 백혈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입원을 연장하려고 하나 동료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여긴 엘리시움이 아니야.”라는 의사의 한마디에서 깊은 체념이 배어 나온다. 병에 걸리면 치료와 완치를 바라는 게 아닌 그저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하는 곳. 그게 바로 <엘리시움>속 지구다.



맥스와 스파이더는 맥스의 머리에 엘리시움의 프로토콜을 복사해 ’왕국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 장관의 쿠데타 욕망을 위해 생성된 프로토콜은 맥스의 희생을 비료 삼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열쇠가 된다. 엘리시움의 정권을 뒤엎을 예정이었던 코드는 한 사람에 의해 단단한 계급 사회의 벽을 부수는 바윗돌이 된다. 큰 힘을 가졌을 땐 그것을 선하게 사용해야 하거늘, 끝없이 욕심을 부리던 장관은 크루거의 칼에 찔려 사망하고, 스스로 엘리시움의 벽을 무너트릴 열쇠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맥스는 작은 동물 미어캣처럼 연약한 지구 사람들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프레이의 딸 마틸다가 맥스에게 해줬던 작은 동물 미어캣과 하마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생체 신호가 감지됐음에도 바로 꺼지지 않던 기계와 아무런 감정 없이 약을 토해내던 로봇이 이제는 모두를 ’엘리시움의 주인‘이라고 칭하며 그들을 지킨다. 지구와 엘리시움의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지만, 이제 두 행성 간 삶의 간극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엘리시움의 장관처럼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있을지도 모르는 일부 엘리시움의 시민들이 지구의 시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긴 하겠지만,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상해 보고 싶다. 지구에서 엘리시움을 봐도, 엘리시움에서 지구를 봐도 아름다운 풍경만 보이는 시대가 오기를, 현 사회도 차가운 차별 대신 서로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매거진의 이전글 코다 - '사랑이란 마음속 울림을 이해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