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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13. 2021

스틸워터 -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조각들'

[영화 후기,리뷰/신작, 범죄, 스릴러, 맷 데이먼 영화 추천/결말해석]

                                                                             

스틸워터 (Stillwater, 2021)

개봉일 : 2021.10.06 (한국 기준)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맷 데이먼, 아비게일 브레스린, 카일 코탄, 디애너 듀나건, 로버트 피터즈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올 10월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두근거리는 달이다. <듄>, <베놈>같은 많은 영화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와 함께 사랑하는 배우 맷 데이먼의 영화가 2편이나 개봉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린나이트>를 보며 시대극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쭈욱 기다렸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그리고 지금 후기를 쓸 이 영화 <스틸워터>가 2주의 텀을 두고 연달아 개봉하다니. 거의 한 달 내내 영화관에서 맷 데이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득 담고, <포드 V페라리>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맷 데이먼을 만났다.



<스틸워터>는 함께 사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고향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교도소에 갇힌 딸의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실제로 유학 중 살인 혐의를 받아 4년간 복역했던 아만다 녹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이 영화는 추리 영화이자 주름진 가족 영화, 그리고 아버지로서, 온전한 나로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다.


                                                                             

진실을 쫓는 발걸음


마르세유라는 여유롭고 맑은 도시 속에 똑-떨어진,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빌 앨리슨은 딸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를 읽고, 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와 차가운 시선들에 맨몸으로 부딪힌다. 견고하게 짜여져있던 ‘유죄’라는 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듯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건의 조각들이 빌의 머리위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내 딸은 무죄일 거라고 믿었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교도소 안에 갇힌 딸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아버지 빌은 이제야 정말 아버지다운 일을 할 시점이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붙잡는다.


                                                                             

완전한 진실보단 나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스틸워터>는 앨리슨이 연루된 사건의 진실과 분명한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빌이 바라는 평화. 즉, 이 부녀 사이의 진전과 아버지의 원초적인 부성애에 집중한다.

고강도의 육체 노동직을 소화하며 어느새 거친 얼굴을 갖게 된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딸. 고된 하루를 다시 버티기 위해 손대선 안될 영역에 기댔던 아버지와 그런 그를 증오했던 딸.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딸. 

앨리슨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미국에 있는 스틸워터(고향)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각자의 이유로 발이 묶인 채 긴 시간을 보낸다. 빌은 지금껏 무력하게 딸의 죄를 함께 지고 살아왔지만, 이번엔 정말 딸을 구해내겠다고 이제는 무능력하고 믿지 못할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딸과 우리를 위해서라면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가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맷 데이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 빌


주인공 ‘빌’을 맡은 맷 데이먼의 우직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거칠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지 않게 깊은 감정선을 파내려 가는 그의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멋진 목소리에 완전히 홀려버렸던 시간이었다. 

130여 분의 러닝타임과 앨리슨의 사건,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마야와의 에피소드를 숭덩숭덩 썰어놓은 이야기의 흐름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는 후기도 있었지만, 빌의 심경 변화와 앨리슨의 사건을 함께 풀어가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앨리슨의 사건만을 다뤘다면 ‘빌’이라는 캐릭터가 이만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와 후회를 잔뜩 쌓은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 밖엔 믿을 사람이 없는 딸. 그리고 낯선 나라에 떨어진 두 사람의 조력자가 되는 소중한 인연들과 이방인을 차갑게 비웃는 차별적인 시선들.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거리를 넓히고 싶었던 부녀의 틀어진 사이, 잘못된 사회의 차별과 시선, 잘못된 사랑과 극단적인 선택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사건의 전말, 빌과 앨리슨이 앞서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함께 풀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힘차게 파보길 추천한다.




