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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Nov 09. 2021

이터널스 - 꾹꾹 눌러 담다 넘쳐버린 7000년의 시간

[영화 후기,리뷰/개봉작, 상영작, 마블, 히어로 영화 추천/결말 해석]

         

이터널스 (Eternals, 2021)

개봉일 :2021.11.03. (한국 기준)

감독 : 클로이 자오

출연 :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리차드 매든, 쿠마일 난지아니, 셀마 헤이엑, 젬마 찬, 로런 리들로프,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배리 케오간, 리아 맥휴, 키트 해링턴


꾹꾹 눌러 담다 넘쳐버린 7000년의 시간


마블의 새로운 장을 여는, 한층 광활해진 세계관을 향한 첫걸음. <이터널스>


마동석 배우의 마블 진출작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기대치를 아주 높게 상승시킨 <이터널스>는 개봉 첫날부터 29만 명의 관객을, 개봉 한주만에 161만 관객을 동원하며, '마블민국'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마블이라면 의리로라도 우선 예매하고 보는 마블민국 사람들에게 마블리를 곁들인 마블 영화라니. 안 볼 수가 없는 조합이 아닌가.



<이터널스>는 어벤져스가 있기 전, 태초부터 존재했던 히어로 '이터널스'의 탄생부터 그들의 갈등과 성장 과정을 꾹꾹 눌러 담아낸다. 155분의 긴 러닝타임과 액션보다 드라마에 조금 더 치중한 영화의 특성상, 히어로 영화에 기대하게 되는 속도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모자란 느낌이 있다. 지금껏 보았던 마블 히어로 영화를 생각했다면 다소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착착 쌓아올린 키워드들 때문인지 관람이 끝난 후,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흔치 않은 마블 영화였다. 마블이지만 마블 같지 않아 의외였고, 그 의외성마저 색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화려한 액션 대신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담는 것을 선택한 장면들을 보다 보면 "일단 지금 상황은 둘째치고,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감독으로 발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노매드랜드>의 그 감독님이 히어로 영화를 맡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왜 그가 감독을 맡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보여주고 싶은 게 이런 거였구나.


                                                                              

우주에서 뚝 떨어진, 아직은 낯선 10명의 히어로


어벤져스 시리즈가 히어로들의 솔로 무비를 거쳐 탄생한 것에 비해 <이터널스>는 첫 시작부터 10명의 히어로를 대거 등장시킨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우주에서 뚝 떨어진 10명의 히어로를 한 영화에 다 풀어놓으려니 155분의 러닝타임도 촉박한 시간이 되어버려 아쉬웠다. 각 히어로들의 분량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과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들을 담아내는 것엔 성공했으나, 인물들이 다소 납작하게 느껴졌고,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들이 많았다. 해체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중에 특히 각별해 보였던 이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런 관계가 되었는지 등등.. 처음 본 이 히어로들을 더 알아가기도 전에 영화가 끝난 느낌이다. 나에겐 아직 이들을 마음에 들일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이터널스>에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모두 '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모습과 특징을 갖춘 인물들을 한자리에 묶어낸 것이 신선하고 좋았으나 반대로 너무 많은 인물들로 인해 서사가 조금 흐리게 보인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정, 거짓과 믿음, 자아의 성립, 포식자와 사냥감의 지배 관계 등 여러 요소들을 한자리에 담으려다 보니 이야기가 와락 넘쳐 빈자리가 발생하는 느낌이 든다.


(이제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 런칭되는데.. 꾹꾹 눌러 담다 흘려버린 시간들을 차후에 드라마 제작을 통해 풀어놓는다면 이터널스 시리즈를 애정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아는, 인간적인 히어로


이렇게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주제들을 한자리로 끌어모으는 힘을 발휘하는 건 '사랑'이라는 키워드다. 동료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지구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 "사랑하면 지켜주게 된다"는, 예고편을 통해 수십 번은 들었던 그 짧은 메시지 하나가 장황한 이 영화의 중앙을 관통한다.


<이터널스>는 결국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여정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누가 뭐라고 말하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것, 높은 곳에 위치했던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내려놓고 마음을 직시하는 것. 이터널스는 이렇게 나의 세계와 사랑을 선택한다.


이터널스가 가진 능력을 보면 이들은 인간보단 신에 가깝다. 이들 또한 은연중에 자신들이 지구를 지키고, 구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대한 힘 뒤에 숨겨져있던 진실이 드러나고, 이터널스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친다. 그 과정을 통해 이 히어로들은 한 뼘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구인들을 보면서 배운 삶과 사랑의 가치를 그대로 품은 따뜻한 마음의 히어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터널스 시놉시스


마블 스튜디오의 <이터널스>는 수 천년에 걸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 '데비안츠'에 맞서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재단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아리솀의 명령을 받은 이터널스가 지구에 도착한다.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함께 수많은 전투를 반복해온 결과, 지구의 위험이 되는 최상위 포식자 데비안츠 박멸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지구인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포식자가 나타나게 된다. 반복되는 전쟁과 죽음을 지켜보던 일부 히어로들은 지구인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게 되고, 이터널스는 해체된다. 이터널스의 해체 후, 각 히어로들은 다른 나라,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귀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지구인들 사이에 자연스레 묻히기도, 그들과 다른 나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이터널스가 다시 뭉치게 된 계기는 데비안츠의 재등장 때문이다. 데비안츠의 흔적을 뒤쫓던 이들은 지워지지 않은 테나의 기억과 아리솀의 말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갈등한다. 수십억의 생명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생명의 탄생을 위해 지금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희생되는 게 옳은 일인지, 신의 입장에서 생명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말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생명의 순환이라지만,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를 특정하고 그들을 탄생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랑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선택


이터널스는 셀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아리솀의 뜻대로 움직이는 소모품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이머전스에선 다르다.


"뭔가를 사랑하면 지켜주게 된다."


지구인들과 연인, 가족 그리고 친구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알게 된 이터널스는 처음으로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숭고한 사랑의 힘이 한곳에 모여 지구와 그 위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삶을 지키고, 뒤이어 이터널스는 각자의 삶의 목표를 따라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 태양에 뛰어들고, 괴리감이 드는 영웅의 몸을 벗어나 인간이 되고, 가족들과 함께 지구에 남고, 연인과의 사랑을 약속한다.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이제 신보다는 지구인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이터널스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이 시리즈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판을 펼쳐놓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다음 시리즈에 대한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광활한 배경에 이렇게 많은 흔적들을 뿌려놓고 어떻게 수거해나갈지, 이미 긴 시리즈물이라는 인식으로 높은 장벽을 만든 상태에서, 기존과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이터널스>를 통해 한 단계 더 높아진 진입장벽을 어떻게 다시 허물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뒤이어 개봉할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의 경우는 이전 페이즈를 생각하며 볼 관객들이 꽤 많겠지만, 불호평도 다소 많았던 <이터널스>의 경우, 이제 '마블'이란 이름만으론 이전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기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기우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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