스틸워터 시놉시스


진실을 파고들수록, 비밀은 깊어진다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조금 늦은 부성애


빌은 아내가 자살한 후 일과 술, 약에 홀려 긴 세월을 보낸다. 앨리슨을 보살펴준 건 빌의 어머니 샤론이었고, 그는 약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경찰에 한 번 잡혀갔던, 그리 아름답지 못한 과거도 갖고 있다. 빌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자 샤론과 앨리슨은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냐고 묻는다. 지금껏 빌이 이들에게 어떤 가족이었는지, 이 대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빌도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술을 끊고,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 마르세유까지 앨리슨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딸의 진심을 아주 직관적으로 듣게 된다. 그는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하지만 계속 꼬여버리는 사건 앞에서 짧은 절망을 느낀다. 하지만 아버지를 제외하면 기댈 곳이 없는 딸 앨리슨과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는 마야를 보살피며 조금 늦게 발현된 부성애를 불태운다. 빌은 앨리슨이 좋아하는 색과 옷 스타일 같은 작은 정보 하나조차 모르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가 늦게나마 태워낸 부성애는 거짓이 아니었다.


                                                                             

간절함에 밀려 틀어진 방향성


‘어떤 방식을 써서든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게 빌의 최종적인 목표다. 빌은 버지니의 도움을 받아 파티가 있었던 바의 사장과 전직 경찰을 만나고, 위험한 동네인 칼리스테를 휘젓는다. 그리고 끝내 범인으로 추정되는 아킴을 지하실에 가두게 된다.

버지니는 아무 아랍인이나 잡아넣으라는 바 사장을 보고는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몸서리를 치며 빌과 잠깐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그 상황에서도 빌은 ”그저 내 딸을 위한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빌이 칼리스테에서 좌절을 한 번 맛보고 버지니와 마야의 집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결과만을 향해 돌진하던 걸음을 좀 늦췄나 싶었는데, 그는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아킴을 보자마자 다시 방향성을 꺾어 맹렬한 추적을 시작한다.

온전한 해결법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앨리슨의 무죄는 입증되었지만 잘못된 방향성을 선택한 빌은 다시 하나의 사랑을 잃고 만다. (사실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니 그의 선택을 질타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 자식은 지켰으니까..?)


                                                                              

가난한 학생과 부자 학생


<스틸워터>는 딸의 무죄를 향해 달리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중심에 두고, 사건의 일부 조건들을 겉으로 떼어내 사회에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적 행동들과 편견들을 이야기한다. 

아킴이 살고 있는 동네 칼리스테는 마약거래가 빈번히 일어나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아킴은 조금 포장하자면 거친 동네, 나쁘게 말하자면 버려진 동네에 가까운 그곳에서 살아온 아랍인 청년이다. 아킴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바의 사장은 아랍인 학생들을 보고 원숭이 놈들이라 칭하고, 누구를 감옥에 잡아넣든 어차피 언젠가 죄를 지었을 것이라며 차별적인 말들을 뱉어낸다.



앨리슨의 주변인이었던 교수 또한 앨리슨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살아온, 교육받은 학생이라 생각하고 앨리슨의 연인이었던 아랍계 학생 리나를 가난한 학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이라 단정 짓는다. 

빌은 시추기의 등장으로 당장 밥벌이가 어려워진 상황에 처해있으며, 앨리슨이 어렸을 때 또한 항상 땅굴을 파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왔다. 미국 출신 백인이라는 딱지에 따라붙는 카우보이라는 조롱과 혼자 잘 살아온 이기적인 놈이라는 편견은 칼리스테에 방문한 빌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여러 인물들의 대사 속에 은근하게 녹아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요소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꽤나 많았다.


                                                                        

진실은 없어요. 이야기뿐이죠.


결국 이 사건의 마무리에 진실은 없이 떠도는 이야기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리나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앨리슨이 죽인 건 아니다. 앨리슨은 벗어나고 싶다고만 이야기했지 리나를 살해한 적은 없다. 이 말들은 진실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진실의 조각들은 조용히 묻혀버린다.

뒤이어 어떤 이의 흔적이 나왔다. 앨리슨은 진범이 아니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뿐.


스틸워터로 돌아온 빌은 스틸워터의 모든 게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사실 변한 건 없는데, 그의 눈엔 모든 게 달라 보이는거다. 묻혀있던 진실이 전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앨리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얼핏 모든 게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처럼 말이다. 

바뀐 건 없지만 바뀌어버린 사건. 무거운 사건을 겨우 들어옮겨 맞이한 이 결말이 마냥 시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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